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생각을 리셋하겠습니까?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온전히 존재하기

by 스텔라윤


"17년 동안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에 매진한 결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프롤로그에 나오는 문장이다. 제주 카페에서 우연히 집어든 신간의 프롤로그를 훑다가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어버렸다.




생각이 삶을 갉아먹는 세상.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책도 서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끝없는 생각에 휘둘려 발이 땅에 닿아있지 못하고 붕 떠있는 듯 살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을 부풀리고 안드로메다까지 가서 결국 탈진해 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였다.


생각은 정신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육체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 생각이 모여드는 머리로 피가 쏠렸고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편두통은 지끈지끈한 일상적 두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송곳으로 관자놀이를 후벼 파는 느낌, 머리통이 북이 된 듯 사방에서 둥둥거리는 울림이 멈추질 않았다. 통증이 한 번 시작되면 응급실에 실려갈 지경이었고 혈관주사로 강력한 진통제를 투입해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끔찍한 편두통 덕분에 나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 초능력을 장착할 기회를 얻었다.




지난 화에 쓴 '퇴사 버튼'을 누르고 일주일 후 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진안의 담마센터였다. 10일 동안 위빳사나 명상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핸드폰도 책도 없으니 들여다볼 것이라고는 명상홀로 가는 길 위에서 만나는 개미뿐이었다. 침묵하며 고요히 열흘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방석 위에 앉아있는 몸의 안팎에 자극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생각과 감각이 저절로 생겨났다가 이내 홀연히 사라지는 걸 바라봤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리셋했다. 생각과 나와의 관계를 리셋했다. 생각을 나와 동일시하는 평생의 습관에서 벗어나 생각을 제삼자처럼 바라보는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떠오르는 생각을 붙들지 않으니 나는 더 이상 생각의 노예가 아니었다. 생각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존재였다.


물론 생각은 변함없이 부지런히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그게 생각의 타고난 습성인 듯했다.

다만 생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뀐 것 그뿐이었다. 생각에 목을 맸었던 나는 줄지어 지나가는 개미를 바라보듯 생각이 가던 길을 가도록 그저 내버려 두었다.



선명한 현실이라고 믿으며 붙들고 있던 생각의 끈을 놓고 호흡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만났다.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호흡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생각과 호흡 모두 나의 의도 없이도 나를 끊임없이 관통하며 지나가는 존재이다. 생각은 나를 과거와 미래 혹은 안드로메다로 데려가지만 호흡은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으로 나를 데려온다.


호흡이라는 미세하지만 유일하게 확실한 끈을 붙들고 관성적으로 과거와 미래로 달아나려 하는 나를 붙들고 지금의 순간과 마주했다. 지금과 마주하는 순간은 찰나였고 금세 지나가버렸지만 다시, 또다시, 지금으로 나를 데려왔다. 호흡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찰나마다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평안함을 느꼈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비료냄새 짙은 외딴 시골의 낯선 건물 안, 다섯 뼘 정도 되는 낡은 방석 위에 앉아,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안함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명상은 '생각 리셋'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리셋하는 일이었다. 더 정확히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리셋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바라봤던 일상, 혹은 삐뚤어진 생각으로 바라봤던 관계 등 내가 생각을 통해 왜곡되게 바라보고 있던 세상을 리셋할 수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또한 리셋되었다. 눈을 감고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지금을 알아차리며 마주한 건 텅 빈 공간이었다. 난생처음 마주한 본질적인 존재에 대한 강렬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텅 빈 에너지이고 생각을 지켜보는 자, 매 순간의 지금을 알아차리는 자라는 걸 한번 알았다고 해서 그 이후의 모든 삶이 저절로 천국이 되진 않았다.


생각 리셋을 한 후에도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과 마주해야 했다. 마치 '너 그때 배운 대로 살아가고 있어?'라는 걸 끊임없이 점검하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감사했다. '그때 생각 리셋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지나갈 수 있었을까.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르지.'



지금도 스트레스가 있고 걱정도 생기지만 생각을 붙들고 처절하게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물론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생각의 뒤꽁무니를 쫓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내 그런 내가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럴 때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간다. 숨 쉬며 하염없이 걷는다. 두 다리를 움직여 걷다 보면 무겁게 고여있던 생각은 증발되어 버린다.


걷기, 책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가벼운 조깅, 자연 속을 거닐기, 여행, 친구들과의 수다시간 등등 모두 자연스럽게 내 삶에 자리 잡은 습관들이다. 명상과 글쓰기처럼 본능적으로 끌리고 우연처럼 인연으로 찾아온 것들이 지금은 모두 내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으나 직관을 따라 움직였을 때 맞닿은 운명이었다. 그러니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나의 본능적인 느낌을 믿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은 자기 방식대로 자기 길로 흘러가고 삶 또한 자기 방식대로 존재한다. 나 또한 나의 길을 가면 된다. 내가 진실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나는 언제고 나의 길 위에 서 있을 것이다.





*이번 주 수요일 연재는 하루 쉬어가고 금요일에 발행합니다. 감사합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