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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24. 2024

가로수처럼

[모라도 클럽] 여섯번째 숙제 (주제 : 불만)

결혼 11년 차. 우리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은 많지 않다. 완벽한 부부라서 그런 건 아니다. 언성을 높일 에너지를 아껴서 다른 곳에 사용하자고 암묵적으로 합의했을 뿐이다. 싸울 시간에 의사소통을 정확하게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다. 가로수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머무르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듯, 함께 살다 보면 감정이 쌓이고 작은 문제로 불꽃이 튀어 갈등이 점화된다. 아내에게는 바지를 벗을 때 한쪽 다리 부분만 뒤집어 벗는 습관이 있었다. 어떨 때는 넘어갈 만 하지만, 어떨 때는 못 견디게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어느 날은 빨래를 개다 말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 바지 좀 똑바로 벗으라고! 아니면 벗고 나서 다시 빼놓든가!”

그 소리는 다른 날 이렇게 메아리쳐 돌아왔다.

“노래 좀! 그만! 나 머리 아파.”

‘그거 가지고 왜 소리를 지르냐?’라는 질문의 답은 대부분 쌓인 감정과 부족한 의사소통에 있었다. 그걸 깨닫기 전까지는 서로를 공격하는 것밖에 몰랐다. 나는 지나가는 말로, 아내는 오랫동안 쌓아두었다가 터뜨리며 서로를 공격했다. 다행인 건 둘 다 후회가 빨라서 화해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감정이 잦아들지 않을 때가 있다. 가정사나 경제적인 어려움 같은 큰 문제들은 오랜 시간 인내를 가지고 풀어나가야 한다. 현실이 언제라도 우리를 극단적인 고통으로 끌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날, 대립의 칼날이 챙챙 소리를 내는데 좀처럼 갈등이 잦아들지 않아서 둘 다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하지 않았던 말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나 이제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딜 것 같은데?”

“나도 그래. 나도 못 견딜 것 같아!”

이 지점에서는 “그럼 끝내.”가 입가에 맴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다음부터는 더 자주 꺼내게 되지 않는가? 입을 꾹 다물었다. 둘 중 누군가의 눈에서 눈물이 터지면 무언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한동안 서로의 눈을 쳐다보기만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부부 아닌가? 부부의 문제는 언제나 함께 풀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마치 함께 탄 배가 폭풍 속에 요동치는 것과 같았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폭풍을 그치게 할 수도 없었고, 배나 우리 자신도 포기할 수 없었다. 둘 다 똑같이 못 견딜 만큼 힘들었지만, 배에 있는 물건을 최대한 버리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우리가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보자. 그렇게 믿으면, 자기가 더 고생한다고 손해 보는 느낌은 안 들지 않을까? 우리에게 그런 신뢰는 있잖아? 그렇다는 걸 서로 알고 있잖아?”

아내는 대답했다.

“그래. 그럴게. 그러자.”

갈등이 눈 녹듯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가 느끼게 된 건 서로가 손을 굳게 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는 의지였다. 우린 꽤 튼튼한 관계구나. 무척 자랑스러웠다.


서로의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좋은 부부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더 둘이면서 하나인 듯, 하나이면서 둘인 듯한 관계로 성장하고 싶다. 나와 아내를 좀 더 많이 알아간다면, 언젠가는 우리가 원하는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시간을 재촉할 수 없기에, 오늘 하루도 그렇게 쌓아간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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