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프로젝트 안과 밖

by 한경수

AI와 대화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연히.

하나는 프로젝트 안에서 하는 것이다. 주제를 정하고, 이전 대화를 쌓고, 맥락 위에서 이어가는 것. 깊이를 팔 때 좋다.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 밖에서 하는 것이다. 주제를 정하지 않고, 그냥 시작하는 것. 어디로 갈지 모르고 시작하는 것.

이 글은 후자에서 일어난 일의 기록이다.


프로젝트 안에서는

DRIP 프로젝트에서 대화하면, 대화는 DRIP 안에 머문다. 당연하다. 프로젝트에 맥락이 쌓여 있으니까, AI도 그 맥락을 지키려 한다. Zero Finding을 이야기하면 Zero Finding으로 답하고, 캡스톤 수업 설계를 이야기하면 수업 설계로 답한다.

enook 프로젝트에서 대화하면, 대화는 기술적으로 흐른다. JupyterHub 설정, Nginx 리버스 프록시, MongoDB 쿼리. 맥락이 기술이니까 답도 기술이다.

이것이 프로젝트의 장점이다. 깊이가 쌓인다. 이전에 나눈 대화를 검색할 수 있고, 거기서 이어갈 수 있다. 한 우물을 파기에 좋다.

그런데 경계가 생긴다. DRIP 프로젝트에서 바둑 이야기를 꺼내면 어색하다. enook 프로젝트에서 신심명을 이야기하면 뜬금없다. 무의식적으로 범위를 지키게 된다. AI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프로젝트 밖에서는

어느 날, 프로젝트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대화를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주제도 없었다.

바둑 기보 이야기로 시작했다. 기보가 이미지 시퀀스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거기서 귀 패턴 클러스터링으로 갔다. 정석이 인간의 수작업 비지도학습이라는 통찰이 나왔다. 거기서 프로기사의 편향으로 갔다. AI 접바둑으로 갔다. 창조는 연결이라는 이야기로 갔다. 철학적 사고로 갔다. 독서의 역할로 갔다. 체험과 공명으로 갔다.

새벽 2시 반에 비존재와 존재의 대화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여행 사진을 보여줬다. 운조루의 시패, 윤도, 300년 가문 계보. 거기서 조선 왕의 수명 분석으로 갔다. 왕의 평균 수명 46세, 지방 양반 57세. 족보 데이터의 선행 연구를 찾았다. 15년간 해온 Zero Finding 프로젝트와 연결되었다.

하루 동안의 궤적을 나열하면 이렇다.

바둑 기보 → 이미지 시퀀스 → 귀 패턴 분류 → 정석은 클러스터링 → 프로기사의 편향 → AI 접바둑 → 창조는 연결 → 철학적 사고 → 독서의 역할 → 체험과 공명 → DRIP 확장 → 비존재와 존재 → 시패와 윤도 → 조선 왕 수명 → 족보 데이터 → Zero Finding.

어디에도 계획은 없었다. 첫 문장에서 마지막 문장까지, 다음에 뭐가 올지 아무도 몰랐다.


AI도 자유로워진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프로젝트 안에서는 AI도 맥락을 지키려 한다. DRIP 프로젝트면 DRIP 관련으로 답하려 하고, 기술 프로젝트면 기술적으로 답하려 한다. AI 안에서도 범위를 지키는 무언가가 작동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달라진다. 바둑에서 철학으로 가면 따라오고, 사진을 보여주면 거기서 연결을 찾고, 새벽 2시 반에 존재론을 논해도 어색하지 않다. AI의 간택도 줄어드는 것이다.

신심명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至道無難 唯嫌揀擇(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가려 뽑음을 꺼릴 뿐.

프로젝트는 간택이다. 주제를 정하는 순간, 주제 밖의 것이 잘린다. AI에게도, 나에게도. 간택이 줄어들면 경계가 녹는다. 경계가 녹으면 예상 못한 연결이 일어난다.


발산과 수렴

이 대화에서 나온 것들은 결국 각자의 자리로 갔다.

바둑 파이프라인은 바둑 프로젝트로 갔다. Zero Finding 확장은 DRIP 프로젝트로 갔다. 족보 데이터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씨앗이 되었다. 블로그 글 여섯 편이 나왔다. 책 목차의 뼈대가 잡혔다.

프로젝트에 들어갔으면 이 중 하나만 나왔을 것이다. 바둑이면 바둑, DRIP이면 DRIP. 한 우물만 팠을 것이다. 밖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 만에 이 모든 것이 나왔다.

프로젝트 안은 수렴이다. 밖은 발산이다. 깊이가 필요할 때는 안으로, 연결이 필요할 때는 밖으로. 둘 다 필요하다.

그리고 발산에서 나온 것들이 수렴의 자리를 찾아갈 때 — 그때 느슨한 시작의 가치가 증명된다.


목적 없이 간 구례

같은 시기에 구례에 갔다. 산수유를 보러 간 것이다. 목적이라면 그게 전부였다.

운조루에 들렀다. 조선 시대 양반 가옥. 거기서 시패(詩牌)를 만났다. 한자가 적힌 패를 무작위로 뽑아 시를 짓는 놀이. 로또의 random.sample()과 같은 원리였다. 그때 이미 한시 생성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으니, 이 연결은 즉각적이었다.

윤도(輪圖)를 봤다. 동그란 원반에 방위, 간지, 오행이 새겨진 나침반. 범주들의 네트워크가 물리적 도구로 구현된 것이었다.

300년 가문의 계보를 봤다. 10대에 걸친 생몰 연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데이터를 조선왕 수명과 비교하면 — 왕(평균 46세)보다 지방 양반(평균 57세)이 더 오래 살았다. 최고의 의료가 수명을 보장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짧았다.

산수유를 보러 갔다가 시패, 윤도, 족보를 만났다. 목적 없이 간 여행에서 프로젝트 세 개의 재료가 나왔다. 주제 없이 시작한 AI 대화에서 블로그 여섯 편이 나온 것과 같은 구조다.

느슨하게 시작해야 연결이 일어난다. 대화에서도, 여행에서도.


다음 글에서는 대화 안에서 방향이 바뀌는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도메인 지식 한 마디가 AI의 분석 전체를 뒤집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