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데산티아고+21
3월 21일의 발걸음 : 라바날델까미노(Rabanal del Camino)에서 몰리나세까(Molinaseca)까지 24.7km
흐린 아침, 대문 여는 법을 몰라 당황하다가 간신히 알베르게 문을 열고 나온다. 어제 달랑 셋이 묵은데다가 새벽같이 길을 나서니 알베르게에는 인기척도 없다. 마을도 고요하기만 하다. 오늘 여정은 해발 1150m의 라바나델까미노에서 1500m의 봉우리를 넘어 다시 해발고도 600m의 몰리나세까(Molinaseca)까지 내려가는 등산코스다. 하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있다.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도 떨어져 우비를 입고 걸어야 한다.
까미노가 안내하는 오솔길은 바닥이 험하고 어젯밤 내린 비로 젖어 있기도 해서 그냥 자동차 도로로 걸어간다. 무리 없이 걷는 케이 혼자 까미노의 흙길로 들어가고 하루까와 나는 아스팔트 위로 올라간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기는 하지만 차가 많지 않아 안전한 편이다. 하루까의 스틱이 땅을 짚는 소리가 "딱! 딱!"하고 온 산에 메아리친다. 오르기가 힘드니까 스틱에라도 힘을 더 주는 그녀는 많이 힘들어 보인다.
자동차 도로로 걷는 것은 발에 자극을 덜어줘서 선택했지만 계속 S자로 올라야 하니 많이 걸어야 한다. 게다가 코앞의 아스팔트는 계속 같은 풍경이어서 바라보는 즐거움도 반감된다. 열심히 5km를 걸으니 250m쯤 더 높은 마을 폰세바돈(Foncebadon)에 도착해서 잠시 쉬어간다. 둘이 숨을 헥헥거리며 오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건 하루까의 수다 때문이다. 하루까와 함께 오르는 길은 서로 의지도 되고 그녀가 워낙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재미있다.
만일 발이 괜찮았으면 나는 까미노의 오솔길로 걸었을 텐데, 하루까는 어느 길을 걸어도 이런 편한 길만 찾아다닐 것 같은 캐릭터라 웃음이 난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기억들이 뇌리를 스친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이 발이 아파서 버스 타고 레온의 알베르게를 찾아갔던 아침에 처음 만났던 하루까의 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두 시간 함께 걷고 헤어진 그다음날 아스트로가로 가는 길에 우연히 다시 만난 인연도 예사롭지 않다. 어제는 함께 걸으려고 출발했지만 그녀가 길을 잃는 바람에 따로 걸어야 했다. 히치하이킹으로 편하게 라바날에 도착한 하루까의 겸연쩍은 변명과 오늘 하루 종일 내 옆에서 걸으며 재잘거리는 수다까지, 그녀와 있으면 유쾌함이 넘친다. 좌충우돌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스물두 살 청춘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바람까지 거세서 숨을 헐떡이며 걷는다. 바람이 불어와 우비가 날려도 빗방울이 내리기도 해서 벗지도 못하고 올라간다. 변화무쌍한 하늘에서 구름은 엔진을 달아 놓은 것처럼 질주한다. 거의 정상까지 오를 무렵 바로 앞에 아주 커다란 무지개가 뜬다. 하루까와 나는 고된 걸음에 보상이라도 받은 듯 "뷰티풀!"을 연발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무지개를 바라본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어떤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까미노에 데려다 놓았을까? 우리는 어쩌면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무꾼이기도 하고 용기가 필요한 겁쟁이 사자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인생을 알게 되는 마법 같은 건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걸으면 걸을수록 순례길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뿐이지만, CG에서나 볼 법한 대형 무지개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있는 산티아고에서 만날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잊고 무지개를 응시한다.
길가에 아직 녹지 못한 눈이 쌓여있는 것을 보면 높이 오르긴 한 것 같다. 어제 먼발치로 보이던 눈 쌓인 산에 근접한 것이다. 드디어 라크루즈데이에로(La Cruz de Hierro)라 불리는 십자가에 도착한다. 해발 1500m, 까미노의 프랑스 길에서는 최고의 높이다. 갈리시아의 오세브레이로(O Cebreiro)와 더불어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다.
이곳의 십자가 아래에 돌을 놓고 가는 것은 순례길의 안녕을 빌기 위한 중세 순례자의 전통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순례길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순례자들이 쌓아 올린 무수한 돌과 그들이 버린 물건들의 무덤이 되었다. 하루까는 자신과 남자친구의 이름을 써 놓은 조약돌을 여기에 던진다. 어젯밤 미리 돌까지 준비한 그녀의 기도는 무엇일까? 그녀의 순수함이 부러운 나는 막상 던질 것도 없다.
케이는 벌써 올라와 쉬고 있다. 계절적으로 순례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다른 순례자는 역시 못 만나고 자동차로 올라온 일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셋이 기념 사진도 한 장 찍고 내려간다.
중세의 순례자가 오르기엔 얼마나 고통스러운 산이었을까? 산도적이 출몰하기도 해서 산티아고 기사단이 순례자를 지켜주었다는 이곳에 많은 십자가가 눈에 띄어 경건한 마음을 잃지 않게 한다.
만하린(Manjarin)은 마을이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알베르게만 한 채 있어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각 지역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이정표들이 즐비하다. 순례자의 눈에는 당연히 산티아고까지 222km라는 거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예루살렘까지 5000km, 로마는 2475km, 마추픽추는 9453km... 이번 여행에서 마추픽추도 거쳐왔건만, 비행기로 날아온 만 킬로미터보다 스무날을 넘게 걸어온 600km가 훨씬 소중하게 느껴진다.
1500m에서 600m 이하까지 계속해서 내려가야 한다. 계속 하산길이다. 걸음을 멈추고 장대한 산맥의 설경을 바라본다. 구름이 하늘은 덮어 가끔 비도 내리는 오늘의 날씨는 이 설산의 장대한 풍경을 마주하기에 적당하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이 그림이 아니라 현실임을 일깨워 주는 것은 것 거센 바람 때문에 빠르게 다가오는 구름의 파도다. 메세타의 고원에서 목마르던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다가는 밤을 새울 것 같아서 까미노가 안내하는 산길로 들어선다. 첩첩산중에 길이 있다.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모여 만들어진 길이다. 최고봉을 지나 내려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장관이다.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고도를 높이고 낮추면서 내륙에서 해안을 향해 가는 중이라 날씨도 변화무쌍, 걷는 길도 수만 가지다. 바람의 세기, 느껴지는 기온이 시시각각 다르다. 걷다 보면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걷는 일은 세상의 숨결을 느끼는 일이다.
하산길이라 시야가 넓고 마을의 위치도 눈으로 확인하면서 걸을 수 있다. 마을을 보면서 내려가니 곧 쉴 수 있다는 설렘을 먼저 즐기며 간다. 발아래의 엘아세보(El Acebo) 마을로 조심조심 내려간다. 화장실이 너무 급해 마을 입구의 띠엔따에 들어가 주인 아가씨에게 사정을 한다. 개인용 화장실뿐이라고 난감한 얼굴을 하더니 안됐다는 얼굴로 문을 열어준다. 머리로는 미안하긴 하지만 생리현상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 고마운 김에 바나나와 귤, 우유를 사서 노천의 테이블로 가지고 나온다. 하루까는 배낭 속의 물건들을 다 꺼내서 가게 앞에 어질러놓고는 발이 아프다고 슬리퍼를 찾고 있다. 대책 없는 그녀를 보면 귀여워서 늘 웃음 먼저 나온다. 나보다 늦게 띠엔따로 들어간 그녀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온다. 순례길에서는 모든 게 단순해지는 게 진리다. 모여드는 참새들에게 먹을 걸 던져주며 점심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통통한 새들이 귀엽다.
점심 테이블 근처에 차 한 대가 선다. 아까 도로를 걸으며 봤던 차다. 뒤에 커다란 트레일러를 연결한 사륜구동이라 기억에 남는다. 자동차라면 우리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을 텐데 뒤늦게 도착하다니 신기하다. 알고 보니 이 차는 말을 타고 가는 네 명의 순례자를 보조하는 차다. 트레일러에 실린 것은 말에게 필요한 것들이어서 말이 가는 곳에 차가 미리 와 있는 것이다. 차 안에 멍하니 앉아 말을 기다리는 운전자의 얼굴에는 지루함이 역력하다. 걷거나 말을 타는 길을 자동차로 먼저 와서 기다리는 일은 아무래도 고역일 것이다.
나이 든 남자 세 명과 노부인 한 명이 말을 타고 지나간다. 말 네 필을 끌고 다니며 트레일러로 말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 다니면 비용이 만만찮게 들텐데 여유가 많은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중세의 순례자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이라면 말을 탔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멋진 모자에 승마복을 입고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유유히 사라지는 말 주인들이 신기하기는 해도 부럽지는 않다. 순례길은 걷는 사람에게도, 말에게도, 말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도 어차피 녹록치 않을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즈넉한 산골에 말과 순례자들이 바글거리니 진짜 순례길인 듯 중세에 와있는 분위기가 풍겨서 재미있기는 하다.
노란 화살표는 어떤 모양이어도 반갑다. 도로의 이정표를 보니 자전거가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길이 나뉜다. 자전거 길은 아까 하루까와 내가 라크루즈데이에로의 십자가로 오르던 아스팔트로 안내가 되고 걷는 길은 산길로 접어든다. 그렇게 흐린 하늘을 이고 30분쯤 산길을 걸으니 마을 하나가 또 출현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노란 꽃이 무엇보다 반갑다. 산이 바람을 막아주어서인지 색색의 꽃이 피어나 있다. 삼월 하순에 접어든다. 눈길을 걸으며 시작한 발걸음이 봄을 맞이하고 있다. 많이도 걸어왔다. 거리로도 시간으로도.
우표를 한꺼번에 사서 아예 엽서에 붙여 놓았다가 엽서를 쓰곤 했는데 우체통이 눈에 띈다. 얼른 엽서를 꺼내 우체통에 넣는다. 워낙 산골이라 우체통이 제대로 기능을 할까 살짝 걱정이 되지만 여긴 인도가 아니라 스페인이니 시스템을 믿어본다. 이곳이 유명 관광지도 아니라서 수취인들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것이다. 산골마을의 꼬레오스는 어쩌면 나만의 추억이다.
마을을 관통하고 나서도 계속 고도를 낮춰야 한다. 이정표가 선명한데도 가끔 다른 길로 접어드는 하루까를 챙기면서 걷는다. 지치고 있는지 수다쟁이 하루까도 말수가 줄어든다. 이어지는 하산길은, 말 그대로 "산을 내려가는" 길이다. 돌과 흙, 때로는 바위 그대로인 미끄러운 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혀는 말을 잃는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이런 무지막지한 하산길에서 스틱이 없었다면, 짐이 더 무거웠다면 무게가 쏠리는 오른쪽 발목 때문에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스틱이 단단히 지탱을 해주니까 내려가기가 수월하다. 이런 것을 "신의 한 수"라고 하는 것일까? 스틱을 산 지 며칠 안되어 이렇게 절묘하게 스틱이 필요한 길을 걷게 되었으니 말이다.
걷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면서도 제일 고생하는 것이 발이다. 고개를 숙이고 그 발만 보면서 내려간다. 그동안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자아존중감이 아닌 자기애(自己愛)라는 단어와 동일시했기에 멀리해 온 것 같다. 미끄러질까 봐 조심 또 조심 움직이고 있는 지금처럼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자는 생각을 한다. 지금, 여기, 걷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는 존귀한 사람이라는 걸 조심스러운 발걸음 속에 가슴 가득히 느껴본다. 가장 험하다고 여겨지는 길 위에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도착한 몰리나세까(Molinaseca)의 알베르게는 마을을 다 벗어난 지점에 있다. 마을을 관통해서 나가는 길목인데도 헷갈려서 또 헤매고 만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헤매면서 간신히 도착하니 케이가 느긋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시립알베르게인데도 사람은 별로 없다. 빨래를 해서 주방의 벽난로 앞에 늘어놓고 저녁거리를 사려고 시에스타가 끝난 마을의 메르까도로 돌아간다. 뭘 사나 고민하는데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말린 무화과, 땅콩 같은 것들을 한 움큼씩 공짜로 쥐어 준다. 순례자를 귀히 여기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뭐 하나라도 더 사게 된다.
어제 채소 볶음밥과 호박전을 해주었더니 오늘 저녁은 하루까가 하이라이스를 요리해 주겠다고 한다. 하긴 교환학생으로 포르투갈에 온지 6개월이 넘는 하루까는 어머니가 알려주셨다는 레시피를 꽤 여러 개 알고 있다. 그냥 맡겨둘 수만은 없어서 옆에서 하루까를 돕는다. 이 덜렁이 아가씨는 음식은 그런대로 만들지만 좁은 주방을 혼자 쓰면서도 계속 어지르기만 한다. 결국 요리는 하루까가 했지만 내가 주방 보조가 되어 옆에서 계속 치워주어야 했다.
등산에 맞먹는 걸음을 한 우리에게 어떤 음식이라도 천하진미일 테지만 어쨌든 하루까의 하이라이스는 맛이 좋다. 시원한 맥주도 한 잔 마시며 이야기 하는 어두워진 시각에 순례자 한 명이 알베르게로 들어온다. 힘들어 보이는 그 순례자에게 남아있는 하이라이스라도 좋으면 먹겠느냐 하니 반갑게 오케이 한다. 이 사람은 2주간의 휴가 동안 까미노를 걸으려 왔다는 아일랜드 여자다. 이야기를 하다가 허벅지 안쪽 근육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그녀에게 하루까가 자신의 파스를 꺼내와 건네준다. 까미노에서는 무엇이든 자연스레 나누게 되는 모습들이 좋다.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보기에는, 까미노에 들어선지 며칠 되지 않은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걸음에 고생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난로 앞을 지키며 빨래를 마저 말리고 침대로 들어간다. 오전 6시면 자명종처럼 깨어나 신속하게 침낭을 정리하는 기술, 온종일 줄기차게 걷는 발걸음,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 10시에 소등되면 침대로 들어가 아이패드를 켜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다가 잠드는 것은 판에 박힌 일상이 되었다. 예비역인 케이는 군대에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가끔 투덜거리지만, 경험한 적 없는 까미노에서의 일상이 즐길만한 단순함임을 그도 너무나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