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대산티아고+26
3월 26일의 발걸음 : 사리아(Sarria)에서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22.4km
연일 비가 내린다. 폭풍우가 아닌 게 다행일 뿐이다. 마침 어제 도착한 곳이 규모가 큰 사리아라서 배낭커버를 살 수 있었다. 사리아 도착하기 직전이니 망정이지, 오세브레이로에서 잃어버렸다면 돌풍과 폭우를 동반한 날씨에 배낭이 다 젖었을 것 아닌가? 모든 일에 "감사"라는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누가 깨우는 것도 아닌데 아침 6시 정도면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난다. 침낭을 개고 배낭을 꾸린 다음 평생 먹지 않은 아침 식사를 까미노에서는 챙겨 먹고 길을 나선다. 다른 날보다 늦게 8시 반이나 돼서 출발하는데도 날이 어둡다. 벌써 사흘째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몸은 조금 더 피로해지고 여전히 등산화가 아닌 내 운동화는 젖기 시작한다. 그뿐이다. 순례자인 나에게 걸음은 일상이다.
까미노에서는 누구나 가난한 순례자가 된다. 어제 입은 허름한 옷, 꾀죄죄한 얼굴이 부끄럽지 않다. 지름길을 무시하고 더 먼 길로 돌아가는 게 이상하지 않다. 몸은 가난하지만 마음은 풍요로운 발걸음을 당연히 여기게 된다. 시선은 자연의 어딘가, 하늘, 땅, 나무, 잡초를 바라보고 있고 마음은 나를 들여다보며 걷는다. 힘들게 걸으면서 인내를 배우고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고 감사를 느낀다. 수려한 글이나 그림으로만은 표현할 수 없을, 까미노 위를 걷는 순례자만이 품게 되는 기묘한 행복감이 있다. 이 길에서는 착해지지 않을 수 없다.
걷기는 그 시선을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외면의 지리학이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는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걷기 예찬> 중에서
까미노 오기 전에 읽은 "걷기 예찬"이 극찬한 "걷기"는 말 그대로 멋져 보였지만, 나에게 그 책은 이론서에 불과했다. 내가 평소 운동이나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어서 더했을 것이다. 700km를 걸은 이 시점에서 "걷기 예찬"이 떠오르는 것은, 실제로 까미노의 수많은 길을 걸어온 두 다리가 이 책의 모든 문장에 열렬히 동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 마을을 관통해서 다음 마을까지 이어지는 많은 길들을 걸어간다. 마을 서쪽 끝의 묘지, 길에 세워진 작은 추모비는 항상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마을 이름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던 날들이 아득하다. 오세브레이로의 돌풍을 뚫고 갈리시아에 들어와서부터는 정처 없는 나그네의 발걸음이다. 들르는 마을이 중요하기 보다는 걷는 것 자체에 더 충실하게 된다. 빗줄기는 점점 약해진다. 날씨와 상관없이,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의 여정이 아쉬울 뿐이다. 오늘의 풍경과 이 발걸음을 기억하고 싶다.
드디어 산티아고까지 100km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나온다. 빼곡한 낙서, 조심스레 올려놓은 돌, 옆에 걸어놓은 잡동사니들까지도 모두 다 사랑스럽고 감격적이다. 잔잔한 마음으로 걷게 될 오늘인 줄 알았는데 이 표지를 보니 마음이 울컥하다. '그만큼을 걸어왔구나. 그리고 이만큼밖에 남지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아쉬운 마음을 토닥여준다.
개울물이 흐르는 옆에 돌길이 있어 걷기도 편하다. 하늘은 개이고 냇물은 예쁜 소리를 내며 흐른다. 걷기의 달인이라도 된 듯 발걸음이 가볍다. 절대반지를 들고 긴 여행을 떠나는 호빗족이 튀어나올 것 같은 울퉁불퉁한 숲길을 걷다가 길 옆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과 마을이 아름다워서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조금 더 걸어가다가 어떤 추모비를 만난다. 추모비와 마주하게 되면 중세도 아닌 시대에 이 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게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 앞에 절로 경건해지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 카메라 렌즈캡을 닫으려는데 거기 있어야 할 렌즈캡이 사라졌다. 석 달이 넘는 여행기간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긴 했어도 무사했던 랜즈캡을 이 길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케이가 방금 전 사진 찍던 곳으로 가보자고 해서 되돌아가다 보니 흙과 자갈 사이에 까만 렌즈캡이 보인다. 이 추모비 앞에서 삶과 죽음의 경건함을 떠올리며 멈춰 선 덕분에 렌즈캡을 구한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서인지 뒤에서 휘익하는 소리를 내거나 부엔까미노를 외치며 사라져 버리는 자전거 순례자의 뒷모습도 빈번히 만나게 된다. 돌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 벽과 낮은 지붕, 나무문이 정겨운 갈리시아의 마을 풍경은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와 잘 어울린다.
강을 따라 차도로 걸어가니 다리가 나온다. 미뇨강(Rio Mino)을 건너 포르토마린(Portomarin)으로 들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포르토마린의 언덕 위만 파란 하늘이다. 구름이 빨리 사라지는 걸 보니 비는 완전히 그치는 중이다.
강가의 하얀 집들이 아름다운 마을은 저수지 건설로 마을 일부가 잠겨 재건설된 곳이라고 한다. 수몰 전의 다리가 일부 남은 것이라는 긴 계단을 올라 마을로 들어간다. 옛 마을의 고즈넉함은 없지만 잘 단장된 마을이다. 비 갠 하늘에 수량이 풍부한 강을 끼고 있는 마을 풍경이 잘 어울린다. 광장에는 성당과 옛날 시청이 서서 고즈넉함을 더한다. 마을이 수몰되었을 때 이 건물들의 돌을 분리해 옮겨 조립한 것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비를 품은 어두운 하늘 아래 걷다가 이곳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섬으로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사립알베르게에 자리를 잡는다. 케이와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지만 조금 있다가 다른 순례자들도 하나 둘 들어와 침대를 차지한다. 사리아부터는 순례객이 늘어난다더니 그 말이 맞다. 처음 만나는 순례자들은 우리처럼 오래 걸어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기발랄하다. 모녀로 보이는 스페인 여자 셋은 도미토리에서 계속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다가 씻고 곱게 단장을 하더니 밖으로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템포 빠르게 저녁을 먹는다. 훈제 삼겹살과 마늘을 굽고 신선한 토마토, 풋풋한 고추를 접시에 담아 산미구엘과 함께 먹는 메뉴다. 어제 사리아의 저녁식사가 되었던 과자에 비하면 성찬이다. 우리가 저녁을 다 먹고 나서야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음식 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온다.
뒤늦게 알베르게에 도착한 독일인 순례자는 오늘 많이 걸었다며 완전히 지쳐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서 왔다는 순례자들도 처음 만난다. 독일 사람이 우리에게 한국인들이냐고 묻는다.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을까 궁금하다. 알고 보니 그는 이틀 전 하루까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다고 한다. 하루까가 그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루까를 다시 만난 듯 즐거워지고 잘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 사람이 바글거려 재빨리 설거지를 마친 후 좁은 주방에서 빠져나와 도미토리로 들어간다.
사흘 후면 까미노데산티아고의 종착역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다. 자동차를 타면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될 거리를, 사흘을 더 걸어야 도착한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생체리듬도 시간관념도 걷는 속도에 맞춰져 있다. 몸이 힘들어질 때면 마음도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순례는 육체를 통해 드리는 기나긴 기도"라는 "걷기 예찬" 속의 한 구절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