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소파에 앉자마자 문이 열린다.
“야, 우리집 텔레비전 이상해. 어제 화면이 나왔다 안 나왔다 하더니 오늘 아침에 켰는데 안 나와. 이게 또 왜 말썽이야. 텔레비전 요즘 얼마 하는지 알아봐라.”
“어디 거였죠?”
“엘지. 엘지 텔레비전. 새 걸로 하나 사든지, 고칠 수 있으면 얼른 고치든지 해야지 답답해 죽겠어.”
“네네. 제가 가격 알아볼게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시는 어머니. 사실 어머니네 텃밭을 무작정 밀고 집을 지은 건 우리다. 한 마당 안에 있는 두 집, 한 개의 껍질 속에 노른자가 두 개인 쌍란 같다고나 할까. 아침 댓바람부터 들이 닥치신걸 보니 여간 급한 게 아닌 모양이다. 어머니는 수명을 다한 텔레비전을 원망하시지만 나는 그 녀석이 꽤 짠하다. 하루 종일 깜빡거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가 원하는 텔레비전은 결코 꺼지지 않는 녀석이다. 엘지 텔레비전이 최고라고 해도 우리 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어머니는 파프리카 하우스에서 일하다가 점심 먹으러 들어온 남편에게도 텔레비전 이야기를 하신다.
“알았어요, 어머니. 꼭 새 것 사야하는 거 아니면 점심 먹고 파주에 있는 리퍼브 매장에 한번 가봅시다.”
한참 후에 상기된 얼굴로 어머니가 돌아 오셨다. 남편의 얼굴은 무덤덤한데 어머니는 신이 나셨다. 남편에게 텔레비전은 어찌 되었는지 물었다. 리퍼브 매장에 갔더니 기존에 쓰던 것과 비슷한 것이 있었으나 직구로 판매된 것이라 AS가 안된다고 했단다. 어머니는 그 길로 전자랜드에 가서 LG 55인치 OLED 텔레비전을 사셨다. 자그만치 2백만 원이 넘는 건데 새 카드를 만들면 할인을 해준다고 해서 남편이 카드를 만들어서 결제했다. 하~ 2백만 원... 낼 모레 기사들이 와서 벽결이로 설치해준다고 들떠 계시는 모습이 꼭 산타 선물 기다리는 어린 아이 같다. 물론 어머니는 절대 공짜를 바라거나 뭔가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성격은 아니다. 공과 사가 분명하고 이치에 밝은 분이라 텔레비전 값은 은행에서 찾아서 주시겠다고 하신다. 하지만 남편은 어차피 할부로 몇 년 내야하니 그냥 잊어버리고 잘 쓰시면 된다고 했다. 적잖이 부담이 되었지만 뭐 매달 조금씩 내면 되지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어머니에게 텔레비전이 어떤 존재인지 안다면 잘 난 녀석이 와서 오래도록 동무가 되어 주는 것이 더 좋은 일이긴 하다.
창문을 열면 논밭이 보이고 마당엔 잔디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 집은 일산에 있지만 시골 같은 곳이다. 이곳은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부터 있었던 심 씨들의 집성촌으로 한 다리만 건너면 다들 먼 친척뻘이다. 동네 어르신들도 한두 분 떠나시는 요즘 팔순이신 어머니에게 마음을 나누는 친한 친구는 우리 다섯 식구와 텔레비전이다. 우리 식구는 쌍둥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옆집에 살며 친구가 되었고 텔레비전은 어머니가 시할머니와 시아버지를 간병할 때부터 친구가 되었다. 어머니는 십 년 가까이 누워 계셨던 두 분을 돌보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곤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요양보호사가 오기는 했지만 두 분을 목욕시키는 일을 주로 하셨다. 두 환자의 식사와 약 챙기기, 대소변 처리와 소소한 일들로 어머니는 느긋한 식사나 꿀잠은 포기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고달플 때 작게나마 위로가 되어주었던 친구가 바로 텔레비전이다. 새벽에 환자를 돌봐야 할 때 밝은 빛으로 깜빡이며 어머니를 지켜준 텔레비전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두렵지 않으셨다. 가끔 새벽에 돌아가며 울어대는 쌍둥이를 달래느라 텔레비전을 켜면 창문너머 옆집에서도 녀석이 깜빡깜빡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도 깨어 계시는 구나 생각하면 전우애가 밀려왔다. 세 아이들을 키우며 나는 텔레비전을 떠나보냈지만 자유의 몸이 된 어머니는 수명을 다한 녀석들을 새 친구로 바꾸었을 뿐 여전히 단짝으로 지내신다. 무서움이 많은 어머니에게 두 환자들의 빈자리는 컸고 그 분들을 떠나보낸 허전함을 텔레비전이 채워주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가 많다. 장시간의 텔레비전 시청은 인지기능을 저하시켜 치매의 위험을 높이고 사람과의 상호 작용을 차단해서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의 경우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다. 어머니는 동네의 모든 소식들을 다 기억해서 매일 브리핑을 해주시고 먼 동네 이웃들의 사건 사고도 다 알고 계시며 심지어는 막장 드라마들을 두루 섭렵해서 맛깔나게 이야기해주시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다. 어머니께 몇 번을 들어도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몰라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가 우리 집으로 마실 나오신다. 재미있는 프로가 끝났거나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소식을 들려주려고 오시는 거겠지.
“아이고, 힘들다. 얘 이거 먹어라. 어제 텔레비전을 보는데 잡채가 나오지 뭐냐.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들 죄다 꺼내서 버무렸다.”
“우와 잡채다! 오늘 저녁은 해결했네요. 근데 왜 이렇게 많이 하셨어요? 저희 집에 다 가져오신 거에요?”
“야, 하는 김에 너희들 먹으라고 많이 한 거지. 너희 집에 사람이 몇이냐. 나는 한 접시 먹으면 그 담엔 먹기 싫어. 요즘엔 왜 이렇게 먹고 싶은 게 많은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거 보면 다 먹고 싶지 뭐냐. 낼 모레 혈당 검사 하러 가야하는데 의사한테 또 혼나겠다. 하여튼 주책바가지 같이.”
“먹고 싶은 게 많으면 건강한 거래요. 어머니 오래 사시겠네.”
“야 그런 소리 마라. 너무 오래 살아도 못 써. 살만큼 살면 알아서 가야지.”
그래도 어머니는 아직까지 짱짱하시다. 남편이 백 살 넘게 사실 거라고 말하면 눈을 흘기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 않은가.
양념을 빌리러 옆집에 간다. 텔레비전을 안 보는 나에게도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띈다.
“또 미스터 트롯 보세요? 이거 저번에도 본 것 같은데.”
“응, 이건 미스터 트롯 원이야. 지금 쓰리까지 나왔는데 다 보고 다시 원부터 보는 거야.”
“어머니 우리도 디너쇼 보러 갈까요? 킨텍스에서 장윤정 디너쇼 한 대요.”
“야, 뭐 하러 비싼 돈 주고 사람 많은데 가서 그걸 보냐.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소리 크게 켜놓고 보면 얼마나 좋은데. 뭐든 내 집에서 보는 게 젤 재밌어.”
맞아요. 어머니에게는 단짝 친구가 집에 있지요. 그런데 그 단짝 친구도 가끔은 휴가를 주셔야 해요. 쉬어야 더 잘 놀죠. 텔레비전하고 잘 지내시는 것처럼 저하고도 지금처럼 사이좋게 잘 지내요.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