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도 공군 부대 방문
총 열흘 간의 콜카타 방인 기간 중 그의 계획에 마지막으로 포함돼 있던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정은 그가 속한 공군 부대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업무 환경과 삶의 배경이 되는 곳에서 앞으로 내가 그와 함께한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사전답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 군부대는 방문해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세상 어딘가에는 정해진 인연이 있다 했던가... 인도 공군 부대를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콜카타 시내로부터 남서쪽으로 140km쯤 떨어져 있는 카락푸르(Kharagpur) 군에 있는 그가 배치된 Kalaikunda Air Force Station으로 향했다. 내부인들 사이에서는 줄여서 'KKD'로 약칭하기도 한다. 이곳은 전투 부대보다는 훈련 부대의 성격을 띤다. 주로 예비 군 조종사를 대상으로 비행전술을 교육 및 훈련함으로써 훗날의 숙련된 전투 비행 조종사를 양성해 내는 곳이다. 부대 반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머리 위로 마하의 속도로 비행 중인 그들이 남긴 전투기 엔진의 굉음이 귀를 찔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도 공군은 공식 명칭으로 Indian Air Force (IAF)이며 국방부 산하의 군사 기관으로서 인도의 영공을 방어하며 분쟁 발생 시 공중전을 실행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 그는 MiG-27 싱글 엔진 전투기 조종사로 비행 커리어를 시작했다. 1970년대 중후반 소련에서 도입된 공격기로 86년까지 소련에서 자체생산했으며 이후 소련의 계승 국가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카자흐스탄에서 사용했다. 인도 공군도 이를 개량하여 도입했으며 노후화된 기종인 만큼 일련의 사고 이후 2019년 12월 최종적으로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관련 부대는 모두 해체되었다. 근 10년을 함께했던 정이 잔뜩 들어버린 거칠지만 힘이 넘쳤던 비행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도 주력 전투기에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개발한 합작품 Jaguar로 기종전환이 이루어졌고 그 후 비행교관으로서 현재는 영국산 단발 고등 제트 훈련기인 Hawk를 조종 중이다.
모든 군부대는 국가 정부보안 영역으로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가 한 달 전에 신청해 특별허가를 받아 발급받은 통행증으로 군사 기밀 지역을 제외하고 기본 편의시설과 부대원 숙소 근처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외국인 신분으로 부대 안에서 며칠간 머문다는 것이 참 진기한 경험이었다. 벌써 공군 가족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칼라이쿤다 부대는 아주 외진 지역에 덩그러니 있다. 어느 정도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읍은 차로 30분 거리의 카락푸르이다. 공군 부대의 특성상 활주로를 포함해 광활한 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도 공군 본부 및 도심 내의 특별 임무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비행대대는 여기에 사람이 산다고?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 듯한 민간인의 삶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부대에서 며칠간 지내고 어느 정도 주변 지리에 익숙해져 혼자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부대 내 작은 시장에 가서 과일 및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오기도 했다. 물론 의사소통에 문제가 따르긴 했지만 그럭저럭 손짓발짓해 가며 일상을 해결할 수 있었다. 군사지역인 만큼 안전은 확실했다.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도, 믿음직한 그의 친구이자 동료들도, 장교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심과 예의가 있는 부대 내의 모든 직업군인들도 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와 첫 번째 주말을 맞이해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차량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휴가를 더 길게 내지 못한 그가 쉬는 날만을 기다려 드디어 부대 밖으로 나왔다. 내가 직접 찾은 부대 근처(근처라고 해도 아대륙 인도를 생각하면 기본 한 시간이다.)의 관광지로 소개된 'Bhim Bandh' 자연 폭포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남자 친구의 친한 동료 부부와 함께 출발했다. 10월의 서벵골 날씨는 우기때와 비교하면 습도는 현저히 낮고 선선한 바람도 불어서 여행하기에 최상의 날씨다. 폭포수를 보러 가는 길에 펼쳐진 청명한 하늘과 드넓은 벌판을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들의 활기 넘치는 힌디어 대화를 배경음 삼아 나만의 경치 감상에 잠시 빠졌다. 도시 생활만 해본 나에겐 지극히 시골스러운 삶인 듯했지만 그들의 고요하고 평온한 환경도 그럭저럭 매력이 있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에서 헤어 나올 때쯤 저 멀리 조금씩 폭포(?)처럼 보이는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허허벌판에 두 발을 딛고 잠시 우리 눈을 의심했다. 어느 각도에서 봐도 폭포는 아닌 것이 분명한 듯한 광경을 두고 다들 폭소를 터뜨렸다. 외국인이 범하는 흔한 실수 중 구글 카테고리에 걸린 무리수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1년이 넘게 근무하던 곳 근처에 올만한 관광명소가 있다면 그들도 알았을 터. 나는 무작위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폭포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 있길래 자연 유산을 기대하고 왔지만 그냥 누군가의 논밭 옆에 있는 물 공급처였을 뿐이다. 우리만의 작은 해프닝에 그냥 웃어넘겼다. 그 옆으로는 거대한 대지와 농부의 삶의 현장이 우리를 반겼다. 정겨운 오후를 그렇게 보내고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이 시간을 잠깐의 휴식으로 본다면 분주하고 정신없는 도시에서의 평범한 내 삶에서 벗어나 정신수양 하는데 안성맞춤이겠다 싶지만 내 삶의 뿌리를 이곳에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정적이었다. 넘치는 에너지, 짙은 열정,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 진취적인 태도, 그리고 역동적인 서울에서의 내 삶이 이렇게 온전한 고요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잠시 스쳐가는 여행지에서 관광객으로서 느끼는 낭만과 여유는 삶의 터전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것과는 천지차이 아니 인가. 그럼에도 난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어딜 가도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한 나이기 때문에 그 과정 또한 즐겨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이끌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인 그가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무거운 생각에 빠져있던 나의 몽상가적인 시간을 깨뜨린 것은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였다. 문 밖에는 그와 군사학교부터 시작해 전설적인 조드푸르(공군 서부 사령부 요충지) 배치를 함께하고 그처럼 10년간 러시아산 MiG 기를 조종했던 친한 동료이자 말로만 들었던 GP가 서있었다. 무지 반가운 얼굴이었다. 네가 한국인과 만난다고? 하며 의아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리의 장거리 연애부터 재결합을 결정하기까지 그동안 있었을 수많은 고민과 걱정을 모두 알고 나눌 수 있을 만큼 친한 친구였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했다. 이미 기혼자인 친구의 아내 또한 공군 내 지상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으로서 그들은 떨어져 지내는 중이었다. 결속력 높은 작은 사회인만큼 공군 부대 내에서는 서로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혼자 있는 동료들을 아주 살뜰하게 챙기는 문화가 있다. 공군 내 가사에 도움을 주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의 메이드인 Shanti의 손을 빌려 저녁을 완성했다. 감자가 들어간 콜리플라워 채소 요리(Aloo Gobi), 치킨 커리,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렌틸콩 종류인 초록 뭉달(Green Moong dal) 수프가 메뉴였다.
이것이 바로 인도 가정식의 표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화려한 인도 음식은 외부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대부분이며 인도 가정식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영양가 있고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나와 딱 한 달 차이가 나는 그의 생일날이었다. 생일 달과 일이 모두 같은 숫자인 우리.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난 그와 꼭 한 번은 생일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날까지 머물기로 했고 생일 전날 알게 된 다른 동료의 약혼녀에게 부탁해서 부대 내 케이크 샵에 맞춤제작을 주문했다. 히어로 마블 영화 극성 팬인 그의 취향을 고려해서 캡틴 아메리카로 장식했다.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그의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쓴 한글을 위에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깜짝 방문을 한가운데 우리는 대대장(Commanding Officer, CO)의 짓궂은 장난에 휘말려 어디선가 누가 구해온 체리를 반쪽으로 쪼개 먹는 것으로 소위 인도 공군의 전통이라는 그들의 환대에 어쩔 수 없이 응했다. 모두가 어울리기 수월한 사교적이고 낙천적이며 매력적인 사람들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만남이 결혼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거의 확실하게 공군의 일원이 될 나였기에 더욱 큰 환영과 챙김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서로 완벽한 의사소통은 아니어도 약간은 서툴고 어눌해도 우리는 이심전심이었다. 나는 마음 깊숙이 그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약속한 새로운 삶에서의 좋은 사람들과의 확장적인 관계가 의미 있는 자원으로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욕심을 비워내기에 적합한 고즈넉한 시골에 왔다. 부대에서 다시 한 시간 반 떨어진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가족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시아버지의 안식처와 같은 마을, Damchia. 남자 친구의 친할머니가 살아 계신 3대째 이어 온 보금자리였다. 첫인사를 드린 날.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 계시진 않지만 그때 처음 뵀다. 딱 우리 결혼식이 있고 몇 주 뒤 세상을 떠나신 거 보면 손자가 장가가는 모습까지 보시려고 생을 붙잡고 계셨는 지도 모른다. 시골집 앞마당에 들어오자 큰 키에 묵직한 코코넛 열매를 매달고 있는 코코넛 나무와 대추야자나무가 강렬한 시선을 끌었다. 몇백 년에 걸친 생명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약간은 허름하고 빛바랜 지붕과 외벽이 '내가 지금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도의 까마득한 시골에 왔구나'를 실감하게 했다. 시부모님이 열성을 다해 반겨주시며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는 축제 기간의 성찬인 튀긴 납작 빵인 루치(Luchi), 쪼개진 초록 렌틸콩(Moong dal), 이전에 소개한 벵골 감자요리(Aloo posto)를 점심으로 내어주셨다.
나를 보마(Boma)라고 소개했다. 여자 친구라는 뜻의 벵골어이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를 위해 또박또박 크게 말씀드렸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난 연신 얼굴 한가득 환한 미소로 화답할 뿐이었다.
부대에서의 나흘을 마무리하고 다시 콜카타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마지막날 밤이었다. 한때 인도 해안경비대 (Indian Coast Guard) 헬리콥터 조종사였던 현재는 IndiGo 민항기 조종사인 친구를 다시 만나 저녁을 함께했다. 점심으로 벵골 지역의 물소인 Wate Buffalo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배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참고로 인도 전역에서 소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민 대부분이 힌두교인으로 암소를 숭배하기에 소고기(beef)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Buffalo는 흔히 도축이 되며 서벵골 및 인도 남부 케랄라 및 타밀 나두 주에서는 소고기가 오히려 돼지고기 보다도 흔하다. 시내의 남쪽에 위치한 무슬림 지역으로 가면 소고기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이 즐비하다. 저녁은 쇼핑센터로 가서 친구와 마지막 술 한 잔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코로나 기간 영상 통화에 기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공허한 마음을 위로했을 때 남자 친구 곁에 있었던 친구들과 비로소 같은 시간을 보낼 기회가 주어졌고 이제야 그의 고향에서 함께한 모든 순간은 나에게 사랑과 환희로 다가왔다. 그가 나의 전부가 될 수 있기에 그 외로 다른 것들에 대한 욕심을 조금 내려둔다면,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난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마음에 품은 계획들을 실현하며,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갈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와 결혼을 약속했다.
외로운 고군분투가 될 수도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도전의 연속일 수도 있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나 스스로를 미리 단련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찬란한 빛을 볼 수도 있는 인생. 유독 더 붉었던 인도를 떠나는 길에 비췄던 석양이 내 마음에 피어오르는 새로운 불씨와도 같았다. 자주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그와 함께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 인생의 아름다움 만큼은 고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에 차 난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는 그 길.
"우리 마음은 생의 부름에 있을 때마다 이별을 준비하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만 한다.
씩씩하게 슬퍼하지 않으면서도 또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다.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어 우리를 보호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내가 되어가는 순간>,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