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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석 chris Apr 08. 2019

학생 시절 경험한 프로그래밍

나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이야기

* 본 글은 2014년에 블로거에 작성한 글로 조금 다듬어서 이전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3,4 학년쯤(90년대 초반), 어머님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에 보내주셨던 것도 기억한다. 조그마한 상가의 3층에 한편의 방처럼 생긴 학원에 들어서면, 컴퓨터가 여러 대 놓여 있는 방이 있었고, 내 기억으로는 검은 스크린에 초록색 글자로 더하기, 빼기 같은 걸 했던 듯싶다. 아마도 Basic 이였겠지.. 그런데, 그리 관심은 많지 않았었고, 학원도 오래 다니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처럼 코딩 조금 하면 웹 브라우저나 스마트폰으로 멋진 화면들을 볼 수 있었다면, 어린 시절에라도 눈에 확 들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걸 즐겨했던 나에게는 별 감흥이 없었었다.

중학교 시절(90년대 중반)에는 삐삐가 유행했었다. 부모님 몰래 삐삐를 구해서 친구들과 번호로 장난치다가 걸린 게 한두 번이 아닌 듯.. 한 번은 삐삐에서 버튼을 누르면 현재 시간을 음성으로 알려주는 검은색 기계를 들고 다녔었는데, 어머님 앞에서 버튼이 실수로 눌러져 "지금은 몇 시 몇 분입니다."라는 여자 음성이 흘러나온 걸 들으시고 놀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새로 산 시계예요." 하고 말도 안 되게 얼버무렸었다..ㅋ 이 시점에는 전화선을 모뎀에 연결하여 컴퓨터 통신을 하던 시절이다.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곳에 가입하여 회원들과 채팅하던 게 낙이였던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 듯싶다. 삐삐를 받으면, 근처 공중전화나 집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한 시간 넘게 통화가 되지 않는 집은, 분명 모뎀으로 컴퓨터 통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걸로 전화요금 폭탄 맞는 경우도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90년대 후반)에는 각 집마다 PC를 구매하는 비율이 점점 올라간 듯싶다. 특히,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면서, 학교 근처에 PC방들이 성행하기 시작했고, 농구, 축구, 당구에 빠져 있던 애들이 전부 PC방으로 몰렸었다. 나는 수능 보기 전에 게임에 빠지는 게 두려워 친구들과 스타를 하기보다는 당구장(응?)에 살다시피 했었던 듯..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집에 컴퓨터가 없었다.

대학교 입학 시 전공을 고민하던 나는 다른 건 몰라도 공학도가 되고 싶었고, 그나마 가장 관심이 많았던.. 아니.. 관심보다는 조금이라도 일상생활에 접해 봤었던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하고 싶었고, 수능 점수에 맞는 서울 내 4년제 대학교 중 컴퓨터공학과가 있었던 대학의 공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 580명인가 되었던 공학부의 내 전공은 3학년 때 정해지는 거였지만, 주 전공 필수 강의를 2학년부터는 들어야 했기 때문에 1년 만에 희망 전공을 정해야 했고, 그 당시 내 선배들은 컴공이 아니라 식품공학과였다. 공학부이다 보니, 선배를 정할 때 이름순으로 580명을 펼쳐 넣고, 40명씩 반을 잘라 A ~ O반까지 나눠서 A, B 반은 컴공이 선배.. 이런 식으로 선배를 배정받았었다. 난, 조 씨 성 덕분에 M 반에 속했었고, 지금도 만나는 내 대학 동기들은 모두 성이 조 씨, 최 씨, 황 씨 등이다..ㅋㅋ (이런 방식의 입학 방식은 바로 폐지되었음..ㅡㅡㅋ) 여하튼, 대학생 초반에는 컴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관련 공부를 하기 쉽지 않았었고, 열심히 동아리 생활을 했던 나에게 학부 생활은 그리 즐겁지 많은 아니었다. 관심 있는 동기,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군대를 가기 위해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학부 생활보다는 동아리 생활에 치중했던 나는 학점이 엉망이었다. 부끄럽지만, 4개 학기 평균 학점이 4.5점 만점에 2점대를 넘기지 못했었다.ㅡㅡㅋ 군입대까지 시간이 남아서 PC방, 당구장, 호프집 같은데에서 알바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한데, 어느 날.. 아무것도 준비 못 하고 군대를 가서 2년 삽질하고 와야 하는 게 억울했고, 불안했다. 해서, 멋도 모르고 컴공으로 졸업하여 관련 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방위산업체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를 해야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안고, 복학을 하였다.(실은, 집안 사정상 군대를 가기 힘든 것도 있었다.)

군대를 갔다 온 건 아니었지만, 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 코딩 능력을 어떻게든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강남의 모 컴퓨터학원에서 강의를 듣기도 하였지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신, 학교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강의는 다 듣기 시작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당시(2000년대 초반) Java 관련된 과목이 하나밖에 없어서 맘 맞는 선, 후배들과 함께 스터디를 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나름 철학을 가지고 있던 선, 후배들과 코딩을 함께 해 가면서 재미와 분위기를 익혔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후배들보다 훨씬 못 하고 있어서 쪽 팔려서 더 노력했던 듯.. 대학 강의 과정에서 했던 프로젝트는 대부분 네트워크 관련된 프로젝트였다. 채팅 프로그램, FTP 프로그램, MFC 기반의 C/S 프로그램 등이었다. Copy & Paste를 미친 듯이 했었었고 내 머릿속에서 나온 코딩은 몇 줄 안되었지만, 재미를 느꼈었고, 여러 밤을 쉽게 세곤 했었다. 한 번은 PC방에서 FTP 프로그램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PC방 주인이 옆자리에 앉더니 머 하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 적도 있었다. 아마, PC에 머 이상한 작업 하는 걸로 오해한 듯 싶다..ㅋ

4학년 졸업이 다가오면서 방산업체를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었다. 한데, 아쉽게도 정부에서는 병역특례 인력을 줄인다고 정책을 바꿨고, 심지어는 두 자릿수로 줄어들어 대부분은 이미 입사하여 T/O를 기다리고 있는 내정자들에게 돌아가는 실정이었다. 나는 병무청에서 그해 방위산업체로 T/O를 배정받은 전체 업체의 리스트를 확보하였고, 전체 업체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메일 주소가 있는 곳에는 메일을 보냈고, 것도 없으면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몇 군데에서는 면접을 보자고 했었고, 모 대학교 안의 산학연으로 들어가 있던 업체도 있었다. 정확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나지만, 기차 타고 남해 어딘가 가서 바다가 보이던 대학 캠퍼스 안에서 면접을 봤던 기억이 난다. 면접관이 물어봤다. "입사하면 어떻게 일을 할 것이냐" 답은 별거 없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다시 묻더라.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이냐" ㅋ.. 지금 생각해보니 딱히 내세울만한 기술이 없었던 나에게 일자리를 줄 업체는 없었던 듯싶다. 그때 만약 학교에서 데이터베이스의 테이블 만드는 방법과 SQL 활용법, 웹 애플리케이션 작성 및 WAS사용법 같은 것을 가르쳤다면, 쉽게 입사할 수 있었을 듯..ㅡㅡㅋ

결국, 난 병역특례 업체를 구하지 못했고, 군대를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 한 상황이었으니 여러 가지 옵션이 있었다. 학사 장교도 있고, 그냥 병사로 가도 되고.. 처음엔 나이 먹고 병사로 가기는 쪽 팔려서 공군 학사 장교 시험도 봤었다. 공군으로 본 이유는 그 당시 내 동생이 공군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이유밖에 없었던 듯.. 그 시험은 내가 지금까지 본시험 중에 제일 어려웠던 시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보기 좋게 떨어지고 다시 고민해 보았다. 내 전공을 살리면서 군 생활을 짧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때 우연히 알게 되었던 핵심 기술 특화병 중 하나였던, SW 개발병.. 이력서를 준비해서 병무청에 제출하고, 서류 면접이 통과한 인력에 한해서 면접을 수행했다. 그 당시 육군 전산소의 대위님이 면접관으로 오셨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었다. 그때 기억이.. JSP 해본 적 있냐, 요거만 기억난다. 다행히 Java 공부하면서 해 본 게 있어서 할 수 있다고 답했었다. 실은, 컴공을 졸업한 사람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과 함께, 육군 병사로 지원하는 것 만 해도 큰 가산점이었다. 해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4월에 이등병으로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그리고 6주 훈련 후, 배치받은 부대는 바로 계룡대 육군 전산소, 여러 부서 중에 군수참모부의 군수소요과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곳에서 군생활이자 군 SI 업무를 처음 수행하게 되었다.

나는 이 순간 전 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였지만, 이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짙었던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미래가 불투명하던 아이였다. 대학은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고 음악 동아리 생활만 열심히 하면서 설렁설렁 다녔고, 막판 2년 동안 계절학기 3번을 강행하면서 겨우 대기업 커트라인에 부합하는 학점을 만들어낸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학점이라던지 학부생활의 충실도가 나중에 직장생활 이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닌 듯싶다. 가령, 음악 동아리에 가입하는 녀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기가 관심 있는 악기를 자기 돈으로 사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가며 연습을 해서, 개성 뚜렷한 다른 녀석들과 합주를 하는 재미로 대학 생활을 즐긴다. 이 모습은 프로그래머들이 본인이 원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선택하여 연마하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협업을 통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무척 닮았다. 실리콘 밸리의 근무 환경이 좋기로 소문난 회사에 가보면, 방음이 잘 되어 있고 투명한 벽으로 둘러 쌓인 합주실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이런 연관관계가 주된 이유가 아닐까..  

나는 나의 IT 인생의 시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SW 개발병으로 복무를 시작하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이때 겪었던 프로젝트나 보안관제 근무를 섰던 모니터링 실, 서버실, 거기서 작업하던 크고 작은 업체 분들과의 만남 등은 나의 업을 정하고 시작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SW 개발병 생활은 다음 글부터 쓰겠다.

복무 시절 병무청 홈페이지에 핵심기술 특화병 홍보를 위해 찍어 간 사진이 있다. 한데, 그게 아직도 있다. SW관리병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특기 번호도 바뀐 듯.. 기록 차원에서 남긴다. ;)


과거 S/W관리병 모집 웹 사이트


http://www.mma.go.kr/kor/n_mobyung/mojib/mojib03/mojib0301/mojib030103/mojib03010303/mjb_ilrampyo175300.html (현재 접속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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