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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석 chris Jan 03. 2019

'18년도 회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작년에는 1월 1일에 작년 회고글을 썼었는데, 올해는 1월 1일 자정을 넘겼는데도 글이 잘 써지지가 않는다. 뭐랄까, 이미 한해 회고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가.. 하지만 작년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이 정말 많다. 더 늦기 전에 한 해를 돌아봐야겠다.


돌이켜보니,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몇 가지만 글로 적어보자.


엘라스틱과 지낸 1년

17년 10월에 이직을 해서 14개월 정도 엘라스틱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작년 회고 글을 보니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기우가 있었는데, 가장 컸던 것은 '기술에 대한 목마름이 해소될까'라고 본다. 지난 1년 동안 엘라스틱이 품고 있는 여러 기술(엘라스틱서치, 키바나, 로그스태시, 비츠, 엘라스틱 클라우드, 엘라스틱 사이트/앱 서치 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기술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기반 기술들(언어, 프로토콜, 네트워크, 보안, 아키텍처 등)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면으로 훑어볼 수 있었던 한 해였다.


프로세스 측면에서도 배운 점이 많다. 지금까지 내가 체험하고 배웠던 것을 반대로 뒤집는 문화가 이 곳에서는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놀랍게 생각하는 것 중 한 가지는 모든 업무가 대부분 '자원(Volunteer)'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가장 급한일을 처리하는 것은 100% 자원 형태다. 오히려 우선순위가 낮은 업무들은 풀 형태로 할당받는다. 그리고 일을 어떻게 하는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은 있지만, 모든 일은 본인의 판단과 능력이 우선시된다. 물론, 간혹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감추기보다는 모두 공유하여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선하는 활동을 한다. 또한, 칭찬은 아낌없이 나눈다. 정말 좋은 문화를 갖춘 곳이다.


업무적으로는 처음으로 '고객 지원'을 하면서 정말 다양한 고객들을 만났고, 매우 광범위한 영역의 '문제'와 맞닥 드려서 해결해야 했다. 대부분 기분이 좋지 않은 '개발자'들을 상대하느라 간혹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기도 하였지만, 케이스 대부분은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했기에 고마움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이전 업무 경험 전부가 그들과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 입사 시에는 서포트 엔지니어 직함으로 입사를 했지만, 수습 기간이 끝나고 '시니어 서포트 엔지니어'로 롤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 게다가 APAC 지역에서 특정 제품의 서포트 테크 리더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나름 내가 하는 일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있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뉴욕 증시 거래소에 상장을 했다!! NYSE에 등재된 ESTC가 우리 코드다. 상장 직전의 회사에 합류하여, 상장하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공개 회사로 변모해가는 모습에 동참하는 경험은 앞으로 내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언젠가부터 잊고 지냈던 직장에서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상장하는 날 뉴욕 증시 거래소 앞 (출처: https://twitter.com/LifeAtElastic/status/1048203936853680129)


어느새 디지털 노마드 생활 14개월

엘라스틱에 합류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근무환경일 것이다. 처음에는 정기적으로 사무실에 나가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글로벌 고객 상대로 업무를 하다 보니 굳이 사무실에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은 중요한 행사가 있지 않는 한, 오롯이 나의 홈 오피스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옮긴 나의 홈 오피스는 아파트 1층이며, 베란다 앞에 작은 앞마당이 있다. 작은 텃밭을 꾸미고, 아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여기저기 심어 놓았다. 팀 동료가 하루 일과 중 점심시간에 정원일(gardening)을 매일 한다고 하였는데, 아파트에 사는 나도 비슷한 소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매일 점심시간에 정원을 조금씩 가꿨고 물도 주고 그랬다. 가을에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러서 고지 가위(감 따는 가위) 사서 감을 따다 먹었고, 텃밭에서 매일 같이 자라는 싱싱한 야채를 뜯어먹기도 했다. 지금은 추워서 밖에 잘 나가지 않지만, 업무를 할 때 보통 하루에 2시간 정도 정원에서 일을 하곤 했다. 야외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과 함께 일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키우는 식물들에게 둘러 싸인체 가끔 지나가는 새들을 구경하는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집 안에서의 근무 장소를 살펴보니, 내 서재에 들어가는 경우는 아이들이 하교한 이후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을 때뿐이었다. 오히려 시간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내고 있다. 일단, 식탁 위는 다른 장소에 비해 항상 이런저런 물건 없이 깨끗하며, 음식을 먹으면서 근무하기가 좋다. 예전에는 식사 시간에는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아침에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마시면서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요즘 내 일과의 시작이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이사를 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공간이 부엌이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탕비실이 붙어있는 사무실을 하나 만든 것 같은 기분이다.

홈 오피스의 주 업무 공간


대외 활동

2월 말에 예전 프로젝트에서 연을 맺은 UNIST 교수님 요청으로 딥러닝 특별 강좌의 1개 모듈을 맡아서 파이썬 기초 문법에 대한 강의를 했었다. 반나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어서, 딥러닝 과정에서 사용할 문법을 추리는 게 관건이었다. 다양한 기업에서 오신 실무자들과 학생들에게 파이썬의 기초를 가르치는 경험도 좋은 경험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엘라스틱 부스를 지키고 있었는데, 선하게 생기신 분이 다가오더니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하였다. 그분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오세용 기자였고, '리모트 워크'를 주제로 기고를 요청해온 것이다. 마소는 어렸을 때부터 즐겨 보던 기술 잡지였고, 그 잡지에 내가 직접 기고를 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리모트 워킹을 그리 오래 한 시점은 아니었지만,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십수 년의 전통적인 한국 직장 생활과 비교를 하기에는 충분했고, 공개되어 있는 조사 내용을 추가하여 조금 더 공신력 있는 내용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해당 글은 마소 392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 공개된 글에서도 전문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쓴 글을 IBM에 계신 부장님께서 눈여겨보셨었나 보다. 마소 기자님을 통해 IBM Developer Day 2018을 기획하시던 분에게 연락이 왔고, 전사 직원 대부분이 리모트 워킹을 하는 문화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공개 콘퍼런스에서 발표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11월, 엔터프라이즈 회사의 개발자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를 진행했고, 호응도 좋고 스스로도 즐겼던 발표를 했었다.


외부 활동 연사나 글을 쓸 때는 기술적인 내용과 문화적인 내용을 절반 정도 맞추려고 나름 기준을 세우고 있다. 둘 다 무척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중 앞에서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하여 공유하는 것은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꾸준히 비율 유지하면서 대외 활동을 유지해야겠다.

IBM Developer Day 2018 발표 모습


역서 "파이썬 핵심 개발자들과의 인터뷰" 출간

올해도 책을 하나 냈다. 이번에는 번역이다. 다섯 번째 책이다. 책 제목은 "파이썬 핵심 개발자들과의 인터뷰", 원제는 "Python Interview".  원서는 Packt사에서 2018년 초에 출간한 따끈따끈한 책으로, 파이썬 커뮤니티에서 잘 알려진 20명의 개발자들을 마이크 드리스콜이라는 친구가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그리고 나의 제안에 따라, 전 파이썬 소프트웨어 재단 이사인 김영근 님의 인터뷰도 21번째 챕터에 실었다.


이 책은 기술서가 아니다. 인문서에 가깝다. 그리고 21명의 출신 배경이 모두 다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많았다. 어투나 말을 전개하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그래서 정말 고생이 많았던 책이다. 각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독자의 반응이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이 영역에 20~3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현역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 많다. 앞으로 내 경력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나름 정립하는 귀한 경험을 했다.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딛으려고 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 동시에, 시니어 이상 레벨의 개발자들에게도 좋은 통찰을 안겨 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각 챕터마다 귀한 정보들이 많아서 간단한 리뷰로는 소개하기가 힘들듯 싶다. 시간 나는 대로 조금씩 공유하는 형태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파이썬 인터뷰" 원서와 역서

그 외 집필 활동

처음으로 2 건의 감수 작업에 참여했다. 하나는 파이썬 주피터 노트북 관련 역서며, 다른 하나는 엘라스틱 스택의 일부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다.


6월에 출간한 "파이썬 Jupyter Notebook 실전 입문"은 주피터 노트북을 사용한 데이터 분석 기법을 성실하게 묘사한 역서다. 주피터 노트북을 업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모 대학에서는 대학 교재로 채택하여 강의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10월에 출간한 "데이터 분석 플랫폼 구축과 활용"은 Fluentd, Elasticsearch, Kibana를 이용한 로그 수집,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를 하는 방법을 다루는 역서다. 아쉽게도 Logstash를 다루고 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활용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이다. 특이하게도 Fluentd 쪽 내용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데이터를 수집하여 정제하는 쪽의 사례들을 접하고 싶다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감수 작업을 진행하면서 전체 소스 코드를 돌려보고, 잘못된 곳을 여러 곳 발견했다. 내 의견을 반영해서 책의 일부는 색을 입히기도 했고, 책의 제목이 바꾸기도 하였다. 집필이나 번역도 좋지만, 감수 과정에서도 단기간 내에 많은 것을 배우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이 또한 값진 경험이었다. 간혹, 베타 리딩이나 추천사 기회가 있는데, 도움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밴드 헤이미쉬

포은 아트홀 하반기 공연 모습

올해 초까지는 건대 후문까지 매주 이동하면서 직장인 밴드 생활을 시도했지만, 역시 거리가 머니 부담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광교 합주실에서 연습을 하는 수지 직장인 밴드에 멤버로 옮겼다. 전반적으로 곡 수준도 올라갔고, 연습량도 많이 늘었다. 상반기, 하반기 공연에 모두 참여했고, 나름 만족하는 공연을 했다고 생각한다.


작년 회고글을 보니, 연습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가장 기본인 박자가 흔들리는 것이 내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표현을 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올해 말에 와서 깨달은 것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반기 공연 중 내 모습

박자가 흔들리는 것은 나와 같은 아마추어뿐만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가진 드러머나 프로에게도 빈도는 다를 뿐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하지만, 공연 상황이나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언제든지 흔들리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프로들의 공연 실황을 살펴보면 이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내가 극약으로 내린 처방은 메트로늄의 비트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귀에 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곡이 시작되기 직전에 기억해둔 BPM을 선택하여 비트를 들으면서 곡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메트로늄의 박자에 맞춰서 합주를 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나 혼자 치면 그나마 어렵지 않지만, 다른 멤버들과 함께 합주를 하다 보면, 박자가 틀어지는 것은 다반사다. 하지만, 내가 귀에 헤드폰을 낀 이후부터는 밴드 멤버들이 내 속도에 무조건 맞추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연습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헤드폰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나 스스로 연주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곡이 끝날 때 비트가 한 템포도 어긋나지 않고 끝나면, 거기서 느끼는 보람은 예전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개인 연습을 위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박자가 완전히 안정되자, 다른 멤버들의 성취감도 함께 올라갔고, 합주의 수준은 더 높아지게 되었다.


내가 연주하는데 어쩌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장치를 선택하여, 익숙하게 만들었고, 함께 합주를 하는 동료들의 동의를 얻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낸 이 과정은 내가 일하는 과정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 놓치기 쉬운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애썼고,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의 도구를 활용했다. 팀은 나의 시도를 적극 지지해주었고, 본인들의 연주 패턴을 바꿔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팀워크를 발휘했다. 멋진 '동료'들이다. 내년에도 밴드 헤이미쉬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동영상은 차마 올리지 못...)


이제 2019년이다.

벌써 이틀이 지나고 삼일째 새벽이다. 내년은 더 늦어지려나..


작년 회고를 하면서 다짐했던 계획 중 지키지 못한 것들이 눈에 밟힌다. 못 지킨 것도 있고, 중장기 계획으로 바뀐 것도 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일도 곧 생길 것이다. 하하.


아마도, 2019년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생기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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