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하늘 스미는 빛따라
출렁이는 검푸른 물결
멈칫하는 배
밀어주는,
물새떼
배경
바다의 날씨가 혼란스럽다. 바람이 거세고 눈비가 섞인다.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옮겨가는 일정이 불확실하다. 일단 표를 끊었다. 매표대 판매원은, “되돌아 나오는 배는 내일 아침 8시가 되어야 운행 여부를 알 수 있다.”라고 미리 말해주었다. 배에 올랐다. 갑판은 막혀 있었다. 배는 출렁거렸다. 다음 날 아침, 8시 전후, 운행 여부가 결정되었다. 바람은 거세고, 풍랑은 거칠었지만, 배는 바다에 몸을 내밀었다. 겨우 20분의 항해였지만, 출렁거림은 감지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순간도 있었다.
사진
다음날 점심 무렵, 섬에서 나가는 배에는 몇 대의 차와 적은 사람만이 타고 있다. 바다 한복판으로 나갈수록 파도는 거세진다. 나는 배 아래쪽 갑판에서 배를 흔드는 파도를 본다. 그때 옆으로 어선 한 척이 지나간다. 나는 같은 시선으로, 그 어선을 찍는다. 흔들리는 배만이 아니라, 배를 둘러싼 조건들—바람과 물결과 하늘과 빛—에 내 시선이 오래 머문다.
나는 의도적으로 물 표면과 하늘이 맞닿은 선으로 화면을 불균형적으로 이등분한다. 화면 상단에는 바다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어두운 하늘이 있다. 그 맞닿은 선 아래에는 찬란하게 부서지는 은빛 바다가 있다. 공간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 바다에 떠있는 배가 스스로 평온할 수 없다는 사실이 구도 자체로 드러난다.
바다가 거칠다는 것은 그 표면에 비치는 햇살로도 알 수 있다. 빛은 위에서 아래로 일정하게 쏟아지지 않는다. 거친 물결의 표면을 타고 윤슬처럼 번쩍거리다가, 이내 물속으로 스며들며 흩어진다. 빛의 ‘스밈’은 바다의 요동을 더욱 입체적으로 부각한다. 심지어 물의 표면은 날카로운 금속성 질감으로 변모한다.
그 빛과 물결의 혼돈 정중앙에 배 한 척이 있다. 배는 전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옆에서 보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그 멈칫한 기세가 위태롭다. 파도는 양보 없이 배의 항로를 가로막는다. 무례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배는 그 막강한 물리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욱 힘써 전진하려 한다. 이런 날 ‘항해’는 자기 엔진만으로 전진할 수 없다. 능동적인 운동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파도는 아예 배를 뒤로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때 내 눈에 배 뒤편의 물새떼가 들어온다. 배와 풍랑에 비하면 한 마리 한 마리는 너무 작은 존재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배 뒤편에 머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배가 잠시 멈칫하는 듯하다가 다시 나아가는 순간을 본다.
이 사진은 그 찰나의 정지를 포착한다. 한계에 직면한 멈춤이 곧바로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멈칫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지로 남긴다. 화면 구석, 점처럼 박힌 물새떼는 이 거대한 풍랑의 서사에 여백을 만들고, 그 여백이 오히려 이 위태로운 장면을 안정감있게 밀어 준다.
시어
이 디카시의 제목은 마지막에 결론처럼 붙여진 것이다. 사진만 놓고 보면 ‘풍랑’이 주체가 될 만하다. 그러나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풍랑의 위력 자체가 아니라, 풍랑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방식이다. 그래서 나는 풍랑을 우위에 두지 않고, 전체가 어우러진 풍경을 하나의 그림으로 남긴다.
어둔 하늘 스미는 빛따라: 시간은 정오였으나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새어 나오고, 빛이 스며들지만 사위는 어둠에 가깝다. 바람은 거세어 거친 파도를 더 밀어붙인다. 그렇지만 내 시선은 그 어둠의 균열 틈으로 새어드는 빛을 따라간다. 이 빛은 결론이 아니라 방향이다. 구원이나 희망이라는 상투어로 쉽게 부르지 않고, 지금-여기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우는 최소한의 표식으로만 남겨둔다.
출렁이는 검푸른 물결 / 멈칫하는 배: 배에 몸을 실었지만, 배가 출렁이는 것은 배의 자발적 의지가 아니다. 파도의 힘이며 물결의 역동이다. 그 위로 균열을 뚫고 스미는 빛이 흐릿하다. 그런데 그 정도 빛만으로도 파도는 거대한 윤슬이 되어 바다 표면을 검푸르게 채색한다. 뭉텅이로 밀려드는 물결과 빛이 만나는 바다는 그 자체로 웅장하다.
그러나 풍경의 장엄함은 동시에 배를 위협하는 세력이다. 물결은 거침없이 배를 뒤로 밀어낸다. 배는 거대한 엔진 소리가 무색하게 전진하지 못한다. 한자리에 맴도는 듯 출렁거리기만 한다. 바다는 틈을 주지 않는다. 바람을 대동한 물결이 물러나지 못하게 채근하며 배를 잡아끈다. 지켜 보는 나도 목덜미가 뻐근해진다. 짧은 순간, 기력이 소진되어 더는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표정으로 배는 멈칫한다. 하지만, 나는 그 멈칫을 배의 무능력이거나 비겁함, 심지어 실패로 읽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불가항력적 조건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수용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단호한 태도로 읽는다.
밀어주는, / 물새떼: 하지만 이 숨 막히는 순간, 배 뒤편에 물새떼가 나타난다. 덩어리처럼 단단해진 움직임이 배의 뒤를 따라붙는다. 바람도 때로는 그들의 등 쪽에서 함께 불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물새떼는 구조단이 아니다. 바다 풍경을 꾸미는 미장센도 아니다. 그들도 배처럼 그 불가항력적인 바다의 힘을 뚫고 건너다녀야 하는 존재다. 같은 바다를 건너는 또 다른 생의 주체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배의 뒤편에 자리한 풍경이 내게는 위태로운 배를 밀어주는 ‘사건’처럼 보인다. 그 덕분에 배는 멈칫할지언정 뒤로 물러나지는 않는다. 아주 조금씩,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흔들리면서도 전진한 것이다.
의도
사진과 시어는 멈춤과 전진이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을 가리킨다. 풍랑 속 전진은 자력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이 디카시가 어두운 하늘과 거친 풍랑 앞에 놓인 배가 “무사히 목적지에 안착한다.”라는 희망을 무심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자기 힘으로 직선을 벗어나지 말고 전진하라는 강요를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배를 거친 파도를 가르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가는 영웅으로 묘사하는 대신,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평범한 장삼이사로 묘사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잠시 주춤하는 그들의 ‘멈칫’ 순간을 붙잡았다. 그 멈칫은 중단이 아니라 감각이다. 세력을 모른 척하지 않는, 조건을 억지로 단순화하지 않는 감각이다. 그 감각 위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결심을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그 최소함을 오래 남을 기록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나는 또한 바다 한편에 스미는 빛을 주목하려 했다. 빛은 구원이나 낙관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우는 표식에 가깝다. 어둠은 여전히 어둡고 빛은 그저 스밀 뿐이다. 그런데도 그 스밈은 혼돈의 결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 주며, 그 결 속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틈에, 검은 바다 어딘가에 물새떼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시어의 마지막에 놓인 물새떼는 습관적인 ‘희망의 장치’가 아니다.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고 배의 곁을 지켜주는 존재처럼 보인다. 무심한 듯 단호한 그 곁이, 내게는 어둠을 뚫고 나가도록 밀어주는 행위로 읽혔다. 나는 그 곁을 공생의 표어로 만들지 않고, 풍랑 속에서 잠시 드러난 공존의 사건으로만 남기고 싶었다.
총평
이 디카시는 사진과 시어가 공히 카오스모스(Chaosmos)를 그려내는 데 어느 정도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진에 보이는 사건을 축소하거나 편중되게 해석하기보다, 풍랑이라는 현상과 그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을 그대로 두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둘러 교훈을 찾거나 성급하게 낙관으로 바꾸려는 태도를 자제하려 했다. ‘절제’가 이 작품이 가져야 할 윤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배가 멈칫하는 순간, 다른 배에 있던 나는 질서가 없는 ‘혼돈(Chaos)’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속의 ‘카오스모스(Chaosmos)’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힘겨운 상태로 전진하려는 것은 의지가 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허락된 만큼만 이동할 수 있는 제한적 전진일 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끝내 이해 불가한 채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상황이 아니다. 이 카오스 같은 시간에는 ‘나와 다른 나’가 공존한다. 풍랑 속에서 삶은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으며, 멈칫과 밀어줌이 교차하는 조건의 한복판에서만 중단되지 않은 채 이어진다.
결국, 이 시작 노트는 그 공존의 가치를 다시 사유하는 작은 결실이다. 배는 여전히 풍랑 속에 있고, 하늘은 여전히 어둡다. 그러나 ‘멈칫함’과 ‘밀어줌’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우리의 생은 중단되지 않는다. 멈칫하는 배가 좌초하지 않고 다시 한 발 자신을 밀어 나가는 그 미세한 움직임이야말로, 시련 속에서도 삶이 정직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고귀한 증거가 된다. 어두운 하늘 아래, 거친 파도 위에서 한 척의 배가 흔들릴 때, 미미한 빛을 따라 물새떼가 함께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 기억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