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을 건너,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과 마주하다

[페루] 뭄바이를 떠나 리마 도착

by Girliver

난생처음 발 디디는 남미(South America) 대륙, 여기는 페루(Peru)의 수도 리마(Lima)다. 공항에 내려 ATM을 찾아 페루 화폐 솔(Sol)로 환전하고 출국장으로 나간다. 좁은 출국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남미 대륙에 처음 오는 여행자를 주눅 들게 한다. 인도는 두 번째 가는 것이니 그래도 걱정이 덜했던 것 같다. 리마 공항에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공항버스가 없는 공항에서 시내로 갈 때 악명 높은 페루 택시를 피하는 법, 출국장의 그린택시(Greem Taxi) 데스크로 가서 바우처를 받아 그린택시 기사를 추천받는다. 기사는 다행히도 친절한 중년의 아저씨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엄지를 치켜세우면서 좋아한다. 숙소 주소만 적어서 보여 주고 간다. 영어가 하나도 안 통한다는 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진짜 그렇다는 걸 알게 되니 걱정이 앞선다.

택시기사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거기엔 자그마치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오 년 전인가 일본 북해도 갔을 때 거기서 보이는 바다가 태평양이라고 엄청나게 감탄한 적이 있지만, 지금 이 바다는 지구 반대편 머나먼 거리의 그 태평양이다. 생각해보면 마치 유행가 가사 같은 여정이다. 인도양을 건너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을 만나고 있다. 비록 그곳으로 나를 부른 건 "당신"이 아니라 나 자신이지만...


태평양을 바라보며 50여분을 달려 리마의 신시가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로 간다. 택시는 예약한 호스텔 주소 하나만으로도 잘 찾아가 준다. 친절한 아저씨가 50솔이면 될 택시비를 70솔이나 불러서 역시 남미구나 싶긴 하지만 무사히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택시비를 지불한다. 낯섦에 지치기도 하고 그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기도 하는 여행길이지만 남미라는 이름은 낯설다. 시간과 공간, 문화권까지 모든 게 너무 머나먼 거리에 존재한다.


인도를 여행하다 온 나에게 이곳 리마는 감당이 안 된다. 이 나라의 수도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 거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현대적이다. 불과 이틀 전에도 인도에 있었고 대도시를 선호하지도 않는데다가 이런 풍경을 마주하니 실망스럽기도 하고 어떤 곳일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찾아온 게스트하우스는 생각보다 시설이 좋다. 인도에선 쓰기 힘들던 와이파이도 빵빵하다. 하지만 그동안 인도 여행에서는 도미토리 안 쓰고 싱글룸이든 트윈룸이든 방을 빌려 다녔는데 여기선 꼼짝없이 도미토리 신세다. 달랑 침대 하나를 빌린다는 건 침대 밖의 모든 걸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고 마음대로 쓸 수도 없다는 의미다. 이제야 여행 전 준비해 온 열쇠가 빛을 본다. 짐을 넣은 개인 사물함은 자물쇠로 잠가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직은 인도가 많이 그립기도 하다.


그래도 호스텔 요금에 좋든 나쁘든 조식이 포함되어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일찍 도착해서 루프탑 식당에 올라가 빵과 잼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내 전경을 본다. 비행기에서 묵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오전엔 피곤한 몸을 좀 눕히고 오후엔 슬슬 시내로 나가본다. 페루 인구의 3분의 1이 산다는 리마,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번화가가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다. 미라플로레스의 거리를 걸어 유명한 사랑의 공원(Parque de Amor)을 향해 간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서 부담이 없다.

라르코 마르(Larco Mar)가 보인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 쇼핑몰이 몰려있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모습이다. 불과 이틀 전까지의 인도에서의 추억만이 아련할 뿐 이 현대적인 장면들이 감동적이지는 않다. 시골에서 살다 처음 서울에 간 사람처럼 이 세련됨이 어색하고도 놀랍다.

연인의 조각상으로 유명한 사랑의 공원(Parque de Amor)에 발걸음을 멈춘다. 관광객 몇 명이 보이고 현지인 연인들도 있다. 태평양이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과 과감한 몸짓으로 정열적으로 키스하는 조각상, 타일로 만들어진 펜스와 계단까지, 모두 아름다운 하나의 풍경 속으로 들어와 있다.


리마 도심의 아름다운 공원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남미라는 이름의 로망 하나가 실현되고 있다. 이 넓은 대륙을 돌아다니려면 빡빡한 일정이 될 것이다. 미지의 대륙, 남미에 발을 들여놓았다. 벌써부터 스페인어 좀 공부하고 올 걸 하는 후회가 사무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일 뿐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절벽 아래로 태평양이 그대로 보인다. 안개 낀 것 같은 습한 리마의 오후, 눈앞의 태평양에 감탄하며 하루를 보낸다. 태평양이라는 단어가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 망망대해 저편에 한국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서민식당을 골라 들어가서는 향신료가 향이 팍팍 풍기는 페루식 회 요리인 세비체를 주문한다. 다른 테이블의 페루 사람들은 엄지를 치켜 세운다. 현대적인 대도시의 한 모퉁이일 뿐인데 서울구경 처음 온 시골 노인처럼 계속 두리번거리게 된다. 인도를 떠나온 나는 이곳이 남미라는 미지의 대륙, 책에서나 접하던 페루라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다.

리마의 골목들을 탐방하며 지리를 익히며 걷다가 대형마트에 들러 세계에서 코카콜라를 이기는 유일한 토종 콜라라는 잉카 콜라도 한 병 산다. 어차피 콜라를 좋아하지도 않는 내겐 노란빛의 달콤함이 약간 불량식품 맛처럼 느껴지지만 여기 페루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재미로 마셔보는 것이다.


호스텔에 돌아와 루프탑의 식당에 올라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남미에서의 첫 태양이 자취를 감춘다. 낯선 대륙,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서툰 여행자가 되었다.


길고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 도미토리의 침대에 엎드려 다이어리를 쓴다. 뭄바이, 도하, 마드리드를 거쳐 30여 시간만에 리마에 와있다. 몸은 솜처럼 무거운 하루지만 '페루'라는 단어 속으로 들어온 기분은 상상 이상이다. 절대 깨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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