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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탐험가 Jul 26. 2024

복식호흡

숨을 끝까지 들이쉰다. 멈추지 않고 계속 들이쉬는 상태를 유지한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을 때쯤 내쉰다. 배를 쥐어짜듯 끝까지 내뱉는다. 이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내뱉는 상태를 유지한다. 죽기 전에 숨을 고른다. 이렇게 만보 걷기를 하면서 복식호흡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피해 간다. 배 나온 아저씨가 달리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으니 나라도 나를 보면 흠칫할 것 같다.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려는 건 아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가 아니라 습관을 고치고 싶어서였다. 매일 걷다 보면 온몸의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그랬다. 그런데 똥배에 서린 긴장감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습관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배가 덜 나온 것처럼 보이려면 힘을 주고 다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생각해 보면 좀 우습긴 하다. 배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 홀쭉이처럼 보이는 건 아닐 텐데. 그렇게 긴장하며 사는 에너지를 다이어트에 쏟았다면 어떘을까? 그래서 지금이라도 걸으면서 호흡을 연습해보려 하는 거다. 언젠가는 호흡도, 똥배도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렇게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주범은 수치심이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수치심은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결국 수치심의 핵심은 시선이다. 다른 사람이 내 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웠다. 운동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체중을 감량해 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잠깐 성공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체중이 늘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이 더 부끄러웠다. ‘쟤는 살을 빼도 또 찌네. 자기 관리를 못하는구나.’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내가 살이 찌는 원인은 뻔하다. 생활 습관과 식습관의 문제다. 그걸 알면서도 왜 오래 건강한 몸을 유지하지 못하는 걸까? 심리적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 무의식은 수치스러운 자아를 유지하려고 하는 건 아닐까? 수치심을 나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만큼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바꾸어보고 싶었다. 나 자신과 끝까지 투쟁해서 부정적인 것들을 몽땅 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내 정체성이 전복되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전복을 좋아하니까. 그래서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사람들이 운동을 많이 나오지 않는 그 시간에 나는 까만색 기능성 반팔티를 입고 걷기에 나섰다. 내 몸의 피부인 것처럼 매일 입고 다니던 남방을 벗었던 거다. 그간의 운동으로 7kg이 넘게 빠졌지만, 아직도 나의 몸매는 안구테러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우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양손으로 휴대폰을 잡으며 튀어나온 젖가슴과 배를 가렸다. 나체로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코를 파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자랑스러워하던 그 눈빛을 보았다. 아들은 코 파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 수치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면, 수치스럽지 않은 것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왜 숨고 도망치며 타인의 시선을 통제하려 하는가? 그렇게 해서 달라진 것이 있는가? 그래서 그때부터는 복식호흡을 하며 배를 최대한 부풀린다. 출렁이는 지방들이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가슴을 편다. 방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살을 찌우는 것보다, 거의 매일을 나와서 걷는 것은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 아닌가?

호흡 연습을 계속 반복하면 숨이 가빠진다. 힘이 드니까 아무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호흡하는 것에만 집중하며 걷다 보면 집에 갈 때가 된 지도 모르기도 한다. 어쩌면 수치심을 이기는 방법은,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몸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After’를 상상해 본다. 지금처럼 몇 달만 더하면 몸에 군살은 다 빠질 것 같다. 러닝을 제대로 시작하고, 식습관과 수면습관을 바꾼다면 좀 더 멋진 내가 되겠지. 그때의 나에게 수치심의 그림자조차도 찾을 수 없게 되었으면 한다. 나 자신을 좀 더 자랑스럽게 여기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마음탐험가'입니다.
동탄에서 고전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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