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달 Jan 02. 2022

닥치고 방문하라 3화

왜 기다려야 하나요? 이달의 닥방사

'나의 닥방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으로 시작한 1화는 사실.... 중학생 이후 이야기만 할 작정이었어요. 그 전으로 돌아가면 너무 고전이고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라서요. 그럼에도 후즈갓마이테일 황정혜 대표님이 '어린시절부터'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것을 본 순간, 나의 기억은 중학생 이전 시절로 초등학교, 유치원 때로 거슬러 가 버렸어요. 

이 책임은 후즈갓마이테일 황정혜 대표님이 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또 개인톡으로 "재밌다"고 보내주신 홍샘의 응원에 힘을 입어서 말입니다. 저는 조금 더 이전 기억의 편린을 꺼내 들어봅니다. 


그러니까, 산골에서 태어나 시골서 살다, 서울 온 내 눈, 도시는 공간 자체가 '신세계'였어요. 문제는 시골에서는 기와집에 방도 여럿, 마당도 넓직, 연못도 있고 뒤란도 있고 문전옥답도 가진 그런 집 손녀였는데 말입니다.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뽀얀 얼굴로 읍내 나가면, 인기가 짱이었더랍니다. 아하, 그런데 말입니다. 12자짜리 장농 하나, 빨간색 텔레비전 하나, 요강 하나, 동그란 양은밥상 하나 그리고 네 식구 국그릇 밥그릇, 이불 한채 용달에 실어 서울 와 반지하 달방살이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날다람쥐처럼 뛰어다니던 나는 그야말로 반지하 창문으로 사람들 발목만 보며 살게 됐단 말입니다. 


물론 대여살 살이었던 나에게 창문은 텔레비전보다 재미난 볼거리였습니다만. 매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을 보며 통계와 추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극심한 변화에도 행복지수가 떨어지지는 않았답니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상당히 재미난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오전 정규방송 끝나고 AFKN(이때 시세미 스트리트를 즐겨 본 까닭으로 훗날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을 보고 AFKN까지 방송을 마치면 한살 어린 남동생과 이불을 창가에 쌓아요. 그리고 올라가면 내 키는 딱 창턱에 눈이 걸리는데 동생은 폴짝폴짝 뛰어야 보여요.  


 "누나, 뭐 있어?" 


이러면 나는 또 뭔가 쫑알쫑알 본 걸 이야기해 주고는 했어요. 생각하면 이때부터 이야기꾼으로 훈련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 상당히 동화 소재 각이죠. 닥방 이야기에서는  이 장면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린 이달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여기서 스킵. 


그렇게 일 나간 부모님들이 문을 잠궈 놓고 가셔서 닫힌 세상에서 바깥 세상을 상상하고 살며 일곱살이 된, 유치원생의 눈에 세상은 어땠을까요? 이미 세상에 닥방을 하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모든 문턱의 가능성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자유롭게 활보'하는 순간 아이의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공간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린 이달(내 이름입니다. 이름에도 사연이 많지만.)은 유치원 가는 길에 보이는 문방구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동사무소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경찰서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복덕방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과일집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꽃집에 들어가 인사를 했어요. 그냥 그런 공간들이 있고, 거기에 사람이 있는 게 반갑고 그 공간에 내가 발을 디밀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워서요. 이런 인사성 바른 어린이 모드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유지가 됩니다. 그 무렵에 약간 각성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이사를 열손가락 꼽을 정도로 많이 했으니, 그렇게 새롭게 인사를 다니며 나는 꽤 유명한 어린이로 살았어요.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날씨가 정말 좋아요. 

오늘은 비가 와요. 


사람 보는 게 너무 좋아서 시작했던 인사는, 동네 어른들 중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했고 여러 가지 집안 일로 하루이틀 내가 보이지 않거나 하면 나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순경 아저씨와 동사무소 직원들이 생길 정도였어요. 

상도동으로 이사를 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이듬해인 4학년 때, 부모님이 사고로 집을 여러 날 비우시게 됐을 때, 아침마다 찾아와 인사하던 그 아이가 오지 않자, 동네 곰순이 이모가, 동사무소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와 도움을 주시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뭉클. 그러니까. 인사를 열심히 한 덕에 살 수 있었어요. 그 겨울, 유리창은 다 깨지고 빈집에 남았던 남매는, 그렇게 인사로 알게된 분들에 의해 위기를 건넜다지요. 이렇게 쓰고 나니, 이것도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런데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는 좀 많다는. 너무 동화 같아서 동화로 쓰면 간지러울 것 같아 안 쓰는 실화. 


여기까지 쓰고 내일부터는 다시 청소년 시절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닥방에 관해 이렇게 쓸거리가 많았다는 새로운 발견을 내가 또 하고. 이 이야기를 왜 쓰고 있는지, 독자들은 슬슬 궁금하실 것인데. 나는 아직도 그 궁금증에 답할 때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요. 졸리기도 하고 내일 아침 회의 준비를 해야 하기에. 오늘은 여기까지! 


작가의 이전글 닥치고 방문하라 2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