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게임이 우리 집 육아를 구원하리

특목고 출신 그녀는 왜 반식물인간이 되었나_5

by 다르마불씨

어쨌든 사람이 단일한 원인만으로 파멸하진 않는다. 나뭇가지가 프랙탈 구조로 정교하게 증식하듯, 나의 무력감과 스트레스 또한 세 갈래의 견고한 축을 중심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나, 남편, 그리고 아들.

그중 '아들'이라는 이름의 가지를 다시 세 분면으로 나누어 분석해 본다.


첫째, 나는 본질적으로 '관리감독'이라는 직무에 궤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성격검사 결과를 수용하고도 매번 뼈저리게 실감한다. 나는 아이와 함께 흐드러지게 노는 '남사당패'의 기질은 가졌을지언정, 기강을 잡는 사또나 꼼꼼한 이방 노릇은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는다. 예술적 허영과 끼를 알아봐 주는 조력자를 만나지 못하면, 무대를 만나지 못하고 객사할 팔자라고나 할까.


KakaoTalk_20260205_104401459.jpg 남편한테 맡기니...이게 되네...루틴! 일과표! 그저 감동...


둘째, 아이는 나를 닮아 예측 불허의 궤도로 튄다. 친정엄마나 친한 언니에게 한 번이라도 아이를 맡길 때면 신신당부를 하지만 만만치 않다. 녀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으로 '타인을 배려한다'며 기행을 일삼는다. 장을 다 본 할머니가 계산대 옆에서 아이를 찾는 사이 마트엔 비상이 걸렸지만, 정작 아이는 "짐 싣기 편하게" 주차장 할머니 차 옆에 꼿꼿이 서 있는 식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독한 자기반성을 한다. 저건 나다.) 남들에겐 주의 단계일지 몰라도, 예민한 나에겐 우리 집 아들이 특급 적색경보 상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영악하리만치 전형적인 만 5세다. 자신이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임을 알고, 엄마라는 존재가 본인에게 얼마나 무르게 휘둘리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유튜브의 자극적인 알고리즘과 SCP, 백룸 같은 기괴한 '브레인롯(Brainrot)' 콘텐츠에 아이가 서서히 잠식되는 것을 보며 나는 깊은 염려에 빠졌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파국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거나, 혹은 정말 반식물인간이 되어버리기 전에 육아의 키를 넘겨야만 했다. 남편이 육아의 통제권을 온전히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내 무의식은 아마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수천만 개의 멀티버스를 헤맸을지도 모른다. 뇌가 녹아내릴 정도로 처절하게 '우리가 생존할 단 하나의 확률'을 시뮬레이션한 끝에, 우주는 결국 나에게 답을 내려주었다. 내가 잘나서 찾아낸 해결책이 아니라, 간절함에 응답한 우주의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젤다의 전설' 이식이 성공했다.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가상 세계의 나무를 베고 요리를 하며, 오픈 월드의 감각적인 '손맛'에 매료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나름 똑똑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슬며시 코를 쓱 훔치게 되는 도치맘 모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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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권위 아래 허락된 30분의 유튜브 타임조차 이제는 보스를 격파하는 공략 영상을 보는 데 할애한다. 그리고 기어코 그 어려운 컨트롤을 해낸다. 추운 기후를 견디기 위해 요리를 조합하고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7살 아들을 보며, 나는 나지막이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 이제 사회생활만 잘하면 된다.'


유치원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 물으니 담임 선생님이 제일 예쁘단다. 사회생활 합격이다. 선생님도 아이 발달이 빠르다고 칭찬해 주시니 한시름 놓는다. 사실 예전 영유아 검진 때 발달이 느리다는 소리를 듣고 책육아를 미친 듯이 시켰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 HSP 기질 때문에, 애가 입을 떼기도 전에 전담 시녀처럼 수발을 다 들어줘서 말이 늦게 터진 거였다나 뭐라나...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다들 알아도 모른 척해주셔오.)




다들 육아란 원래 처음이라 힘들 법이고,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나는 유달리 이 지점에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읽는다. 너무 과한 의미 부여, 혹은 조증 섞인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다정한 대접조차 '시간 단위'로 쪼개어 구매하는 고객의 시대 아닌가. 돈이 없으면 무정하게 밀려나야 하는 시스템.


결혼조차 정교한 조건의 함량 미달 여부를 따져가며 성사되는 이 풍조 속에서, 나와 남편은 지독하리만치 시대착오적이었다. 10년 전, 거의 무직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8살 차이라는 간극을 메운 건 대책 없는 낭만이었다. 남편에게 비빌 언덕이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보증금 500에 월세 30이라도 못 구하겠어?"라는 모드로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를 맞이할 때도 그랬다. "아... 뭐... 이제 슬슬?" 같은 가벼운 마음.


그 무구한 낭만이 지금의 나를 반식물인간으로 만들었을지도, 혹은 이 미친 육아의 파도 속에서도 '젤다의 전설'이라는 뜻밖의 구명줄을 발견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500에 30의 마음으로, 닌텐도 스위치 앞의 평화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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