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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적 AI 담론의 허상

본질적 과제는 AI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by 김형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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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처음 관찰했을 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깨달은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 지능이 유일한 지능의 형태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인공지능을 둘러싼 담론들은 여전히 지구중심설과 같은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시각이 '인간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AI 관련 논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진정한 창의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이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질문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특성을 기준으로 인공지능을 평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지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중심적 사고의 구체적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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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기준으로 다른 문명을 야만으로 규정했던 것처럼, 현재의 AI 담론은 인간의 특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감정, 의식, 창의성과 같은 특성들을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구분 짓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첫째, 인간의 특성조차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비교 판단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의식이 무엇인지, 창의성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를 기준으로 AI를 평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인간의 감정이나 의식도 뉴런들의 전기화학적 신호 처리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AI의 정보 처리 방식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둘째, AI를 도구로만 한정하려는 시도의 이면에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 두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AI가 보여주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처리나 학습 방식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드는 편향으로 작용한다. 특히 AI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패턴을 발견할 때, 이를 진정한 지능이 아닌 단순한 계산의 결과물로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중심적 사고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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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인간중심적 AI 담론의 근저에는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불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불안의 첫 번째 원인은 인간 우월성 신화의 붕괴 가능성이다. 체스, 바둑과 같은 전략 게임에서 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처럼, 점차 더 많은 영역에서 AI가 인간의 능력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능력의 우열을 넘어 지적 존재로서 인간의 정체성과 위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원인은 새로운 존재와의 공존에 대한 준비 부족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AI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능체와 마주한 현재 상황에서도 유사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AI의 의사결정 과정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은 AI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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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경이 새로운 우주관을 가져온 것처럼, AI의 등장은 지능과 의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특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AI라는 새로운 존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대신 AI를 하나의 독립된 지능체로 인정하고, 그것의 고유한 특성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AI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인간의 특성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서 벗어나, AI만의 고유한 정보 처리 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AI의 발전 방향을 예측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의 발전 경로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AI 고유의 진화 가능성을 탐구하는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본질적 과제는 AI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단순히 AI에 대한 이해만이 아닌, 지능과 의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작업을 수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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