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ndly Monster: 볼륨의 역설

by inocent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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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BSERVATION "옷을 보다, 기둥을 상상하다"

마이아 하스바니의 니트를 처음 봤을 때, 이상하게도 옷이 아니라 기둥이 떠올랐습니다.

저 울퉁불퉁한 볼륨. 엉덩이 부분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고, 다리는 마디마디 불규칙하게 팽창한 형태. 만약 저게 옷이 아니라 공간 안에 서 있다면?

그 상상이 시작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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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EFINITION "Alienation to Protection (소외에서 보호로)"

마이아 하스바니(Myah Hasbany)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의 디자이너입니다. 텍사스에서 자란 레바논계 미국인. 지난 6월 CSM BA 졸업 쇼에서 로레알 프로페셔널 영 탤런트 상을 수상했고, Dazed100에 선정됐습니다. 현재는 조나단 앤더슨이 이끄는 디올 쿠튀르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니트는 옷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동식 건축물'에 가깝습니다. 사람의 신체를 압도하는 거대한 부피감, 그 안에서 얼굴만 빼꼼히 내민 모델, 그리고 마치 외계 생명체나 토끼를 연상시키는 기이한 형태.

처음엔 그저 둥글고 키치한 형태에 끌렸지만,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니 이 거대한 볼륨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보수적인 텍사스에서 자라며 느꼈던 '이질감'과 '소외감'이 디자인의 출발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졸업 작품은 1897년 텍사스 오로라 UFO 추락 사건—마을 사람들이 외계인을 묻어줬다는 전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서 묻어버린 것들이 결국 우리를 지키는 존재가 된다"는 서사.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내 몸과 젠더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이라고 정의합니다. 신체 이형증(Body Dysmorphia)과 싸워온 그녀에게, 이 거대한 니트는 자기 몸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형태 위에 올려놓는 해방의 도구였습니다.


Erasing the Body: 신체의 실루엣을 지웁니다.

Building the Volume: 그 자리에 압도적인 덩어리(Mass)를 세웁니다.


이것은 착용자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동시에 가장 포근하게 안아주는 역설적인 장치입니다. 즉, 이것은 패션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안전한 공간'입니다. 친근한 괴물(Friendly Monster).

자신의 결핍을 숨기거나 지우는 대신, 가장 크고 부드럽게 부풀려서 예술로 만들어버린 것. 그 방식이 인상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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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SIGHT "Skin & Fur: 극단적 물성의 충돌"

하스바니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건 물성의 극단적인 대비입니다. 첫 번째 룩을 보면, 상체는 날카로운 가죽 재킷인데 하체는 저 부풀어 오른 털 덩어리. 얇고 단단한 것과 두껍고 부드러운 것의 충돌.

재작년 겨울 눈밭 위 비키니에 문부츠를 신은 이미지가 유행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올해는 스킴스(Skims)처럼 신체에 극도로 밀착되는 얇은 레이어가 대세인데, 그 위에 하스바니의 거대한 볼륨을 걸친 조합. 다시 돌지 않을까요.


Minimal (Skin): 스킴스처럼 신체에 극도로 밀착되는 얇은 레이어.

Maximal (Fur): 마이아 하스바니처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텍스처.


가장 날카롭고 예민한 피부(Skin)가 가장 둔탁하고 거대한 털(Fur)과 만날 때, 우리는 거기서 **'키치(Kitsch)한 위트'**를 발견합니다. 둥글고 무해한 형태가 주는 유머이자, 동시에 날것의 감각을 자극하는 세련된 긴장감입니다.


4. SPATIAL TRANSLATION "패션의 볼륨을 건축으로 치환하다"

디자이너로서 저는 이 '충돌의 미학'을 공간의 언어로 번역(Translation)하는 상상을 합니다. 만약 마이아 하스바니의 저 복슬복슬한 텍스처가 옷이 아닌 **'건축의 마감재'**가 된다면 어떨까요?

Scene 1. The Fur Column (털 기둥)

폴리싱된 바닥. 정제된 흰 벽. 노출 콘크리트 천장. 그 한가운데, 공간을 지탱하는 가장 딱딱하고 구조적인 요소인 '기둥'을 긴 털이 흩날리는 **페이크 퍼(Fake Fur)**로 감싸버립니다. 그것도 매끈한 원기둥이 아니라, 하스바니의 바지처럼 울퉁불퉁하게 부푼 형태로. 차가운 바닥 위에 솟아오른 '털 기둥'은 그 자체로 공간에 거대한 위트를 던지는 오브제가 됩니다. 이것은 '구조'를 '생명체'로 전복시키는 시도입니다.

Scene 2. The Feathered Ceiling (깃털 천장)

노출 콘크리트 천장 아래, 하스바니의 두 번째 룩 그 형태 그대로 천장에서 내려오는 조명. 회색빛 깃털이 겹겹이 레이어드된 덩어리들. 차가운 콘크리트와 부드러운 깃털의 충돌.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깃털 사이로 흩어지며 공간 전체를 유기체의 내부처럼 만듭니다.

맥시멀한 미니멀리즘. 정제된 공간 속에 툭, 하고 떨어지는 포인트. 명백하게 안 어울리는데, 불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가가고 싶고, 만지고 싶습니다. Friendly Monster가 공간이 되는 순간입니다.


5. CLOSING "관찰은 발견이 되고, 기획이 됩니다"

마이아 하스바니의 니트에서 시작된 시선이 기둥과 천장에 닿았습니다.

단순히 "특이하다"고 넘길 수 있는 패션 이미지 속에서 **'볼륨(Volume)'**과 **'보호(Protection)'**라는 키워드를 읽어내는 것. 그것을 공간의 물성으로 치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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