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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22. 2024

방구색

“빠알!”

“주우우!”

“노오오오!”

“초오오오오! 어? 이제 곧 보라색인데? 무지개 다 세어 가는데?”

누워있는 아이의 눈빛이 기름지게 변하는 주문이다. 미적미적 대면서도 마음이 동하는지 몸이 꿈틀꿈틀한다. “셋, 둘, 하나, 하나 반, 하나 반의 반”에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아이가 “빨, 주, 노, 초”에는 흥분하면서 뛰어다니는 아동심리학의 원리는 잘 모른다. 예전엔 셋을 헤아렸지만, 이제는 무지개를 헤아린다. 빠르면 빨에도 벌떡 일어나고, 늦어도 파 정도까지는 잘 가지 않는다. 파까지 가는 경우에는 보를 넘어 자외선까지 세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헤아리기를 멈추고 전략을 바꾼다. 간지럽히기, 거꾸로 들어 올려서 삼두 운동 한 세트 하기, “아빠는 간식 먹어야지~”라는 마법 주문 외기. 그러면 또 아이는 힘을 낸다.


어느 날, 미니 레고를 사 왔다. 12가지 원색적인 색깔이 담겨있었다. 아이는 거실에서 한참 블록을 가지고 놀다가 뭔가를 웅얼웅얼거렸다. 컴퓨터를 하다 말고 아이에게 가보니 아이가 바닥에 레고 블록을 색깔별로 쌓아두었다. 아빠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노주빨이에요. 노주빨.”

“노주빨? 노주빨이 뭐야? 노루발? 노주빨?”

“바바요. 보, 남, 파, 초, 노주빨!”

아이는 손가락으로 보라색부터 차례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무지개를 반대로 세어보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보니 항상 무지개는 빨간색부터 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 만큼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다. 하늘에 무지개가 뜨는 날에는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그 색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들여다본 기억이 없다.


“넌 이 중에서 무슨 색깔 좋아해?”

“음… 나는 방구 색깔!”

“방구 색깔 좋아하는구나… 아빠는 파란색 좋아하는 것 같아.”

“파란색?”

“응. 옷도 파란색, 신발도 파란색 이잖아.”

“그치?”

“그럴 때는 ‘그렇네~’라고 맞장구치는 거야.”

“맞방구?”

“그래. 맞방구 색깔이나 좋아해라. 으이그.”

아이를 떠나 일어나려는 데 아이가 말한다.

“나는 무지개색 좋아해요. 아빠랑 무지개 만드는 거 좋아해요.”

‘그렇구나, 무지개색.’

그랬다. 꼭 하나를 고를 필요는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면 꼭 단색으로 답해야 한다는 법도 제정된 적은 없다. 아이는 은연중에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얽매이지 말라고.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빠도 사실 방구색 좋아해.”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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