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Jan 02. 2022

닥치고 방문하라

왜 기다려야 하나요? _ 이달의 닥방사 : 여는 글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더라고요. 


결정적으로 느꼈던 것은 중3 때, 외고에 가기로 했을 때였어요. 중3. 상도동과 봉천동 경계에 있었던 국사봉 중학교 다니던 시절, 나와 전교 등수를 다투던 반장이 외고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시험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영어 과목을 특히 좋아하는 학생이었거든요. 성적으로도, 반장이 가면 나도 갈 수 있다고 믿었죠. 등수가 엎치락뒤치락 이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실상은 아주 다른 형편이며, 수준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어요. 그녀는 중학교 들어오면서 외고를 준비했고 나는 그녀가 지원하는 것을 보고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지원서 낼 즈음에 외고가 있다는 걸 알았을 만큼 정보가 없었죠. 


보통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준비 없던 나라는 아이가 입학을 하고 3년 준비한 반장이 떨어지는 게 드라마틱한데요.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정직하게 준비한 아이가 붙고 준비 없이 시험 본 '내'가 떨어졌어요. 


문제는 이 시험을 본 뒤, 그토록 사랑했던 수학책을 더는 펼쳐 보지 않게 된 거죠. 아, 드러 분 세상!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를 시험 문제로 내다니! 도대체 로그가 뭐냐고!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해요. 그때 마주한 시험지. 풀지 못한 수학 문제들. 거의 풀지 못하고 답지를 낸 게 초1 음악 시험 이후 처음이었던 까닭에. 아, 드러분 세상! 이렇게 마음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펑펑 울고 절규하며 92년 가을 아현동 고가 다리를 건너던 중3 여학생이 납니다. 몹시, 상당히, 얌전한 캐릭터지만, 내면에는 이런 면이 있었다는 데.... 스스로도 종종 스스로도 종종. 


그리하여 그때야 인생의 쓴맛,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혼자 세상에 복수하듯이 수학을 던져 버렸어요. 그게 내가 수포자가 된 이유예요. 수능 수학 점수가 9점(96수능 40점 만점에)이었다는 사실은.... 제가 종종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하는 이야기예요. 수학 좋아하고 지금도 수학 싫어하지 않는데, 대학 갈 때는 그랬네요. 그럼에도 특차로 동국대 한국어문학부에 입학, 수능 성적은 1프로 대였어요. 


아, 이건 하려던 이야기의 본론은 아니에요. 재밌으라고 드린 말씀이죠. 나름 그런 고집 있고 자존심 센 캐릭터였지만, 저는 닥방을 참 좋아했어요. 닥방-닥치고 방문-은 영업자들이 쓰는 말이라고 해요. 남편에게 주워 들었어요. 


이제 나의 닥방 역사를 조금 써보려 해요. 

(길이 길어지면 모두 재미없어하므로. 뒷부분은 새 게시물로 올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