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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24. 2024

낯선 하늘

(feat. 오늘의 일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분명히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달려서 돌아갔다. 우산을 챙겨서 다시 나올 생각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밝은 빛이 비쳤다. 창 밖을 보니 걷히는 구름 사이로 햇빛이 강렬했다. 푸른 하늘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나와 보라고 소리쳤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을 가족이 다 함께 보는 건 처음이었다. 특별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우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늘이 푸르다면 곧 개지 않을까 싶어서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 젖은 땅에는 구름이 비춰보였다. 구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시시각각 눈앞에서 생겨났다 사라졌다. 움푹하게 구멍이 뚫린 곳으로 또 다른 구름이 말려들어가기도 했다. 손으로 뜯은 솜사탕처럼 여기저기 흝어지다가, 갑자기 한데 모여 웅장한 덩어리로 변했다. 예사롭지 않은 하늘이었다. 매직아워의 핑크빛 하늘은 일상에 가깝지만, 흙빛 구름이나 옅은 연두색 먹구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매일 걷던 길이 이토록 새롭다니. 나는 강남역에 처음 도착한 시골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구름의 모양과 색깔이 달라졌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새로운 매력을 보게 된 것처럼, 오래 알고 있던 친구의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움을 멈출 수 없었다.

비가 왔기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넘실대는 하늘을 나 혼자 보기엔 아까워서 카메라를 켰다.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오늘 하늘은 무척이나 특별하다고. 물론 나만이 이 하늘을 본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도 알았다. 그래도 오늘 이 순간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했다.

매직 아워의 그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어두움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길의 익숙한 어둠, 구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먹구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멈춘 것 같아 보이는 구름. 나는 아직도 그 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어느덧 일상으로 돌아가버린 세상이 조금은 야속했다. 집에 돌아와서 잊을 수 없는 그 광경을 다시 더듬으러 사진첩을 열었다. 사진도 동영상 속의 경이로움은 그 현장에 있던 것만 못했지만, 그래도 꿈결의 조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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