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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liver Feb 08. 2017

새벽의 딱밧, 한낮의 꽝시폭포

루앙프라방을 거닐다 3

새벽 네 시도 채 안 되는 시각, 호텔 옆 어딘가에서 닭 우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는 시계를 본다.  알람을 맞추고 자기는 했지만 저 닭울음소리가 예비 알람 역할을 톡톡히 한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길을 더듬어 시장으로 나간다. 새벽의 고요함을 뚫고 시장의 불빛이 보인다. 노점에서 찰밥을 산다. 아주머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찰밥을 끈이 달린 대나무 밥통에 담아준다. 나중에 대나무 밥통을 다시 가져다 달라는 아주머니의 손짓을, 여행자는 단박에 이해한다.


루앙프라방의 새벽 6시는 딱밧(우리말로 탁발)이라는 공양의식이 하루도 빠짐없이 열리는 시각이다. 6시가 되기 전 미리 준비한 공양 음식을 가져와 무릎을 꿇고 스님들을 기다린다. 길옆마다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대로변에는 현지인뿐 아니라 각국의 여행자들도 자리를 잡고 딱밧을 기다린다. 딱밧을 기다리는 행렬의 끝, 후미진 곳에서는 어린아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빈 양동이를 들고 서 있다.

6시가 되자 스님들의 행렬이 시작된다. 멀리 주황색 가사를 입은 맨발의 스님들이 소리 없이 걸어온다. 스님들이 무릎 꿇은 사람 앞을 지나가며 바리때를 기울이면 사람들은 공손히 앉아 음식을 공양한다. 여행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지나가는 스님들의 행렬에 바라보는 내가 괜히 민망하다. 사진이야 찍을 수 있지만 대놓고 플래시 세례를 하는 것은 무례하게 보인다. 하지만 스님들은 담담하기만 한 얼굴로 발걸음을 계속한다.


가정마다 남자아이들을 출가시키는 것이 전통이라는 라오스여서인지 행렬의 처음은 노스님이지만 뒤를 따르는 스님들은 어린 스님들이 대부분이다. 동자스님들의 바구니에 찰밥을 뭉쳐 조금씩 덜어 넣으면서 괜히 가슴 한 편이 짠해온다. 무엇을 알고 승려가 된 것이 아니라, 승려가 된 후 뭔가를 깨닫게 될 어린 스님들의 순수한 얼굴들이 바로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미묘한 감정들에 혼란을 느끼며 그럭저럭 공양을 하다 보니 옆에 앉은 사람의 몸짓이 눈에 들어온다. 라오스에 많은 태국인 관광객인 나이 지긋한 이 아저씨는 두툼한 지폐 뭉치를 준비해서 스님들에게 한 장 씩 정성껏 공양하고 있다.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불심을 표현하는 그 태국인의 옆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어차피 나도 돈 주고 산 한 통의 찰밥이니, 공양이 돈이든 밥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공양을 하려면 찰밥을 한 움큼 덜어 동글게 뭉쳐야 하는데 요령이 부족한 것인지 내 찰밥은 금세 동이 난다. 더 이상 드릴 게 없으니 슬쩍 일어나 스님들이 걷는 방향으로 따라가 본다. 새벽시장 앞에서는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앉아 있다. 대부분이 여자들이지만 간혹 아저씨들도 있다. 새벽에 정성스레 지은 찰밥을 대나무 통에 담아와 과일이나 다른 음식을 놓고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사람들이 행렬을 기다린다.

따로 준비한 과자나 바나나를 어린 스님들의 바리때에 정성스레 넣어주는 손길이 어머니의 그것이다. 불심 깊은 라오스 인들은 아들을 스님으로 출가시키는데, 지금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스님들은 라오스의 미래이고 모든 라오스인의 아들인 것이다. 가난한 아이의 빈 바구니는 스님들이 채워주고 지나가고 있다. 딱밧을 기다리며 봤던 아이의 빈 양동이의 용도는 그것이었다.

여행자 거리에서의 딱밧은 일회용이지만 여기 시장 앞에서의 딱밧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런 정성과 성의가 우기, 건기에 상관없이 단 루도 빠짐없이 지속되는 일상이라고 한다. 인구의 95%가 불교도이고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나라 라오스의 아침은 항상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라오스에서는 땃박이 끝나야 해야 뜨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맞을 것이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매혹되는 장면들을 많이 만났다. 한낱 미물인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이 이루어 놓은 아름다운 풍경, 세상을 뒤흔들던 통치자가 남긴 위대한 건축물, 천재 예술가의 발자취에 매료되기도 했다. 라오스에서는 그런 거대한 아름다움, 스스로를 작아지게 하는 위압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날마다 선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나눔으로 가득 차는 라오스의 아침은 오히려 일상의 의미, 나만의 하루를 산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님의 행렬이 사라진 거리에 태양이 떠오르고 비로소 루앙프라방의 아침이 활기를 띤다. 새벽시장을 돌아다니다 국수가게에서 뜨끈한 국수를 먹는 것으로 아침이 마무리된다.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보내고 우체국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수줍어하면서도 다가오는 게 예뻐서 사탕을 손에 쥐어주지만 한사코 받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은 아무래도 홈스테이 하던 루앙남타의 시골이나 산골마을 므앙응오이와는 달리 대도시라 아이들의 반응도 다른 것 같다.

호텔에 다시 들어가 쉬다가 아침에 예약해 둔 밴을 타러 나간다. 오후엔 루앙프라방의 명소라는 꽝시폭포를 보러 가기로 한 것이다. 이미 예약해둔 차를 타러 가는 길에도 거리의 툭툭 기사들이 호객을 한다. "꽝시뽀포!" 라오스 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으니 한국어로 "꽝시폭포!"라고 하는 것이다. 최근 방송의 영향으로 그만큼 한국인이 많이 루앙프라방에 온다는 말이다. "노!"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 아저씨들의 순진함이 놀랍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도의 릭샤왈라들은 백 번은 더 말을 시켰을 거라며, 일 년 전 이미 남인도를 함께 여행했던 동행과 둘이 웃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행자들을 가득 실은 승합차가 약속한 조마베이커리 앞에 선다. 운전사 옆 남은 좌석에 앉아 간다. 시내를 빠져나와 꽝시폭포로 가는 길은 제법 포장된 산길인데 앳된 얼굴의 운전기사가 틀어 놓은 음악은 한국 노래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는 케이팝을 좋아한다며 무척 즐거워한다. 기사는 돌아올 시각을 약속한 후 여행자들을 입구에 내려놓는다. 입구를 지나 숲을 따라가다 보니 드디어 폭포다.

하얀 물줄기가 섬세하게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는 일부러 채색한 것 같은 비취색 강물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다. 낮에는 제법 더워도 일월의 강물은 많이 차가워서 아무도 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하는 여행사진 속의 꽝시폭포가 아닌 것이 더 좋다. 본연의 폭포와 아름다운 강물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어도 따가운 햇살을 가려줄 그늘은 중요하다. 실컷 폭포를 바라보고 다리를 건너 나무숲 아래에 주저앉아 산림욕을 한다. 지난 오 개월간의 여행으로 바닥이 다 닳아버린 크록스를 이번 여행에도 데리고 왔다. 세상을 돌아다니고도 아직 건재한 신발이 대견하다. 여행만 하며 살 수는 없겠지만 세상 밖으로 내딘 발걸음 속에서는 내 시간의 온전한 주인이 될 수 있다.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숲에 흩어진다. 옥색 물빛이 아름다워도 새벽 딱밧의 여운은 그보다 길다. 삼림욕을 하며 떨어지는 폭포의 포말과 아름다운 강물을 바라보며 조용한 한나절을 보낸다.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더디게 지나가는 시간을 느끼는 경험은 라오스에서만 가능하다.

약속한 시간에 여행자들을 태우러 온 승합차에 오른다. 에머랄드의 비경을 벗어나 도시로 돌아와도 라오스에서의 시간은 여전히 달팽이다.


온종일 딱밧의 여운이 남는다.

정성을 다한다는 것,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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