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여름, 나는 비좁은 방 안에서 시차와의 전쟁을 벌이며 올림픽 중계를 보고 있었다. 채널을 바꿀 때마다 쏟아지는 경기들 사이로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찾아 리모컨을 돌리면서, 경기 일정표에 빨간 줄을 찍찍 그어가며 내가 챙겨야 할 경기들의 목록을 점검하면서.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2년은 내가 스포츠 기자라는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해였고, 2012 런던 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 9년 전 그날,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
지금도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한다. 2012년 8월 11일. 새벽에 열린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을 꺾고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날이었다. 올림픽 메달이라는 전에 없는 쾌거와 동시에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로 인해 하루종일 숨돌릴 틈도 없이 바빴던 기억이 난다.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긴 채, 무더위에 지쳐가며 하염없이 기사를 쓰고 또 쓰다 저녁 7시 반이 됐고, 나는 채널을 여자배구로 돌렸다. 새벽의 남자축구에 이어 또 한 번, 구기 종목에서 성사된 동메달을 건 한일전이 막 열리는 참이었다.
여자배구는, 원래도 그랬지만 일하면서 여자축구, 여자농구와 함께 더더욱 아픈 손가락이 된 종목이었다. 그래서 눈으로는 중계 화면을 쫓고, 손으로는 기사를 써내려가면서도 입과 마음은 주책맞게 계속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이겨, 잘한다, 그렇지, 아이고 아까워, 리시브 조금만 더! 힘내!
그리고 한일전은 0-3, 셧아웃 패배로 끝났다.
충격이 켜켜이 쌓이는 패배였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당시 FIVB랭킹 15위)이 일본(5위)에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분위기는 경기 시작 전부터 일본을 꺾고 메달을 가져온 것마냥 달아올라 있었다. 그건 아마도 매우 복합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세계 최강을 가리는 무대에서 4강까지 올랐던 팀인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패배를 생각하기보다는 이기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옳기야 하다지만 승리를 응원하는 것과 승리를 확신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날의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이상하게 달아오른 그 분위기에는 한일전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아마도, 누군가는 존재도 몰랐던, 혹은 일부 배구팬들을 제외하면 알더라도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김연경이라는 세계적인 에이스가 대회 내내 보여준 존재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김연경은 강했으니까.
그러나 경기 결과는 모두의 기대와 달랐고, 한일전이 치러지는 내내 런던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비난이 쏟아졌다. 각 인터넷 중계창의 댓글창에는 온갖 욕설과 성적인 비하,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폭력적인 내용들의 비난이 폭주했고 경기 결과나 인터뷰 내용이 들어간 상보 기사 밑에도 수백 수천플씩 악플이 달렸다. 물론 그 때도 대중은 '갓연경'을 까진 않았다. 김사니, 한송이, 한유미, 황연주, 그 때만 해도 막내였던 김희진 같은 선수들이 욕받이가 됐다. 정당한 이유도 없었고, 누구도 그들을 위해 변명해주지 않았다. 불과 9년 전이지만, 그 때까지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욕을 먹어도 싸다는 그런 분위기. 메달에 '실패'한 선수들은 '좌절'한 채 고개를 숙이고 흡사 죄인처럼 귀국해야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분위기 속에서, 심지어 '한일전'에서 패배한 여자배구 선수들에게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졌던가.
# 9년 뒤 지금, 다시 한 번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
9년 만에 다시, 이번에는 장소와 상대를 바꿔 8월 8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운명의 장난처럼 한국 여자배구는 또다시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9년 전과 대단히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4강전에서 세계 최강 미국에 0-3 셧아웃을 당하고 동메달 결정전으로 향했던 9년 전, 그리고 4강전에서 세계 2위 브라질을 만나 0-3으로 패해 동메달 결정전으로 향한 지금. 결과만은 같지 않기를 바라며 중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세르비아가 마지막 매치 포인트를 가져가는 그 순간까지.
또 한 번, 사실상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 메달 기회였던 이 경기가 또 한 번 0-3 셧아웃으로 끝나는 걸 지켜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퇴사한 결정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그래도 김연경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현장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그리고 동시에 깨달은 것이 있다. 9년 전과 판박이처럼 똑 닮게 흘러간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 패배를 마주하는 마음이 그 때보다는 훨씬 침착하다는 사실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시선, 감정이 올라온 듯한 라바리니 감독과 코트를 떠나는 김연경의 등, 믹스트존에서 보인 그의 눈물까지 모든 것들이 가감 없이 그들의 만든 '도쿄 올림픽 4강', '세계 4위'의 성적으로 기록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확신이 든 건, 적어도 9년 전처럼, 경기에서 진 것이, 메달을 따오지 못한 것이 대역죄라도 되는 것마냥 선수들에게 십자포화가 쏟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안도감 때문일 것이고.
# 올림픽은 그대로, 그러나 올림픽을 보는 사람들은 달라졌다
모든 대표팀 선수들에게 국제대회는 설렘과 긴장, 동시에 크나큰 두려움을 안고 나서야 하는 대회다. 올림픽, 월드컵처럼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대회라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올림픽. 생전 처음 접하는 종목을, 해설에 의지하여 중계로 들으면서도 '우리나라 사람'이 잘하면 좋고 못하면 화가 나는, 그런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경기를 지켜보게 만드는 정말 이상한 대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개최 여부 자체가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고, 방사능 이슈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면서 다들 "올림픽 그 따위 거 안 하면 죽냐"고들 했지만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올림픽을 진심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양궁 경기 시간마다 사무실에서 숨죽이고 몰래 중계를 보다가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다같이 환호를 지른다거나, 여자배구 4강 진출의 순간 동네 아파트 단지에 괴성에 가까운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린다거나. 이상한 일이지만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매 4년마다 꾸준히 기능해오는 올림픽의 매커니즘에 따라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다.
그러나 그 관습적인 올림픽의 소비 방식을 넘어,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은 대한민국이 전통적으로 올림픽을 대해왔던 태도에 있어 명백한 변화가 일어난 하나의 지점일지도 모른다.
이번 올림픽을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사람들이 올림픽을 소비하는 태도와 방식이 예전과는 참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부터 두드러지게 시작된 이 변화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보다 뚜렷하게 형상을 맺는 듯한 인상이다. 어쩌면 이번이 필드 밖에 나와서 본 첫 올림픽이라 더 그렇게 느껴질 지는 몰라도, 흐름이 바뀐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사람들의 의식은 이제 더 이상 국가대표에게 '애국정신'이나 '국위선양'을 요구하지 않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메달을 따면 좋은 거고, 못 따더라도 저렇게 열심히 해서 저런 성적을 거두다니 대단해"라는, 예전 같았으면 가식적이라느니 위선적이라느니, 그런 코웃음을 들었을 법한 반응들이 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의 메인 스트림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걸 가장 피부에 와닿게 느끼는 부분은 경기 결과를 전하는 언론의 표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경기 결과를 다루는 기사의 헤드라인에 박힌 '메달 좌절', '노 골드 수모', '종주국 굴욕', '참패' 등의 단어에 극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 선수의 노력을 메달 유무로 가치판단하지 말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작전 타임 동안 선수들을 윽박지르고, "창피한 일"이라며 구시대적 워딩을 사용한 강재원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이 비난 받은 반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며 선수들을 독려한 전주원 여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작전 타임이 화제가 된 것도 같은 양상이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지켜보며 나도 무수히 많은 순간마다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됐다. 일하는 동안 익숙해졌던 그 표현들이, 상보라는 틀에 박힌 기사를 쓰며 사용하게 되는 관습적인 언어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 거다. 물론 우리에겐 그 언어를 새로운 언어로 바꿔쓰는 것을 고민할 만큼의 시간적, 심리적 여유 따위가 주어지는 일이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에서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노력해야 한다는 자각을 느낄 수 있다면 기사에 쓰이는 언어가 바뀌고, 기사의 방향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깨달음이 생긴 거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올림픽의 '성적'이나 '결과'에 '나'를 투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에게 투영하고 싶어하는 '나'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언제나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과정 중심주의적 모습이다. 4위로 끝났지만 누구보다 대회를 즐긴 모습을 보여준 우상혁의 "즐겼다, 후회 없이 행복하다"는 인터뷰 한 마디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사람들이, 그리고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가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즐기는 방법인 것이다.
* 본문에 별첨하여. 9년 전 그 때에도 한국 여자배구의 중심은 단연코 김연경이었다. 입사 전에도 배구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김연경의 존재는 모를 수가 없었지만, 2012년은 입사 이후 배구를 담당하면서 김연경이라는 선수의 존재가 한국 여자배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매 순간마다 실감하게 되던 무렵이었다. 한 명의 걸출한 선수가 가지는 파급력이 과연 팀 스포츠인 배구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김연경은 그 답을 2012 런던 올림픽 때 이미 보여줬다. 황연주, 김사니, 양효진, 한유미, 한송이, 이숙자... V리그에서 내가 지켜봐왔던 선수들과 함께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나선 김연경은 단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대회를 치러 나갔고,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기록한 퍼포먼스 자체도 대단했지만, 2012년의 런던에서 내게 가장 큰 충격을 남겼던 건 올림픽이라는 대회를 대하는, 매 경기에 나서는 그의 애티튜드였다. 더 감정적으로 말해보자면, 그 때 그 김연경의 모든 순간이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도 김연경은 여전히 내게 충격 그 자체인 존재고, 그가 은퇴하여 코트를 떠난 그 언젠가의 미래에도 나는 그를 보며 여전히 충격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