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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Mar 19. 2024

사업도 먹태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먹태를 집던 손을 멈추고 대표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다. 지난해 장문의 인터뷰를 했던 에듀테크 스타트업 리디안랩스의 대표님이었다. 사업으로 인해 종종 서울에 올라오시는데 감사하게도 이렇게 연락을 주신다. 그냥 나와 이런저런 얘기하는 게 좋다고 하신다.


오늘은 특별히 식사를 대접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유럽의 에듀테크 기업 담당자와 미팅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나의 역할이 컸다고 하셨다. 나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보았다.


"그런데 제가 뭘 도와드린 거죠? 지난번 인터뷰 분명 국문으로 작성했고 따로 영문으로 외부에 소개한 적이 없어요."


대표님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국내에 방문하기 전 한국어가 가능한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아 국내 에듀테크 스타트업들을 검토했고 그중 작년에 올린 이 기업의 인터뷰를 읽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둘째치고 어떻게 외국인 미팅을 하신 걸까? 


"오늘 그럼 영어로 미팅하신 거예요?"


"서울시에서 주선하고 전문 통역가도 배정을 해줬어요."


아마도 이 스타트업의 연혁이 짧아도 지난해 해외 매출 이력이 있으니 정부에서도 적극 신뢰하고 지원해 주는 것 같았다. 


식사를 하던 중 대표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교육사업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학원을 인수해 운영했던 게 직원들만 고생시키고 시간은 시간대로 낭비한 것 같아요."


테이블 위 먹태를 집던 손을 멈추고 대표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번 인터뷰할 때 그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하는데, 대표님은 직접 현장에 가서 잠재 고객들의 문제점을 파악하셨잖아요. 그런 분들은 드물어요.”


“그런 이야기를 안 해주셨으면, 저도 인터뷰를 잘 쓸 수 없었을 거예요.”


그냥 하는 말에 내 일 마냥 씩씩대며 답하자, 그가 말했다.


"그렇죠?"


"오늘 만나 뵌 해외 기업의 담당자도 그 부분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안도하는 대표님을 보고서야 나는 먹태를 마저 씹기 시작했다. 사원 시절에 먹태를 좋아하는 부장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그 맛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스타트업도 먹태도 비슷한 점이 많다. 먹태가 생각보다 간편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스타트업의 사업모델만큼이나 제조하는 과정이 어렵고 까다롭다.


리디안랩스 대표님(좌),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먹태는 황태처럼 자연 바람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동결건조기로 40시간 이상 건조해야 한다. 명태에 물을 먹인 후 3일 동안 숙성시키고, 기계로 두드려서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먹태를 손질하는 것도 쉽지 않다. 꼬리 부분부터 천천히 벗겨내야 터지지 않고, 뼈도 기계로 뽑을 수 없어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사업도 먹태도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표님이 대전행 KTX에 늦지 않도록 우리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분의 뒷모습에서 발걸음이 가벼운 것을 보니 내가 더 마음이 평온하다. 다음에 뵐 때는 대표님의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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