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늦은 길은 없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게 된 건, 누군가의 멋진 명언 때문도 아니고, 스스로를 북돋우기 위해 억지로 붙잡은 문장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그러나 결정적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경험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몇 해 전, 저는 스스로를 ‘이미 방향이 정해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커리어도 어느 정도 궤도에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안정적인 길이라고 말해 줄 만큼 무난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난함이 저를 계속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길이 정말 나한테 맞는 걸까?”, “지금 바꾸기에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이 매일같이 마음 안쪽에서 울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그 질문이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나이는 들었고, 이미 경력은 쌓였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교육원에서 열린 체험 수업에 들어가 보게 됐습니다. 그날 저는 처음으로 초등학생들과 글을 읽고, 같이 질문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수업 끝에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원래 이런 일 했어요? 저랑 대화하는 거 보니까 오래 한 사람 같아요.”
그 말이 참 이상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아이들 앞에 서 본 적도 거의 없었고, 교육과는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 ‘처음’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마음 한가운데를 찌르듯 들어왔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늦은 게 아니라 ‘맞는 걸 이제서야 찾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이와 경력은 시간이 쌓여 만들어 준 지연이 아니라, 이 선택을 정확하게 내릴 수 있게 준비시켜 준 배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저는 다시 국어책을 펼쳤습니다. 배우고, 읽고, 교실에 들어가고, 책상 앞에 앉아 새 수업안을 만들고. 그 모든 과정이 새삼스럽게 좋았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불안한 이유는 내가 늦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이 정말 간절한 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마흔에 가까워진 제게 한 학부모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자기 길 찾은 분 보면 참 멋있어요. 지금 시작했다는 게 더 대단한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인생에서 늦은 건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하는 순간이라는 걸. 반대로, 내가 나를 다시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는 어떤 길도 늦지 않다는 걸.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