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텐트 시장을 이끌다.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도어' (리리 퍼블리셔)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언제나 세상엔 오직 경외감 또는 엄청난 성실성 때문에, 아니면 기존 지식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낙담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는 것을 자신은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분노해서 결국 핵심 질문을 던지는 소수가 존재한다. - 칼 세이건
동아알루미늄(이하 DAC)은 대단히 독특한 기업이다. 텐트 완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는데도 텐트 사용자들은 동아알루미늄의 브랜드 DAC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마치 아이폰을 만든 애플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액정 생산 업체에 열광하는 것과 같다. 원부자재를 생산하는 업체가 곧 브랜드가 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파브릭으로는 고어텍스, 코듀라, 퍼텍스 등이 있고, 부자재로는 YKK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도 최종 소비자, 즉 사용자들로부터 직접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로부터 직접적인 지지를 받는 DAC는 ‘브랜드 소비는 소비자가 브랜드 스토리에 참여하는 과정’ 이라는 나의 브랜드 정의에 부합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동아알루미늄의 기술력과 기업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고, 그 중심에는 동아알루미늄을 일관된 방향으로 30년 이상 이끌고 있는 라제건 대표가 있다. 라 대표는 DAC의 제품 디자인과 기술 혁신을 마케팅 활동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표현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라제건 대표는 유능한 기업인이기도 하지만 세계 아웃도어 업계에서는 텐트 아키텍처 디자이너로 더 유명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많은 스테디 셀러 텐트들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아웃도어 매니아가 아닌 사람으로 유일하게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도 라제건 대표가 기업 대표가 아니라 텐트 아키텍처 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기 때문이다.
Q.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는 DAC의 대표에게 드리는 질문과 텐트 디자이너 JakeLah에게 드리는 질문으로 나누어서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DAC 히스토리에 관한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천체망원경을 개발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때 헬리녹스(Helinox)라는 이름도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DAC의 히스토리를 소개해주세요.
A. 천체망원경은 Featherlite 가 초경량 텐트폴로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후에 알루미늄 텐트폴과 다른 분야로 잠시 한눈을 팔았던 프로젝트라고 말씀드리는게 맞겠습니다. 그 덕분에 브랜드명으로 구상하였던 Helinox라는 이름은 하나 건졌지만요. DAC 는 미국 유학시절 뭔가 우리 손으로 세계최고를 만들 결심을 했었던 것을 실행으로 옮긴 프로젝트였습니다. 사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사회생활이라고는 미국은행에서 몇 년 일해본 것이 대부분이었던 제가 제조업을 해보겠다고 뛰어들었으니 무모하기 짝이 없었죠. 1988년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서 알루미늄 튜브만 만들다 보니 벌써 32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감사하는 일입니다.
Q. 대표님의 ‘집착’으로 봐서는 그 프로젝트를 계속 밀고 나가셨으면 천체 망원경에서도 일가를 이루었을 거 같습니다. 제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 점이 아쉽습니다.(하하) 인터뷰 서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DAC는 생산업체(manufacturer)가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진 대단히 독특한 기업입니다. 오늘의 DAC가 있기까지 핵심적인 기술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그렇죠? 게다가 완제품 생산업체도 아니고 부품생산업체가 시장에 알려지게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겠죠? 광고를 해 본적도 없고. 그렇다고 DAC 에 무슨 특별한 핵심적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도 가끔 DAC 가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을까 궁금해서 생각을 해 볼 때가 있습니다. 무얼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아마 처음부터 텐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텐트 메이커나 브랜드 보다 텐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가 더 많이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브랜드들과 다투기도 하고. 자기네 제품인데. 그런 마음이 오랜 시간을 두고 조금씩 시장에 알려지게된 것 아닐까요? 아무래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위해 애정을 쏟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될 테니까요.
Q.제품 디자인과 혁신은 DAC의 마케팅 활동이 아니라 집착(obsession)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제품 개발자 입장에서 대단히 인상깊은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술 혁신보다 세련된 마케팅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입니다. DAC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전통적인 방식의 마케팅 활동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오늘날의 DAC라는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A.흠… 어려운 질문이네요. 다소 알려지긴 했어도 ‘오늘날의 DAC’ 라고 할만한 브랜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싱거운 대답이 될까 봐 걱정입니다만… 조금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늘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을 했던 점 아닌가 싶습니다. 텐트폴을 만들긴 했지만 텐트폴로 구성된 완제품인 텐트 사용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생각하다 보니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집착일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답이 안 나오다 보니 계속 들여다보게 되니까요. 마케팅이라고 하자면 저의 도움을 고맙게 생각하던 바이어들이 자꾸 DAC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제 조금은 알려진 것도 같습니다.
DAC의 수많은 텐트 토이들은 라대표의 사용자 편의성에 대한 오랜 고민의 결과물들이다. (07-04-02.jpg)
Q.. 억지로 만들 수 없는 게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일전에 DAC의 30년을 회상하면서 10년 단위의 키워드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DAC의 지난 30년과 앞으로의 10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달려올 때는 잘 몰랐는데 돌아다보니 지나온 궤적에서 뭔가 조금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회사 초기인 1990년대에 철재 구조에 직선 가옥형으로 되어있던 대형텐트 시장을 가벼운 곡선형으로 바꾸는데 기여하였다면, 두번째 십년동안은 Featherlite의 개발을 시작으로 백팽킹 텐트의 경량화에 공을 들였습니다. 새로운 텐트모델 개발 과정에서 토이들도 많이 만들었구요. 다음 십년은 체어원으로 출발하여 경량 아웃도어 퍼니처들을 개발하는데 온힘을 쏟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퍼니처들은 헬리녹스 브랜드로 소개해 왔구요. 앞으로의 십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겠지만 제가 주도적으로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십년이 되겠죠 저로서는 지난 삼십년의 테마들을 모두 융합하여 새로운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장비들을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텐트와 퍼니처들을 다듬어 실내에서만 가능하던 활동들을 도시 속의 야외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들을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10년도 큰 기대를 가지게 하는 말씀이십니다. 그동안 기업을 경영하시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A. 어휴… 돌이켜 보면 십년에 한번은 큰 어려움이 닥쳤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공장을 짓고 기계들을 만들다가 아직 공장이 돌아가기도 전에 갑자기 아버님이 돌아가시니 자금이 끊겨 힘들었구요, 그다음엔 국내 외환 위기인 IMF, 그리고 십년 후엔 미국 월가의 금융 위기. 그리고 이번에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까지 십년에 한번씩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업경영에 어려움은 언제든지 갑자기 닥칠 수 있는 일이어서, 평소에 회사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튼튼한 체질로 만들어 놓으려고 애를 써왔지만, 그래도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하루 하루가 늘 조마조마하죠. 회사 임직원들이 회사가 어려울 때 함께 힘을 보태는 전통은 동아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Q.이제부터 질문은 기업의 대표가 아닌 텐트 디자이너로서 JakeLah에게 드리겠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텐트 개발 자체에서 느끼는 매력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사실 비즈니스 모델에는 흥미도 별로 없고 도전의식도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불편해 하는 것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욕구는 커요. 그런 것이 텐트 개발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남들을 위해 만들어 주고 그걸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즐겁죠. 보람도 있고. 그런데 돕는 대상이 초기에 텐트 메이커에서 텐트 브랜드로, 사용자들로, 그리고 상상 속의 미래의 사용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온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했다면 텐트 개발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거예요. 텐트 개발이라는게 노력은 엄청 들고 돈은 안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죠.
Q.부족하지만 저도 대표님의 그런 마인드 덕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럼 텐트를 설계하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제품 설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용자의 불편함을 줄이거나, 새로운 편리함을 추가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겠지요? 텐트도 마찬가지구요. 일단 ‘문제’가 무엇인 줄 알게 되면 십년, 이십년이 걸리더라도 계속 머리 속에 담아두게 됩니다.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아직도 해결 방법을 못 찾아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들이 세상에 나온 것들 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텐트 구조를 처음 구상하던 1990년대 초기에는 주로 텐트구조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고, 조금씩 배우다보니 텐트 본체와의 조화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텐트를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환경까지 종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Q.텐트야말로 사용자의 관점이 중요한 장비같습니다. 직접 설계한 세계적인 브랜드의 텐트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설계한 텐트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모델은 어떤 제품인가요?
A. 어떤 제품을 말씀드려야 할까요. 많이 판매되어 유명해진 모델들에 꼭 애착이 가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로서는 여러 해 동안 풀지 못해 애쓰던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무척 기쁜데, 그런 것이 텐트 모델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툴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Helinox 에 만들어준 터널텐트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개발될 수 있는 자립형 모델입니다. 터널 텐트의 큰 단점 중의 하나인 비자립을 극복하여 자립형 터널이 완성되어 흡족합니다. JakeLah 브랜드로 소개한 코트용 텐트인 J.COT190에 처음으로 적용해본 TR(Tension Ridge)도 제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툴이 되리라고 봅니다. 텐트 입구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툴로 Sea To Summit 에서 새로 소개하는 텐트들에 적용해 보았는데 사용자들이 어떻게 받아드릴지 궁금힙니다.
Q. 최근 JakeLah라는 개인 브랜드 비즈니스를 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돌이켜보면 꽤 오랫동안 개발자 이름은 없는 텐트 개발을 해왔습니다. 항상 브랜드 이름으로만 세상에 소개가 되었죠. 십년 쯤 전엔가 미국 백패커 매거진(Backpacker Magazine)이라는 잡지에서 제 특집기사를 싣겠다고 했었습니다. 숨겨진 개발의 주역을 소개하겠다구요. 그런데 제가 거절했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텐트 디자이너로서 제 이름을 드러낼 준비가 안되었다고 판단했었죠. 이제는 제 이름을 꺼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 메이저 브랜드들이 제가 개발해준 모델에 Architecture by JakeLah 라고 텐트에 라벨을 붙이고 홍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십년전 쯤에 시작한 Helinox는 감사하게도 국내외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한 브랜드로 성장하였습니다. JakeLah는 Helinox와 달리 사업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제품 개발의 역사를 알려주는 디자이너 브랜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겸손함과 자신감이 잘 균형을 이룬 말씀같습니다.(하하) 학창 시절 국악 동아리에서도 활동하시는 등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DAC 사옥 곳곳에서도 대표님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요, 문화 예술이 대표님께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나요?
A. 문화와 예술은 철학과 함께 제 삶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 요소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나무와 꽃, 음악, 미술을 워낙 좋아했어요. 회사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회사 사옥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회사 대표로서 직원들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하겠는가 등등의 생각은 철학적 사유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와 예술은 철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구요. 회사의 존재이유에 대한 생각은 자연히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이 공장 환경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 제게 큰 행복을 줍니다.
Q. 바쁘신 와중에도 사회 공헌 활동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시면서 대표님이 가지고 계신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원칙이나 철학이 듣고 싶습니다.
A. 사회공헌은 기업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일 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부가가치는 대부분 기업활동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이 부가가치들이 승수효과에 의해, 그리고 세금을 통해 분배되게 됩니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 말씀드리면 기업은 그 존재 자체가 CSR을 감당합니다. 직원을 고용하고 세금을 내기 때문입니다. 조금 넓게 생각하면,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을 하는 분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그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CSR 활동을 늘려나가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다 더 살만한 세상이 되겠지요. 이것은 강제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철학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다가 최근에 한국자원봉사협의회의 상임대표까지 맡게되어 기업활동과 사회공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되네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는 기업들이 수익성에도 도움이 되는 환경이 되면 CSR은 자연히 늘어나리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DAC가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간 텐트 개발에서 일가를 이루셨는데 앞으로 10년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 것을 기대하며, JakeLah로도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뵙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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