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가 모두 닳아버린 시계인 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럴 때 마다 ‘아 맞다 배터리 없었지’하고 깨닫게 되지만 늘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가진 서너 개의 손목시계는 모두 배터리가 다 닳아 버리고 없다.
우연히도 이 시계들은 모두 선물을 받았고, 시간보다는 추억을 손목에 새기는 기분으로 외출하게 된다. 지금의 시간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매번 선물 받았던 날의 기억과 사람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제는 10년도 지난 추억부터 불과 수년 전의 애달픈 기억까지.
배터리를 한 번에 모두 갈아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그러고 나면 왠지 이 어렴풋한 추억이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미루고 있다.
시간을 확인할 수 없어서 그 시간이 더 선명히 떠오른다.
서쪽 태양의 해가 저물고, 너의 얼굴에 노을빛 그림자가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