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줄리앙 : 여전히 거기> 展 리뷰
아이와 경주에 간 건 '도망'이었다.
나로부터의 도망.
말로는 여름 성수기를 피해 앞당겨 다녀온 아이와의 역사 여행이라고, 아직은 덥지 않은 서늘한 유월의 여행이라고 월초부터 떠들고 다녔지만 실은. 올해 들어 상반기 내내 잠시라도 널부러져 쉬고 싶어도 단 하루조차 쉼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이루어 내거나, 읽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아무튼 정신 없는 스스로를 버거워하다 경주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23.1월부터 7월까지 (7개월)
[글 쓰는 오늘] SE 10부터 14까지
[먼데이 마더스] 팀 매거진 pjt 시작
[에니어그램] 기초부터 마스터 수료(3개월)
[에니어그램] 소그룹 12시간
로컬 북클럽 [한달 한책, 목동] 시작(소설)
[한달 한책, OO] 각 지역 PM 세우는 일
[KAC 코치] 자격 준비 (코칭 실습 50시간)
[글로 코칭] 프로그램 런칭
[브런치 작가 합격 일대일 코칭] 시작
[마더와이즈] staff (회복, 지혜 과정)
소속 교회를 옮김 (다음 세대 예배를 고민하며)
크리스천 [부부심리상담] 6회
크리스천 [부부학교] 5주 (매주의 과제)
경이와믿음X육셰프 [팝업 브런치] 6주 기획
'나'와 '부부'의 내면을 Dig Deep Deep해 원석을 발견하는 한편, 외적 성장을 위해 전례 없는 몸부림을 해댄 상반기. 코로나 3년을 전시회 관람하며 홀로, 다소 정적인 시간을 굉장히 많이 가졌던 터라 세상을 향한 이토록 적극적인 행보가 어쩐지 부담스럽고 두려웠다. '오늘 내가 쏟아놓은 말과 글을 다시 주워담아 폐기하는 이미지'들을 떠올리며 겨우 잠들었다.
경주로 가는 KTX 기차 안에서 블루투스 키보드와 스마트폰을 열어 여행 이후 오픈할 [글로 코칭] 모집 공지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고 Log Out 했다. 기차 안에서 BLIPPI 영상을 보는 딸 아이의 옆모습과 창밖의 풍광을 번갈아 감상하며. (아이의 5, 6세 콘텐츠 담당해 주신 BLIPPI 아저씌께 무한 감사를..)
진정한 쉼으로 들어가는 중.
상반기의 피로를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소셜네트워크 피로.
맞다. 난 심각한 sns 피로증후군 환자다.
커뮤니티와 코칭 주고객 분들이 온라인에 계시다 보니 온라인으로 내 일을 회고하고 기록하며 새 시즌을 기획할 필요성이 다분했으나, '일' 말고 '인간' 이너조이와 sns는 상극. 인스타 피드를 보고 있자니 '나 지금 뭐하고 있는지 좀 봐줘!'하는 인스타 피플들의 아우성이 소란스럽기도 했고, 그 소란에 내 커뮤니티 이야기, 나 지금 뭐 읽고 뭐 먹는지 하는 이야기들을 얹기가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나는 밀도 높은 대화와
폐쇄형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
sns를 할 외적동기는 충분했으나, 내적동기가 빈약하니 몰입이 안 되더라. 재미도 없고 트렌드도 싫고 [글 쓰는 오늘] 커뮤니티 멤버들과 [글로 코칭] 고객 분들과의 밀도 높은 찐- 대화, 우리집에 초대해 길고 긴 대화와 만찬들, 그런 것들만이 내 삶에 있었으면 했다. 이것들을 누구 앞에서 인증할 필요가 있는 걸까 하면서.
나의 상반기 소셜네트워크 활동을 돌아보면 '모집공지 겨우 업로드하고 도망치듯 나옴'으로 정리된다. sns 피로를 마치 질병처럼 느꼈던 탓일까, '퍼스널브랜딩', '콘텐츠 홍보', '광고 집행', '인플루언서', '선한 영향력', '팔로워 성과' 등과 같은 연관 단어들을 기피하는 내 모습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칼럼이나 브런치 글들을 서핑할 때도 나처럼 'sns 피로'로 '탈 sns'를 도전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된 이들의 후기만 골라 슬픔의 대리만족을 했다.
이런 종류의 기사를 좋아했음
내가 느끼는 SNS의 위험성
나와 결이 안 맞아서, 감정적으로 sns를 기피하는 부분을 논외로 하고 내가 생각하는 sns의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트렌디함이라는 것 이면에 '트렌드 때문에 모두가 비슷해지는 현상'과 '트렌드를 못 따라가면 별로인 사람이라는 몹쓸 느낌'을 양산한다는 점이다.
누군가 독특한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로 자신의 브랜딩 컨셉을 잡으면 모방에 모방을 거듭해 팔로워 그룹들이 비슷한 브랜딩을 시작한다. 브랜딩을 배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기존의 것을 모방하고 새것과 믹스하는 시도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 프로세스를 지켜보고 응원하려고 했던 팔로워 입장에선 지치고 피로하다. (북크리에이터들의 북스타그램을 잘 안 보게 되었다)
아무튼 이 트렌디한 사람들 맞은편에는 트렌드를 버거워 하는 이들도 있다. 트렌디하지 않되 그들만의 고유함으로 일도 잘하고 가정도, 관계도 원만한 이들이 sns 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팔로워 수도 없고 하찮아 선한 영향력을 주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우울해진다. 이건 나의 경험이기도 하고, sns에 관해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거의 모두가 한 말이었다. (스스로 월 매출 높아 광고할 생각 1도 없는 교습소 선생님, 예술에 조예가 깊은 건축가 부부 등이 그들이었다)
얼마 전 한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이런 문장도 봤다. 인플루언서 당신을 보면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 언팔한다고. 인플루언서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싫어져서.
또 다른 하나는, 인맥이 드라마틱하게 확장되는 한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계가 느슨하고 물렁해진다는 점이다. 나의 인간관계, 인맥의 수준을 '숫자(팔로워수)'로 간편하게 단정해 버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손을 맞잡고 눈을 컨택하며 관계를 맺는 일을 최근 몇 차례나 해보았는가 생각해 보라. sns 관계의 간편성(팔로우와 언팔을 손가락 하나로 ㅋㅋ), 표현성(공감, 댓글 해주면 친한 사이 아니면 별로인 사이?)을 나홀로 힘들어하는 탓인가, 얼마 전 남편의 손을 맞잡고 서로 축복기도를 해주며 눈맞춤을 하는데 눈물이 글썽이더라.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과의 이 깊은 순간. 관계의 행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sns를 해야할 이유
[먼데이 마더스 MONDAY MOTHERS] 필진이자 쉼앤라이프코칭 구독권을 런칭한 솔트다움 코치님과 지난 봄, sns 콘텐츠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솔트다움 : 그럼, sns를 왜 해야 하나요?
이너조이 : 좋은 사람들과 더 만나고 싶어서요.
맞다. 난 유명함도 싫고 문어발 같은 인맥도 경계한다.
다만 내 커뮤니티와 코칭 앞으로 용기 있게 발걸음해 준 그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 모두 내 하찮은 블로그와 인스타 모집 포스팅으로 와주셨다. 그리고 내 관계의 '진짜' 시작은 그 때부터였다. 내가 인스타 프로필의 링크에 걸어둔 신청서를 그들이 작성하고 내 커뮤니티에, 내 코칭 대화에 문을 두드려준 그 때부터. 그렇게 우린 고유성을 나누고, 글을 나누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의 깊이와 풍미를 더해왔다.
그 '진짜 시작'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전 단계(sns를 통한 브랜딩과 마케팅)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작년 11월부터 기도했던 '사람과 사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귀찮고 싫지만 꼭 해야했던 것.
sns에 푹- 빠진 현대인들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장 줄리앙의 그림들이 경주 우양미술관 전시실에 꽤 많았다. 그림 앞에서 계속 웃픈 표정을 짓다 아트샵에서 MODERN LIFE 도서까지 사버렸다. 장 줄리앙의 전시회 리뷰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장 줄리앙의 그림들 중 MODERN LIFE 컨셉의 일러스트책을 읽다 쓴 글이다. 이 글 때문에, '장 줄리앙은 sns 피로를 이야기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단순한 형태의 그림들로 폭넓은 공감을 끌어낸 장 줄리앙의 simple but strong한 작업들을 보면서 느낀 점도 상당히 많다.
단순함은 사람을 깨닫게 하고 때로는 기쁘게도 한다는 것.
장 줄리앙의 그림들로
나는 sns에 대한 내 감정을 온전히 바라봤고
아이는 춤과 표정 연기로 기쁨을 발산했다.
경주여행 사진을 몇 장 업로드하며
진짜, 더 하고 싶은 이야기.
'동궁과 월지'는 사랑이었고 눈물이었다.
유월의 어느 밤에 그 곳을 걷고 있는 내가
너무 황홀하여서.
두 번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