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외노자의 기록 - 프롤로그

부지런하지만, 효율적이라곤 안 했습니다.

by 암모나이트

지난 주말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물이 과도하게 넘쳐흐른 2군 타오디엔의 사진과,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코멘트로 가득했다. “비는 1도 안 왔는데 왜 평소보다도 더 물이 넘치는 거야?” 다음 날 올라온 팩트 체크. 비만 오면 홍수가 나는 사태를 방지해보고자, 시에서 배수 시설을 설치했단다. 근데 그 파이프 위치가 ‘밀물이 가득 들어왔을 때의 수위’보다 낮은 높이에 설치되었단다. 그 말인즉슨, 당분간은 하루 두 번, 밀물 때마다, 배수 파이프를 통해 바닷물이 들어칠 것이란다.

말잇못. 뭐 근데 이게 일상이다.


매우 높은 확률로,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지른 담당자는 전혀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의 원인은 지면과 해수면의 높이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호치민의 지형 탓이며, 지형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은 본인 탓이 아니니까. 본인의 역할은 ‘홍수에 대비한 배수 시설의 설치’ 이지, 설치를 위해 이런저런 시나리오에 대한 리스크를 고민하는 것은 본인의 업무영역이 아니라고 할 테다. 설치를 한다고 했지 설치를 잘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담당 부서에서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논의 끝에 프로토콜 문서가 몇 개 더 생기게 될 거다. 이를테면, ‘배수 시설을 설치하는 반경 20km 지역의 해발 고도 데이터를 0.5m x 0.5m 단위로 측정한다. 어느 한 지점이라도 만조시 물 높이보다 낮을 경우에는 배수 시설을 설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수 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상위자와 그 상위자의 재가를 받아 진행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설사 산 꼭대기에 배수시설을 설치한대도, 담당 공무원은 0.5m x 0.5m 단위의 해발고도 측량 결과를 요청할 것이다. “여기가 산 꼭대기인데 이 데이터가 왜 필요햐냐”는 질문은 씹힐 것이다. 아니, 그런 질문은 아무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다. 베트남에 왔으니 베트남 스타일로 일을 해 보려고 했지만... 16개월이 지났고, 나는 퇴사를 4일 앞두고 있다.
드디어 나는, 이 곳을 탈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