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집에 애정을 가지다
집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내 집'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자가(自家)가 아니니까.
어릴 땐 가정형편이 어려워 계속 이사를 다녔고, 결혼 후엔 분양만 바라보며 전세살이를 했다.
그 집들은 남의 집을 빌려서 사는 거니까 내 집이 아니라 생각했다.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고,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놓고 살면 그만이라 여겼다.
집에 애정을 두지 않았다.
공간을 내어주고도 감사함과 관심을 못 받는 걸 집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애석하게도 우린 전세 계약 2년 만기 때마다 계속 이사할 상황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여러 번 하는 이사였지만 이사는 매번 힘들고, 어렵고, 씁쓸했다.
이때도 난 어리석게 이렇게 생각했다.
자가만 있었어도...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올 때는 이사업체에서 정리해 놓은 그 상태 그대로 두고 대충 지냈다.
계속된 이사에 진절머리가 난 건지, 육아에 지친 건지, 우울증에 힘겨운 건지... 그냥 되는대로 살았다.
그리곤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어차피 진짜 우리 집도 아닌데 뭐', '곧 자가 구해서 또 이사할 건데 뭐'
물건들이 공격하는 집
이사 온 후 한동안은 어디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이사업체에서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이곳저곳을 뒤질 때도 많았다.
결국 그 물건을 찾지 못해 사용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몇 달이 지나 어느 정도 적응했다 싶었을 땐 계절이 바뀌어 계절 옷을 꺼내느라 또 애를 먹어야 했다.
그나마 다행(?) 인건, 20평 대에서 30평 대로 이사를 왔다는 거였다.
공간이 넓어져서 정리안 된 물건들을 숨길 수 있었으니까.
남들이 얼핏 봤을 땐 멀쩡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집에 살고 있는 나는 매일 느꼈다. 정말 어수선했고 불편했고 정신없었다.
자주 아팠다. 아프다는 핑계로 집안일도 소홀히 했다. 나 자신도, 집도 돌보지 못했다.
'되는대로 사는 게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스스로 떠오를 정도로 그냥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리가 안 된 공간을 볼 때면 인상이 써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는데 그땐 그게 물건들 때문인지 몰랐다.
내팽개친 물건들이 울부짖다 못해 날 공격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집을 다시 정의하다
자가든, 전세든, 월세든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을 '우리 집'이라 부른다.
집 :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
'집'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도 소유에 대한 의미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내가 머무는 곳,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 내 집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집을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졌다.
집은 언제든 돌아와서 쉴 수 있는 곳. 마음의 안정을 주는 곳. 언제나 우리 가족을 반겨주는 곳.
집을 나름대로 다시 정의한 이후엔 집안 곳곳에 내 애정 어린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의 시작엔 미니멀라이프가 있었고,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비우고, 남겨진 물건들은 잘 정돈했다.
그러면서 크게 깨닫기도 했다. 생각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훨씬 적다는 것을.
비우기만 했는데도 집은 분명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머무는 공간도 나의 일부다.
내가 머무는 공간이 내 마음상태를 나타내준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에 애정을 두려고 한다.
이건 집 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곳, 놀러 간 곳, 책을 읽던 카페 테이블,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식당의 식탁, 공중 화장실 등...
잠깐 머무는 곳일지 몰라도 그 시간 동안은 내(우리 가족) 공간이다.
그런 생각이 든 후부턴 깨끗이 사용하고 마지막엔 꼭 간단하게라도 정리를 한다.
치우는 사람이 있더라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건 하고 나온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릅답습니다
이 흔하디 흔한 문구가 이제야 제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