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석 자

- 박노해 시 [이름대로 살아야겠다] 를 읽고.

by 이인영


"인영아, 이인영!"

동그라미가 네 개나 들어가는 내 이름. 그래서일까?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면 마음이 동글동글해진다. 눈도, 코도, 입술도 이름따라 동그래졌나? 동글동글 귀엽고 예쁜 내 이름.


아버지께서 참 오래 고민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심사숙고를 거듭하느라 출생 신고 기간을 놓쳐 생일이 며칠 늦어졌다고 했다. 이름을 짓고 작은 나를 안고 처음으로 '인영아, 이인영.'하고 부르셨을 때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고심해 지은 이름만큼 어질고 예쁘고 모나지 않게 자라길 바라셨을거다. 우리의 앞 날이 언제나 아름답길, 예쁜 그 이름처럼.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내 이름은 모가 났다. 아버지 목소리로 이름을 들었던 많은 날, 난 누구보다 예민하고 못된 '이인영'이었다. 엄한 아버지께는 반항과 일탈을, 유약한 어머니께는 짜증과 신경질을 부렸다. 세상에서 가장 모난 말과 행동을 하는 이인영이 집에 들어오면 소리지르는 아버지, 말리며 울던 어머니, 동생들의 한숨 소리가 뒤섞여 동그란 내 이름을 파괴했다.


둘째 아이를 유산한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던 휴일 오후에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인영아. 나와서 같이 점심 먹자." 수화기 넘어 아버지 목소리에도 나와 같은 피곤함이 묻어나왔다. "싫어. 그냥 쉴거야." "집 앞에서 기다릴테니 진영이, 아윤이랑 같이 나와." 하곤 뚝 끊으셨다. 늘 제멋대로인 아버지가 화가 났지만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어 억지로 나갔다. 식당에 도착해 음식을 시키고 함께 나온 소주를 잔에 따르며 아버지가 말하셨다. "소주도 쓰다 쓰다 하면 쓰고 달다 달다 하면 단거야. 아윤이한테 항상 사랑을 담아서 말하고 예쁘게 불러." 아버지는 작은 아윤이를 무릎에 앉힌 채 말하셨다. 당신은 내 이름에 사랑을 담아 불렀었나? 왜 당신도 못하는 걸 나한테 하라고 하는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아버지는 하늘로 가셨다.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개천절이었다.


쓰러진 엄마를 대신해 장례를 치르고 일을 정리하고 나니 한동안 멍했다. 일어나서 밥을 먹고 회사에 나가고 혼자 계신 어머니를 챙기고 아이를 돌보며 그저 일상을 살았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 마지막 날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왜 나를 불러 그 말씀을 하셨을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걸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제야 알았다. 아. 아버지는 사랑을 가득 담아 "인영아." 하고 부르고 싶으셨구나.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예쁜 내 이름을 받지 못했었구나. 입을 동글 말아 웃으며 내 이름을 얼마나 부르고 싶으셨을까. 작은 나를 안았을 때, 그 때처럼.


묘비에 아버지 웃는 모습과 함께 마지막 말씀을 새겨 놓았다. 장난꾸러기처럼 웃으시는 모습이 마치 나를 부르는 듯 하다. '인영아 나와라. 같이 밥 먹자.' 동글동글 내 이름을 사랑을 담아 부르신다. 아버지가 부르는 내 이름이 참 좋다. 동글동글 예쁜 내 이름 석 자 이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