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고 미미한 몸짓의 함성,
-아버지 11주기에 붙여

by 푸른킴

그날도 오늘처럼 햇살은 맑고 바람은 차가웠다. 집중관리실의 작은 침대에서는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대범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늘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으로 신중했고, 결정적인 순간에도 조금 머뭇거렸다.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여러 가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타이밍이 늦다’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난 뒤에는 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멋모르는 월권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결혼 전에도 아버지는 시종일관 그런 삶의 태도를 유지해왔다 한다. 아버지는 1934년생이셨으니, 여든 평생 일제 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청소년기에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셨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이야기들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그 시절 태어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살았을 그저 평범한 시대사라 할 만도 하지만, 아버지는 마음이 한가로울 때면 유난히 그런 이야기를 즐기셨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컸는데, 아버지는 작아졌다. 특히 목소리와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버지의 말을 듣기 위해 몸을 기울이는 일도 줄어들었고, 끝내 대화는 징검다리처럼 소원해졌다. 그러나 작고 미세한 소리는 여전히 그 병실에 남아 있었다.


위암 발병을 알게 된 후, 아버지는 더욱 움츠려드렸다. 몸이 아파도 말을 아꼈고, 고통을 잠으로 해결하려 하셨다. 위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거친 뒤로는 생존 의지를 아예 놓아버리셨다. 갈수록 아버지는 어떤 결정들 앞에서 머뭇하셨다. 마음속에 스민 이야기들을 꺼내지 않으셨고, 중요한 상황에서도 결정을 자녀들에게 미루셨다.


끝내 작은 침대에 누워 섬망 증세에 시달리며 옛 추억 하나를 붙잡고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셨다. 나는 슬펐다. 그러나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가끔 입원실 한편 보호자 야전침대에 앉아, 그 스러져가는 몸을 그저 응시했다. 헝클어진 자세를 가다듬어달라고 부탁하시거나, 내가 나서서 그 몸을 정돈해 드리기도 했다. 물과 간식을 가볍게 챙겨드리며, 문득 쏟아내는 옛 추억을 들어주는 정도로 시간을 보냈다.


한 사람이 자기 생을 마무리하는데, 자기 생각과 자기 힘으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누군가 끝까지 그 옆에서 그의 마지막 생을 돌보는 일도 힘겹지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 며칠에 불과하더라도.


아버지는 2015. 1. 11. 일요일 오후 4시, 마지막 가족이 가장 가까이 다가온 그날 가장 먼 여행을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거친 숨과 돌아누운 몸으로 마지막 꿈틀거림을 남겨주셨다. 생이 끝났고, 그날은 오늘보다 추웠다.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안장되어 있는 봉인함을 만날 수 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간의 숙명을 되짚지 않아도, 가루의 의미는 늘 상상 이상으로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연인 듯, 나의 마지막 공부는 ‘죽음과 흙으로 귀환’을 주제로 한 인간의 유한성과 창조의 신비였다.


돌아보면, 아버지가 생애 마지막에 보여주셨던 그 꿈틀거림은 인간이 가진 몸의 한계와 흙으로 돌아가는 필사성(必死性)에 대한 전조였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의 공부 방향이 달라지기를 기대했지만, 나는 나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내가 이겼다. 그러나 그 이김의 바닥에 아버지의 후퇴와 자기 포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캐내고 있다.


인간의 가장 숭엄한 말이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날에 거의 다 드러난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나는 너를 응원한다. 나는 이제 돌아간다. 흙으로. 너의 날이 아직 견고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버지의 유언은 아니지만, 유언은 말로만 남기는 것이 아닐 테니, 그 몸의 유언을 강산이 한 번 달라진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그날처럼 떠올린다.


아버지가 즐겨 불렀던 옛 가수들의 노래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 순간에 뒤섞인다. 멀리서 작고 미미한 몸짓의 유언이 큰 눈덩이처럼 뭉친 소리로 땅에 떨어진다. 문득 나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살아 있는 자들에게서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작고 미세한 소리는 무엇인가.’


그때는 지나쳐버렸던 아버지의 지난한 생애에 다시 마음을 다해 경의를 표한다.


2026. 1. 11 일요일 오후 4시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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