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21년 2월 27일, 집을 나왔다.
이런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독립? 출가? 가출? 야반도주?
먼저 종교적인 수행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니 출가는 아닌 것 같고,
이제 혼자 살아야 하니 독립은 맞지만 동의나 응원을 받고 나오는 것은 아니고,
야반도주라고 하기에는 밤이 아니라 아침에 나온 것이니 조금은 안 맞는 것 같고,
그래. 그냥 가출이라고 하자. 가출은 보통 청소년기 방황할 때 어울리는 말이긴 하지만
어른이라도 내 마음대로 집을 나온 거니 일단은 떠오르는 말이 없으니 가출이라고 하자.
여행이나 수학여행과 같이 짧게 나온 것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나와본 집.
계약한 월세 자취방에 들어가 보니 공허하기만 하다.
아직 옷장이나 서랍장이 오지 않아서 벽 한쪽은 텅 비어있고,
가재도구들은 쿠팡과 다이소에서 나름 열심히 골라서 사 왔지만 그래도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당장 오늘 맨바닥에서 잘 뻔했는데 다행히 침대는 배송이 빨리 와서 침대에서 잘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할까?
당장 이곳에서 앞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데 나 잘할 수 있을까?
가진 돈도 별로 없고 혼자 살아본 적도 없는 내가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게다가 부모님에게 나온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도망치듯이 짐을 챙겨서 나온 것인데 과연 잘한 일일까?
그래. 앞에서는 적확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도망'이 맞을 것 같다.
나는 집에서 도망 나온 것이다.
29살의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무슨 도망이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집에서 도망치듯이 뛰쳐나왔다.
그 집에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나왔다.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정신적으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를 위해 나온 도망이라지만 사실 자신감이나 잘 살겠다는 의지 이런 건 없다.
그저 당장 버티기 힘들어서 나온 것뿐이다.
나, 잘할 수 있겠지?
당장 첫날 밤을 보내야 하는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 자취방이 낯설기만 하다.
그래, 일단 자자. 오늘 하루 집 나오느라 고생했으니 일단 지친 몸을 쉬게 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