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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후 Jun 21. 2024

"이런 제품들 예전에 다 실패하지 않았나요?"

사업을 하는 사람도 투자를 하는 사람도 공부해야 생존한다.

"유사한 제품들이 예전에도 있었는데, 결국엔 다 실패하지 않았나요?"


창업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한 투자자가 이렇게 말했다. 창업가의 이마에는 순간 식은땀이 맺혔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전 제품들은 단순히 사용자에게만 집중했던 반면, 저희 제품은 사용자와 사용자의 고객을 모두 연결하는 차별화된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창업가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조금 전의 투자자가 다시 한번 말을 가로채며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그 제품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창업가가 정해진 시간 내에 기업 소개를 명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한 것과 달리, 투자자의 태도는 무성의해 보였다. 그의 발언은 심지어 완전한 문장도 아니었다. 건설적인 피드백은 아니더라도 명확한 문장은 기대했는데 개인의 심드렁한 감상평이 이어졌다.


투자 생태계에서 투자자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위의 경험한 한 사례는 투자자들 간의 준비도와 전문성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한 투자자는 기업 투자 유치 자료를 사전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예시로 들고자 하는 기업명이나 그 기업이 겪은 구체적인 어려움에 대해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반면,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투자자는 사업계획서를 철저히 검토한 후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대조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창업가들에게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창업가 정신과 기술력이 요구되는 반면, 일부 투자자들은 여전히 과거의 관행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체 투자자 집단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벤처피탈 관련한 책을 위해 인터뷰하거나 경험한 대다수의 투자자들은 기술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창업자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변화하는 시장과 기술 환경에 적응하며, 스타트업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투자자의 부적절한 언행을 '원래 투자자란 다 그런 거야'라며 적당히 퉁 치기에는 너무 성의가 없었다. 이는 투자자의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고려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다. 결과적으로 창업가는 반박하기 어려운,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미팅의 분위기는 순간 싸늘하게 식었다. 이 상황에서 다른 투자자가 나서서 동료의 퉁명스러운 태도를 수습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이는 전문성과 배려심을 갖춘 투자자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투자자 선택 시 그들의 산업 전문성, 실사 역량,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통찰하려는 진취적 자세를 신중히 고려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창업가들에게는 투자자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소통 능력과 태도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문득 예전에 만났던 한 투자자가 떠올랐다. 그는 개발자 출신이라면서 Jira와 같은 협업 툴은 실제로 시장에서 대부분 외면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너무나도 확신에 찬 발언이라 그동안 내가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모든 것들이 순간 잘못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제한된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 객관적인 시장분석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Jira는 전 세계적으로 190개의 국가에 150,000명의 고객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 관리 도구다. 자신이 현역 시절 사용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장성을 폄하하는 것은 결코 설득력이 있지 않다.


이는 마치 요즘 대세로 떠오른 ChatGPT를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 AI의 가능성을 논하거나, Temu나 AliExpress를 이용해 보지 않은 채 쿠팡의 대응 전략을 평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개인의 좁은 경험에만 갇혀 세상을 재단하려 든다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투자자의 태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용성 편향'과 '현상 유지 편향'을 잘 보여준다. '가용성 편향'으로 인해 자신의 직접 경험에만 의존해 판단을 내리고, '현상 유지 편향'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투자 결정에 있어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시장에서 이러한 편향은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이러한 편향을 인식하고, 더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시각으로 시장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관점에 노출되는 것은 사고의 유연성을 키우고 혁신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한 주장이 아닌, 인지과학과 창의성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인지심리학자 스콧 배리 카우프만의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경험과 지식에 노출될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향상된다. 이는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능력을 말한다. 또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린다 힐 교수는 '집단 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협업이 혁신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이나 토론 커뮤니티에 참여한다. 이들 공간은 단순한 사교의 장이 아닌, 지적 자극과 성장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다양한 배경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의 활발한 의견 교류는 '인지적 다양성'을 증진시키며, 이는 개인의 사고 범위를 확장하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극장이 국내에 처음 등장했을 당시 '탕아들의 집합소'라는 편견 어린 시선이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낯선 것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진보를 이룩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속속 등장하는 변화의 시대, 창업가와 투자자라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경험해 보고 사용해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낯선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들만이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혁신을 향한 첫걸음이 아닐까.



미팅이 끝나고 의기소침해진 창업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실, 그가 오히려 침착했고 내가 더 감정이입이 되어 광분했다.


"과거에 갇혀 사는 투자자보다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투자자가 필요해요. 구시대적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선 투자금 말고는 얻을 게 없어요. 아니, 설령 투자한다고 해도 받지 마세요."


변화를 두려워하고 안주하려는 이들의 편협한 시선에 주저앉을 시간이 없다. 그것이 아무리 높고 두꺼운 벽처럼 느껴진다 해도, 돌파구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에겐 결코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닐 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창업가라면 그 누구보다 불편한 시선을 극복할 용기와 실행력이 필요한 법이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업가의 숙명이자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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