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을 거닐다 6
딱밧이 끝나고 둘러보는 새벽시장은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붐빈다. 너른 골목에는 나름대로 규모가 큰 상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여행자들도 많다. 노점에는 온갖 채소와 과일뿐 아니라 핏빛 도는 육류와 메콩강에서 낚았을 생선도 놓여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아침저녁에나 반짝 모이는 작은 좌판들이 즐비한 이 골목에서는 라오스 인들이 장을 보고 있다. 작은 포대나 커다란 바나나 잎을 깔아놓은 좌판에 많지 않은 양의 물건들을 놓고 판다.
바나나, 용과 같은 열대과일부터 콩이며 나물과 같은 채소류를 놓고 호객도 없이 앉아있는 사람들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 보니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작은 좌판 사이에 작은 새나 설치류(?)로 보이는 동물이 꼬리를 가지런히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훈제되어 있기도 하다. 바나나 잎 위에선 어떻게 묶인 건지 작은 개구리들이 팔딱팔딱 꼬물거린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죽은 다람쥐, 훈제한 쥐 고기, 살아 움직이는 개구리가 맞다. 가난한 사람들의 단백질 공급원일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한 구석 조그만 화로 위에서는 고구마 몇 개, 찹쌀 꼬치, 바나나 같은 것들이 군것질 거리로 구워지고 있다. 찹쌀 꼬치를 하나 사 먹어 보지만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시장을 나와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변을 거닌다. 황토색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장면은 이젠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다. 라오스에 와서 설악산 선녀탕의 물빛을 떠올리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맑은 물빛이 아니어도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세계에서 12번째로 긴 강이다. 수량도 세계 10위라는 메콩강은 내륙국인 라오스를 관통한다. 풍부한 수력을 이용해서 주변국에 전력을 수출하는 것이 라오스의 주요 수출품목이기도 하지만 정작 라오스는 전기를 수입하기도 한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가난한 라오스에는 송배전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이다. 누런 강물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흘러갈 뿐이고, 선착장에서는 기다란 보트가 근교의 관광지로 실어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정오면 문을 닫는다는 맛있다는 국수가게를 찾아간다. 가정집에서 낮은 테이블 몇 개를 놓고 파는 곳이다. 소문난 맛집이라고 하더니 아이를 데리고 온 아줌마부터 옷을 차려입은 예쁜 처녀, 테이크아웃 해 가려고 기다리는 총각까지 현지인 손님이 많다. 고수, 민트에 라오스식 간장소스를 넣어 먹는 국수 맛이 일품이다. 간장소스가 묘약인 라오스의 맛을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루앙프라방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일교차가 10도가 훨씬 넘는다. 딱밧을 하는 새벽엔 패딩을 입고 나왔다가 한낮에는 반팔티셔츠로 갈아입는다. 한낮에도 길에서 스님들을 자주 만난다. 거리에는 어린 스님이 가방을 메고 조용히 지나가기도 하고,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노스님과 함께 물건을 고르는 젊은 스님들도 보인다. 괜히 스님들을 쳐다보게는 되지만 옷깃이 스쳐도 안 되는 엄격한 계율이라 좁은 거리에서는 신중하게 서로 비켜서 걷는다.
걷다 보면 마주치는 사원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락거리게 된다. 치앙마이를 거쳐 왔기 때문인지 태국의 화려한 사원에 비해 검소해 보이는 지붕의 선이 담백하게 느껴진다. 감탄을 자아내는 불가사의한 예술품들이나 유적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그만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손뼉 쳐 줄 일이 아닐까? 풍요로운 삶이 잃어버린 소소한 행복, 특이하게 볼거리도 없는 이 가난한 나라에 여행자들이 매년 늘어나는 까닭은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민속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라오스의 소수민족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그 민족의 전통에 따라 제작된 옷이나 수제품들을 진열하고 있다. 사실 놀라만 한 품질의 예술작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하나하나 손이 부르트도록 만든 여자들의 세심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라오스 북부에서 내려오며 홈스테이하고 시골마을에 묵기도 했던 경험이 소수민족들의 삶을 이해하기 쉽도록 돕고 있다.
전시실을 관람하다가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비디오를 감상한다. 각 소수민족 마을의 여자들을 선발해 비디오 촬영법, 인터뷰 방법 등을 교육시켜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후, 그 민족 특유의 전통기술(?)을 보유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영상물이다. 인터뷰어가 친근해서인지 나이가 구십 세가 넘는 할머니들도 편안히 말씀을 하신다. 각 마을의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모두 여자들이다. 손이 많이 가는 바느질이나, 등을 만드는 일, 약초로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일, 혹은 무당의 일까지 모두 여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몽족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판매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왕궁 앞 씨사왕웡 거리의 나이트마켓이라고 한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민속박물관에 머물다 나와 여기저기 갤러리에도 들어가 본다. 루앙프라방의 풍경을 몽환적으로 표현하고 주황색 가사로 대변되는 스님들의 뒷모습을 그려놓은 그림으로 유명한 갤러리도 있고 아까 민속박물관에서 봤던 라오스만의 전통적인 직물 공예품을 전시하고 파는 곳도 있다.
뜨거워진 태양을 피해 골목의 그늘을 찾아 걷는다. 대나무 울타리가 쳐 있는 골목에는 닭과 사람이 서로를 비켜가고 어느 작은 사원 마당에는 스님의 것이 분명한 빨래가 나부낀다. 골목의 세탁소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아온 빨래들이 건조되고 있다. 어제도 그제도 아무 골목이나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갔지만 같은 골목은 하나도 없다.
거리에는 찰밥이 잘 빚어져 햇살에 건조되고 있다. 딱밧으로 받은 찰밥들도 그날 다 먹을 수 없으면 이렇게 건조되어 보관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루앙프라방에는 흐르는 큰 줄기의 메콩강 말고 칸강(Nam Kan)이라는 또 하나의 강이 흐른다. 칸강이 흐르는 강변의 레스토랑에서 다리를 쉬며 루앙프라방의 오후를 즐긴다. 라오스는 편안한 자유로움, 정적 속의 신선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흐르는 강물과 휘청거리는 대나무 다리를 내려다보며 망고 주스를 마신다. 말 그대로 유유자적이다. 꿈결 같이 아득한 오후의 한 장면이다.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 하나하나에 눈길이 간다.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파는 구멍가게 앞에는 사람이 없고 잡동사니를 싣고 지나가는 트럭에서는 옷을 입은 멍멍이 한 마리가 착한 얼굴로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름 모를 사원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자리를 옮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이곳에는 프랑스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에는 아침에 갔었던 작은 국수가게 옆에 프랑스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가 있고 고급 레스토랑도 있다. 가이드북을 뒤져 루앙프라방 최고의 프랑스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렐레 팡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다. 보통은 이런 요리에 눈길이 가지는 않지만 풍미 좋은 프랑스 요리를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5시쯤 들어가 보니 이제 준비 중이라며 예약만 하고 6시에 다시 오라고 한다. 할 일 없이 있다가 고급 레스토랑에나 들어가려고 했는데 비게 된 한 시간은 또 할 일이 없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레스토랑 건물 바로 앞에 사원이 하나 있다. 사원 안에는 아이들이 공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어디서나 존재하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라오스 사원이 참 정겨워 보인다.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마침 불당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불당 안에는 저녁 예불이 행해지고 있다. 앞에서는 스님들이 독경을 하고 뒤에는 불자들이 불경을 펴 들고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그들의 뒤에서 무릎 꿇고 앉아 한참 동안 의식을 지켜본다. 큰 사원이 아니라서인지 사람이 많지는 않고 신도 대부분은 나이 드신 여자들이다. 그 와중에 늦게 들어와 불경을 펼치는 사람은 현지인의 옷차림을 한 젊은 서양 여자다. 이곳에 장기 체류하는 듯한 인상의 그녀는 익숙하게 독경을 하고 의식에 참여하고 함께 온 라오스 여자와 대화도 한다.
그런 저런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마음이 일렁거린다. 무엇이 저 벽안의 여인을 불교로, 라오스로 이끌었을까? 어린 스님들의 독경에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는 어머니, 할머니뻘 되는 신도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점점 사람이 많아져 여행자들이 비좁은 자리를 차지하는 게 미안해서 불당에서 나온다. 저녁의 사원, 불당 밖에는 어린 스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불상 만드는 것을 연습 중인지 똑같은 모습의 불상과 만들다 만 불상들 놓여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앉아 해지는 사원의 묘한 기운을 느껴본다. 어린 스님들은 사원 마당에 앉은 여행자들을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며 지나간다.
비싼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갔다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들어오게 된 사원이니 시계를 보며 앉아 있는데 한 스님이 점잖은 영어로 말을 건다. 그는 스물다섯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이 바로 스님들의 거쳐 앞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했더니 호주 국적의 선생님과 배웠고 선생님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지금은 쉬고 있다고 한다. 그를 통해 라오스 스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여섯 시면 딱밧을 하고, 공양받아온 음식으로 일곱 시 반에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 간다. 학교가 끝나면 11시 반에 점심을 먹고 고학년의 승려들은 더 공부를 한다고 한다. 저녁은 언제 먹느냐는 질문에 온화한 표정의 스님은 12시 이후엔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대신 차 정도는 마실 수 있으며 나머지 시간도 공부와 수행을 하고 아홉 시면 잠드는 일상이라고 설명한다.
동자스님들도 있고 대부분이 한창인 청소년기의 승려들이 그런 금욕 생활을 하고 있다니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승려의 학업은 지원해 주기 때문에 뜻이 맞는 사람은 공부에 열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스님과 우리를 다른 어린 스님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본다. 스님은 영어도 잘하고 호기심도 많아 우리에게 묻는 것도 많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점잖은 스님과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스님이 합장을 한다. 스님의 이름이라도 묻고 싶지만, 그는 아무 미련도 없이 등을 돌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이미 어둑해진 사원 뜰 안의 많은 스님들 사이로 사라져 버린다.
스님과 헤어지고 사원에서 나와 예약해 둔 렐레팡 레스토랑으로 간다. 개조된 고풍스러운 저택 안의 예약석에 자리를 잡고 스테이크와 파스타, 와인까지 주문한다. 어디서나 대기하고 있는 웨이터들이 수시로 서빙을 해주는 친절한 서양식 레스토랑에는 머리 희끗한 서양인 여행자들이 많다. 머나먼 이국에서 즐기는 자국의 요리와 건물, 문화가 정겨울 것이다. 이곳이 여행지가 아니라 그들의 모국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의 옛 수도에서 유럽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지만 방금 전 이야기 나누던 스님도 오늘 우리와의 만남을 돌이키고 있을지가 더 궁금하다. 그렇게 저녁 만찬을 마치고 나이트마켓으로 간다.
코코넛 풀빵을 사서 입에 물고 야시장을 돌아보는 일은 매일 집에 들어가기 전의 순례가 되었다. 라오스라는 이름이 들어간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구입한다. 낮에 민속박물관의 비디오에서 그 제작과정을 상세히 보았던 몽족의 핸드메이드 종이 등불이 야시장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