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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린 Jun 22. 2020

주 1회 발레 하는 여자


“를르베! 를르베!”


여리여리한 발레강사의 언발란스한 우렁찬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팔을 펴서 근육을 쭈욱 늘리세요!”


분위기도 우아하고 동작도 우아한 그녀의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는 날이 가득 서있다. 취미생활 겸 운동도 할 겸 느긋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건데 생각보다 녹록지가 않다.


“그냥 시간 때우러 나오는 거 아니에요!”


마치 발레로 몸개그 하는 나를 지목해 하는 말 같아 뜨끔했다. 취미 발레 블로그에서 6개월 정도면 된다던 다리 찢기는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어찌나 시원하게 쭉쭉 찢어대는지, 당최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싶다. 다들 전공이 무용과인 건가, 요가를 오래 해온 사람들이 듣는 수업인 것인가. 분명 백화점 문화센터 초급 발레반을 등록한거 뿐인데.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발레 교실은 거울 보는  즐겨하는  눈을 첫눈에 사로잡았다. 문화센터 안내 직원이 요가 옷이나 편한 옷을 입고 수업에 참여해도 무방하다 하여 레깅스만 입고 참여한  수업. 새하얀 레이스 레오타드를 입은 백조 같은 강사와 몸에  붙는 디자인을 취향에 맞게 뽐내며 근육을 늘리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에 입이  벌어진  어깨가 점점 움츠러들었다. 그럴수록 강사는 목을 최대한 길게 빼고 어깨를 뒤로 쭈욱 펴세요, 라며 나를 예의 주시하는  같았다.

 

첫 수업에 기가 꺾인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발레 수업에 출석하는 이유는 회를 거듭할수록  근력이 생기고 체력이 좋아지는 듯한 느낌적 느낌 때문이다. 모든 출산 여성들이 주장하는 아기 낳고 몸이 달라졌다, 는 말은 나에게도 어김이 없었다. 몸무게가 딱히 빠지거나 증가하거나 하는 겉보기의 변화는 없었으나 날이 갈수록 저질 체력으로 변하고 그 저질 체력마저 바닥에 바닥을 타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몇 년 보냈던 것 같다.


꼬물꼬물 아기가 너무 귀여워 정신적으로는 행복했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한 달에 한 번씩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나날들. 그러다 비타민과 홍삼을 먹으며 덜 피곤해지고 조금씩 체력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양제의 효과를 본 것은 맞는데 원래 내 체력으로 돌아가기에는 한계에 다다르더라.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의 미레유 길리아노 여사님 말에 따르면 40대가 되면 가벼운 근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단다. 그래서 30대부터 마음으로 다짐만 하고 있다 마흔 넘어 시작한 발레. 여전히 동작이 힘겹고 다리 찢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지만 그래도 발레가 좋다. 코로나 여파로 발레 수업을 잠시 쉬고 있는 요즘 집에서 간단한 발레 스트레칭을 하며 동작을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언발란스한 매력을 발산하는 발레 강사의 구호에 맞춰 어설프고 우아하게 발레를 하고 싶다.


"앙바, 아나방, 앙오, 알라스꽁드"


까칠한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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