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히긴스 재즈만 좋아하는 고양이

by 써드

클로드 볼링과 친구라는 교수님에게 재즈의 역사라는 교양 강의를 들을 무렵, 나는 자취방에서 암컷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지금 방과 거의 차이가 없는 조그만 원룸에서 노트북에 뮤지션 이름을 폴더별로 저장해 두고, 하나씩 고유한 리듬과 그루브를 통해 분위기와 색깔을 정의해 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기억은 우연히 포커스된 한 순간을 집요하게 보존하는 속성이 있다. 그 외의 다른 모든 기억들은 블랙홀처럼 대표 기억의 배후로 빨려 들어간다.


강의가 없는 토요일, 당시 연인으로 지내던 사람이 잠들어 있고 나 홀로 노트북 앞에 앉은 느지막한 아침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던 검은 고양이와 나는 찰리 헤이든의 ‘녹턴’이라는 앨범을 들었다. 평온하고 한가로운 리듬 사이로 피아노 선율이 변주를 거듭하는 가운데 잠시 뒤를 돌아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고, 고양이는 에엥 하고 짧은 소리를 냈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고양이는 재즈를 좋아한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찰리 헤이든의 녹턴을 들을 때마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무력하게 입양을 보내야 했던 검은 고양이와의 아침이 떠오른다. 지금은 세상에 없을 그 노란 눈동자가 그립다.


나에게 재즈를 분류하는 기준은 ‘안전한가 아닌가’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주의 진폭이 크지 않고 지나친 비약이나 절정 없이 차분히 연주되는 곡들은 마음으로 안전마크를 표시해둔 채 기억하는데 대체로 빌 에반스, 듀크 조단, 데이브 브루백, 브래드 멜다우 등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안전의 최고봉은 에디 히긴스 트리오다. 대중적 선율과 리듬으로 웬만해서는 기준치 이상의 모험을 강행하지 않아서 만만하게 틀어놓기 딱 좋다.


지금 나와 함께 지내는 고양이가 바로 이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음악을 좋아한다. 다른 음악을 들을 때와는 달리 유독 음악과 함께 평온한 선잠을 청한다. 캣타워 맨 위에 설치된 돔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리듬을 즐기는 모습을 몇 번이나 적발한 바 있으므로 이 고양이는 필시, 영영 에디 히긴스 트리오와 함께 기억될 예정이다.


사실 가브레일 포레의 레퀴엠 중에서도 ‘리베라메’를 듣고 싶은 날이다. 속절없이 다가올 월요일과 쪼들릴 게 분명한 이번 달 지갑 사정, 끝이 보이지 않는 원금과 이자로부터 구원받고 싶다. 지난 달 카드빚 때문에 본가에 약간의 돈을 빌린 이후로 안부 인사도 건네기 민망하다. 부업이나 투잡을 뛰어도 모자랄 주말인데 박제된 것처럼 내내 이불 속에서 보냈다. 그래서 하릴없이 또 틀어보는 에디 히긴스 트리오다. ‘어떻게든 되겠지’의 감성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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