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노트> “사물들” 김선우
<필사 노트> “사물들” 김선우
봄에, 나는 늘 쩔쩔맨다.
봄꽃이 피고 지는 모든 절정의 순간들에
가슴이 뛰고 온 몸이 간지럼을 타듯 해사해져서 어쩔 줄 몰라한다.
'환장하겠다'라는 말은 봄꽃 속에서 무르익어 터진다.
봄에, 활짝 핀 꽃나무만 보아도 가슴이 둥당거리고 먼 데 꽃나무까지 기어이 찾아들어
꽃그늘 아래 앉으면 한나절이 무상하게 흔적도 없이 훌쩍 흘러간다.
봄꽃이 피고 지는 모든 과정은 과거 현재 미래의 총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벙그는 망울을 보며 꽃소식에 마음 동동거릴 때부터
하나 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기까지의 꽃나무는 미래의 힘으로 찬란하다.
그것은 약속의 시간이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만발할 때에는 꽃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봐 주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오로지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현재 속에 판타지를 모시는 축제의 시간,
활짝 핀 꽃나무 아래에서 우리의 시간은 가장 현재적인 몽롱함으로 찬란해진다.
이 시간엔 과거도 미래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저 현재를 누릴 뿐이다.
그것이 짧기에 더욱 열렬하게.
꽃들이 대지로 돌아가고 잎이 무성 해지는 때가 오면 꽃나무는 다시금 과거의 힘으로 찬란해진다.
꽃 떨어져 사라져 간 자리가 불탄 자리처럼 시큰거리며
또 한 번의 봄이 과거가 되었음을 일러주는 그때,
과거라는 시간은 오묘하여서 그때에야 비로소 내가 건너온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알게 된다.
봄이 과거가 될 때 비로소 봄이 기적이었음을 알고
그 봄 속에 한량없던 낮술의 기억을 감사히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