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비 용사

by 노엘

트리를 꺼냈다. ‘음, 올해는 왠지 다들 평년보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 같은 걸’ 하는 마음에 청개구리 기분이 되어서 미루다 보니 작년보다는 얼마간 시기가 늦어졌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던 베개 커버를 벗기고, 거실에 있는 쿠션 커버와 담요도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을 하면서 청소기도 함께 돌렸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트리용 전구를 감았다. 사용하던 네 종류의 전구 중에 한 개가 전원이 망가져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며칠간 미뤄진 기분이 들었다. 바로 제품 하나를 새로 주문했다. 전구 감기가 끝날 무렵 세탁 종료음이 울렸고, 볕이 가장 잘 드는 침실에 빨래를 널었다.



역시 급한 일이 있을 때 하는 다른 짓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겁다. 사실은 서둘러 진행해야 하는 리터칭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로 기어 나와 태블릿을 손에 쥐니 곧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절망감이 들었다. ‘아아- 이대로는 무엇도 아름답게 만들 수 없어’ 하며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이웃들의 출근하는 소음들이 몇 번인가 지나갔고, 정신은 태블릿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은 맑아져 있었다. 트리를 꺼낸 김에 캐럴을 틀었고, 리터칭에 돌입하기 직전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전장에 나가기 전 전사의 각오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왠지 배도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아아- 어도비 용사의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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