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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진 Aug 19. 2023

미래를 위한 작품을 그린 화가

미국 뉴욕 | New York, USA

스웨덴 여행을 떠올리고 나니, 뉴욕에서 보았던 스웨덴 화가의 전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현시대의 대중은 나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사후 20년간 봉인해 달라는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긴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Hilma af Klint의 전시다.


클린트는 1944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언대로 작품들은 20년 넘게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다가, 198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사후 첫 전시로 세상에 보였다. 총 백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전시를 관람했고, 그녀는 뒤늦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화가가 된다.


2018년, 출장 차 찾은 뉴욕 구겐하임에서 그녀의 대규모 회고전 <미래를 위한 그림 Paintings for the Future>를 관람하게 되었다. 전시에 대한 아무 사전 지식이 없었지만, 마치 신전 같기도 한 구겐하임에서 ‘미래를 위한 그림'을 본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경건함이 느껴졌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스읍~ 하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작품에는 뭔가 영적인 기운이 돌았다. 100년 전에 살았던 그녀의 내면의 소리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실로 신비한 작품들이었다. 힐마의 작품 세계는 영혼, 사후세계, 우주적인 힘 같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 여동생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그녀는 영적 세계를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고, 신지학 Theosophy에 심취해 초자연적인 세계에 집중했다. 신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고, 그 노력은 그녀의 작업 노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나는 클린트의 그림에서 우주적인 것들을 계속해서 발견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이 웅장하고 압도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이끌려 그림을 그렸던 것 같다. 100년 후에나 알아줄 그림을.


The Guggenheim Museums, NYC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전시장에 명상하듯 걸려있는 작품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The Ten Largest 라고 불리는 장엄한 대작들 앞에 서있었다. 인생의 여러 계절을 나타내는 거대한 10개의 작품. 캔버스를 자유롭게 부유하는 형상들과 변화무쌍한 색채로 그녀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관객에게 ‘보여’ 준다. 과연 이코노미스트가 “이 그림들은 계시 revelation이다"라는 극찬을 한 전시답다. 이런 훌륭한 전시를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직업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Every time I succeed in finishing one of my sketches, my understanding of humanity, animals, plants, minerals, or the entire creation, becomes clearer. I feel freed and raised up above my limited consciousness.
스케치 하나를 끝내는 데 성공할 때마다 인류, 동물,식물, 광물, 혹은 모든 창조물에 대한 이해가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나는 의식의 한계에서 초월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낀다.

Hilma af Klint
힐마 아프 클린트


결국 자신이 예언한 것처럼 이 스웨덴 출신의 무명 여성화 가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게 된다. 혹자는 그녀를 칸딘스키나 몬드리안보다 앞선 진정한 추상회화의 선구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추상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에 홀로 묵묵히 추상화를 실험했던 클린트. 여성 예술가가 존중받기 시작한 시대, 추상 예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 우리 시대에 비로소 세상에 공개된 그녀의 작품들. 시간을 견뎌 비로소 빛을 본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졌던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뉴욕 #구겐하임 #힐마아프클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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