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시, 나는 글을 쓴다
처음의 글쓰기는 그저 생존을 위한 언어였다. 쌍둥이 육아로 하루가 뒤섞이던 시절, 10분 정도 떠오르는 감정을 메모장에 옮겨 적는 일이 전부였다. 잘 쓰고 싶은 욕심도 없었고 누구에게 보여줄 목적도 없었다.
그저 하루가 사라지는 느낌이 두려웠고 그날의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기록은 혼란을 가르는 작은 빛처럼 내 앞을 비춰주었다. 감정이 흔들릴 때마다 그 짧은 기록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육아의 하루는 늘 변덕스러웠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이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고 그 흐름 속에서 내 감정도 끝없이 출렁였다. 몸은 무겁고 마음은 흐릿했지만 기록 한 줄은 나의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지도가 되었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웃게 했는지 기록은 감정을 정리해 주었다. 그렇게 감정을 읽는 기술을 배웠고 기록은 나를 해석하는 첫 번째 언어가 되었다. 다음 날의 나는 그 한 줄 덕분에 조금 더 버틸 힘을 얻었다.
2년의 전업육아를 마치고 다시 변리사로 복귀하던 날, 나는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새로운 프로젝트와 익숙한 업무의 복귀는 반가웠지만 나라는 사람이 다시 일의 흐름 속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컸다. 하지만 그 모든 북적임 속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단 한 가지였다.
‘오늘도 글을 써야지.’
기록은 언제부터인가 나를 가장 깊이 돌보는 루틴이 되어 있었다. 하루 중 몇 분이라도 오롯이 나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가도 그 짧은 기록 시간이 나를 중심으로 데려왔다. 대단한 문장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미세한 떨림을 붙잡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 떨림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자료가 되었다.
처음의 기록은 단순한 감정 정리였다. 그러나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기록은 내 사고방식을 바꿔놓기 시작했다. 글은 경험을 분류하고 패턴을 드러내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하나의 언어로 묶어주었다.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마주하는 질문들이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에 반응하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가.’ 이 질문들은 내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엄마로서의 나, 전업맘으로서의 나, 변리사로서의 나, 기록자로서의 나. 서로 다른 얼굴들이 글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람으로 통합되었다. 기록은 선언이 아니라 증거였고 그 증거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다.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계획이 어긋나고 의욕이 사라지고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글로 돌아왔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되살리는 첫 번째 행동이었다. 결과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글쓰기였다. 기록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복귀점이자 내가 나를 잃지 않게 하는 구조였다.
책상 앞에서 문장 하나를 적는 순간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왔다. 그 시간은 생존을 위한 가장 단단한 숨이었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계속’ 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꾸준히 쓰는 사람은 자기 언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나만의 기준과 세계를 구조화한다. 처음에는 멋진 문장을 꿈꿨지만 지금 나는 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남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해석하는 사람이다. 그 해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또렷해지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꾸준히 쓰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관통하는 기준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쓴 문장이 누군가의 하루를 아주 작게라도 지탱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글은 연결이고 연결은 삶을 확장한다. 나는 그 믿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나는 오늘도 문장 하나를 적는다. 그리고 매일 실감한다.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만 나는 가장 나답게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