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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i Nov 23. 2017

‘음악만 나와서 좋다’는 리플을 읽으며

한 라디오PD의 고민

“라디오에서 음악만 나와서 참 좋아요”
MBC와 KBS의 파업 관련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어김없이 달렸다.

처음 읽고는 내심 섭섭했다. 소중한 프로그램을 내려놓고 나왔는데, 아무리 좋은들 굳이 이 기사에 저 댓글을 달아야하나? 음악만 나오는 채널은 DMB나 온라인 채널이 원래도 있었는데, 파업 안했으면 더 좋았을 거야!

하지만 파업을 지지하는 지인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이야기를 나눠보니 생각해 볼 구석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든 라디오PD로서의 반성과 시사점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사연소개와 연관된 선곡이나 코너의 필요성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고 게스트가 있는 코너를 매일 혹은 요일별로 준비한다. 쭉 음악을 듣다가도 사연을 소개하거나 코너가 시작되면 사연이나 코너, 출연하는 게스트와 어울리는 곡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런 구성이 현재시점에도 유효한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 라디오만 있던 시절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여러 기능을 했기 때문에 종합구성 채널/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다. 지금은 청취자들이 라디오에 기대하는 바나 여러 콘텐츠 사이에서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을텐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 잘나가던(?) 때의 구성을 고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수의 신보 소개, 딩고나 페이스북 채널에서 멋들어지게 한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를 위해 하는 인터뷰나 초대석, 피키캐스트에서 뽀얗고 재밌게 잘 만든다.

라디오에만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오디오 only인 라디오를 굳이 찾아들을 필요가 없다. 하물며 방송 후에 찾아들으려면 메타데이터라도 잘 붙여서 공유가능하게 유통시켜야하는데 그조차 잘 안된다. 우연히 틀었다가 반갑게 만나는 거, 나를 비롯한 옛날 사람에겐 즐거움이지만 젊은 세대들에겐 그닥 매력 없다.


파업 중엔 제작여건 상 이런 구성을 최소화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2-3시간 정도의 선곡리스트를 반복해서 돌리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취자가 오히려 좋다고 표현했다면, 앞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나 선곡할 때 이 점을 염두해야하지 않을까?



이런 음악은 틀면 안 되, 라는 상투적 검열
일본음악, 너무 긴 음악, 연주곡, 라이브, 낯선 곡, 어렵게 느껴지는 곡 등 심정적으로 안 틀게 되는 곡들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클래식의 경우, 소품이나 악장 단위가 아니라 교향곡, 협주곡 전체를 틀어줄 때 오히려 본질이 더 잘 전달되기도 한다. (당연한 말씀!) 긴 곡 틀면, 열심히 안하는 것처럼 스스로 괜히 위축되지 말자.



그런데... 말은 무조건 줄여야 하나?
마지막으로 다소 껄끄러울 수 있지만 제일 오래한 생각이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멘트 없이 음악만 나오는 게 정말 좋으세요?


파업 시기가 아닌, ‘미디어 소비행태 조사’ 결과에도 ‘음악만 트는 채널에 대한 선호도’가 눈에 뜨인다. CBS 음악FM의 청취율을 통해 일부 증명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취율 1~2위는 MBC 표준FM이나 SBS 파워FM이다. 청취율이 잘 나오는 모 프로그램은 심하면(?) 한 시간에 노래를 2~3곡 밖에 안 틀기도 한다.


나는 편안하게 재밌고, 진심으로 상대에 공감하고, 음악에 대한 감동과 이해를 돕는 말이라면 그 양과 톤을 떠나 청취자들이 그닥 싫어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물론 멘트의 길이나 호흡, 전달방법에 대해 고민해야겠지만 ‘이야기의 힘’과 ‘공감’이 핵심임은 잊어서는 안 된다.


청취자 입장에서 라디오를 듣다보면 ‘자기들끼리 재밌는 말’, ‘웃고 떠드는데 왠지 시끄럽기만하고 와닿지 않는 대화’, ‘자기연민이나 상대비하로 웃음이나 감동을 억지유도하는 말’로 불편할 때가 있다. 바로 그럴 때, ‘음악만 있는 채널’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음악만 나와서 좋아요’라는 댓글에서 ‘멘트 자체’를 문제라고 여기기보다는 멘트의 내용과 진정성에 대해 깊이깊이 돌아봤으면 한다.


유년기 시절, 나는 사연을 들으며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일상을 상상하고 같이 고민했다. DJ의 위로에 나도 함께 위안받았다.

음악 프로그램은 또 어땠나! 내가 모르는, 하지만 매혹적인 여러 이야기에 빠져 멘트 뒤에 이어지는 음악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런 감동과 기억은 ‘가을에 듣고 싶은 음악’, ‘조깅하며 듣기 좋은 음악’ 같이, 얼굴 없는 큐레이션에서는 생기기 어렵다.

지금의 10-20대들은 BJ 김이브나 쎈 언니들의 고민상담, 마녀사냥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을까? 플랫폼이 유투브라거나 모바일 콘텐츠이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MBC 동지들은 값진 승리를 거두고 제작현장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계속 하고 있는 우리는, 남은 동안 방송을 망치는 외부의 적뿐 아니라 내부의 고민도 직면하려고 한다. 힘들게 싸우고 들어간만큼 제대로 일으키기 위해서. 신나게 일하고, 가치있으면서도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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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오래 될 것을 사랑하는 라디오PD. 도시에서 건강하게 사는 법을 고민합니다.  클래식, 독서, 여행, 비폭력대화, (어쩌다보니) 디지털과 어우러져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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