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했던 스무 살. 막연하게 '이제 대학생이라면 이런 것도 알아야지.'라는 겉멋과 허세가 있었다. 전공과 무관하지만 순수한 호기심으로 <서양미술사>, <서양철학사> 교양 과목을 신청했다.
대학가 특유의 낭만(?)이 있던 시기였다. 나는 거의 모든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땡땡이치고 대단한 것을 했던 것도 아니다. 전날 친구들이랑 밤새 술 마시고 늦잠 자거나 아니면 따뜻하고 시원하게 날씨 맑은 날 돌아다니기 좋다는 핑계로 수업을 빼먹었다. 대부분 과목이 F 또는 D였기 때문에 학점은 프로야구 에이스 투수 방어율 수준인 0점대 또는 1점대. 농땡이가 일상인 불량 신입생임에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 그나마 그럴듯한 학점 받았던 과목이 서양미술사와 서양철학사였다(서양철학사 과목은 1학년 때 유일하게 4.5 만점을 받았던 과목이다. 나 자신도 놀라웠다).
미대 출신 엄마, 그리고 중학생 시절 홍대 미대 나왔다는 자부심 가득했던 선생님께서 내 머릿속에 미술 개념을 쏙쏙 집어넣어주셨던 기억, 어릴 적 유럽 여행에서 시스티나 천장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처음 보고 놀라워했던 경험 덕분일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나 자신은 그렇게 예술스럽지 않은 사람이지만 호기심은 계속 나를 예술로 이끌었다.
호기심과 겉멋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방탕했던 1학년이었지만 서양미술사 수업을 흥미롭게 들었던 이유는 담당 교수님의 첫 수업 덕분이었다.
예순을 이제 막 넘긴 정도로 보이는 여자 교수님. 선입견일지 모르나 그 시절 미술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분답게(?) 기품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가채를 쓴 조선시대 귀부인이나 성악가처럼 우아하게 올린 머리, 진하지만 과하지 않은 화장, 연세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주름과 하얗고 고운 피부. 이브 생로랑이 처음 만들었던 당시의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세련된 바지 정장과 (웬만한 사람들은 소화하기 어려운) 상의 옷깃 브로치까지.
세월을 곱게 지내셨을 것만 같은 교수님이었지만 자기소개 내용은 놀라웠다. 예상 못한 반전이 있었다.
본인은 솔직히 유복하게 자랐고 공부에 유학에 고생을 모르고 살며(진짜 그런 것 같았다) 결혼했는데, 이후 배우자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잃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체면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파란색 포터 트럭을 구해 남편과 함께 배추 장사를 했다고 한다. 무려 15년이나. 겨울에는 목장갑을 두 겹씩 끼고, 여름에는 '메리야스' 차림으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고.
겨우 다시 일어서기에 성공하여 남편도 다시 사업을 하고 본인도 학교로 돌아와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감정을 가진 학생이라면 교수님의 자기소개를 듣고 감정에 동요가 없을 수 없었다. 교수님이 들려준 삶의 이야기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강의는 인쇄한 자료로 진행되었지만, 대부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내용을 다루었으니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그리고 관심이 없더라도 대학생으로서 교양을 쌓고자 한다면 책을 꼭 사보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운 좋은 학생이자 아들이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자식 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던 엄마 덕분에 나는 대학 생활 내내 '주 교재'그뿐만 아니라 '참고 서적'까지 전부 새 책을 사서 공부하고 읽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큰돈이지만 당시에도 매 학기 수십만 원어치 책을 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전 직장 생활을 할 때까지 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또래들이 선망하던 금융공기업에 취직하여 승진하는 등 모든 것을 '나 스스로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생활'에 뛰어들어 이전에는 관심 없던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부대끼고서야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똑똑하고 재빠른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곰곰이 살펴보았다. 내가 특별히 잘나고 똑똑한 건 하나도 없었다. 차이는 단지 딱 하나. 나는 무척 운이 좋아 꽤 괜찮은 부모님 아래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뿐. 이후에는 사람 앞에서 까불어선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쩌면 스무 살 때 <서양미술사> 교수님이 들려줬던 '내려놓음'에 대해 뒤늦게 깨달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보고 듣기만 할 때는 그 순간 감명받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진짜 알지 못하니까.
호기롭게 굵은 책을 구입해서 처음 몇 장은 읽었지만 결국 책장을 장식하는 책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독서'에 가속도를 붙이고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책을 읽기 위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지구력'이 부족했고, 그 지구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긴 글을 읽어가며 머릿속에서 내용을 입력하고 처리하는 해석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역작'이다. 곰브리치의 모든 역량이 담겨 있고, 수십 년에 걸쳐 개정판을 내며 미술사의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위대한 학자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처음 책을 열고 넘기며 마주하는 서문과 서론은 긴 글임에도 문장과 문단을 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였다. 작가는 이제 막 미술에 입문하는 10대를 위해 쓴 책이라고 한다. 번역된 글이지만 책 읽는 내내 '쉬운 말로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어와 문장을 고르고 골라 썼을 작가의 자상함이 마음으로 전해진다.
2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이 책을 읽은 것을 후회하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제서야 이런 책을 단숨에 읽어내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에 '제대로' 책을 읽지 않았던 지난 수십 년 나의 시간을 후회했다.
단순히 미술에 대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다. 미술사를 통해 위대한 미술가들이 예술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것을 감상하는 우리는 그런 작품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지 '감상의 방법'도 얻을 수 있다. 미술 작품을 보는 눈은 <서양미술사>를 읽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인상주의, 다다이즘 등 자주 들었지만 정확한 뜻과 유래를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었던 미술 용어들에 대한 개념도 분명하게 알 수 있어 지식의 확장에도 유익하다.
가족과 함께 미술관에 갈 때 그리고 혹시나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 여행을 갈 때에도 두고두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아름다운 문장, 기억해두면 유용할 정보들이 적힌 부분은 스티커를 이용해 색인해두었다. 괴테의 책들처럼 붙일 데가 너무 많아서 '이걸 계속 표시해두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이번을 계기로 문득 대학생 때 교양서적으로 구입했던 '벽돌' 책들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버드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조너선 스펜스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다. 올해 독서 목표 중 하나가 김정아 교수님이 번역한 도스토옙스키 작품들과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빅토르 위고<레미제라블>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번 <서양미술사> 완독으로 '벽돌 프로젝트'도 함께 시작해야겠다. 물론 괴테의 책들도 계속 읽어야 하고.
인생은 길지 않다. 읽을 책은 많다. 다시 읽어야 하는 책도 많다. 특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인생은 더욱 짧다. 부지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