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효율성'은 게으름의 산물이다
육아를 하면서 지난날을 반성하는 일이 잦아졌다.
부모님과의 관계, 나의 삶의 태도 등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그중에서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게으르다
나는 일을 할 때 늘 효율을 찾으려 한다.
아마도 '게으름'이 내 원천이기 때문인 것 같다. 게으르니까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모든 일에서 그랬다.
일을 쉽게 쉽게 잘 처리해 나간다는 말을 적지 않게 들어왔다. Product owner와 Program manager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팀 간, 조직 간 분쟁을 조율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최적의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고 오늘에 오니 그 훈련의 결과가 만족스럽다. 어떤 분쟁이 발생했을 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큰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결론을 도출하는 능력이 생겼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은 게으름이다. 불필요한 노동(육체노동이든 감정노동이든)을 원치 않는다.
합리적인, 효율적인, 최적의, 충분조건&필요조건, 명분, 당위성 등의 단어들을 마구 가져다 붙이면서 일 잘하는 척 게으름을 피워왔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일에 있어서는 스트레스 역치가 낮은 사람이야.
역치가 낮기는..
난 그저 '적당히' 해왔던 것이다.
육아에는 '적당히'가 없다.
육아는 어림도 없다.
육아 선배인 친구가 그랬다.
키우기 힘들 거야. 아들이라 2배, 쌍둥이라 4배, 아들쌍둥이라 8배 힘들 거야. 파이팅
둥이가 태어나고 8개월 동안 아내와 함께 육아에 전념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육아에는 타협이 없다.
육아에는 어떠한 효율성도, 합리도, 명분도 실리도 모두 무의미하다. 무조건 해야만 한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출산과 육아는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요구한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면 분명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유 역시 설명해 주셨다.
과정에서 얻는 정서적 보상이 크다.
정서적 보상이 얼마나 크면 모든 비효율성을 뒤로할 수 있는가.
나는 일을 할 때 어떤 보상을 바라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월급 이외에는 절실히 바라는 보상이 없기에 완벽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완벽하려면 때로는 효율을 무시하더라도 타협 업이 진행해야 한다.
'인정'을 바라는 것도 큰 부분이지만 인정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퍼포먼스를 극대화시키는 '스킬'로 달성 가능하다. 이 스킬은 완벽함의 추구 없이 적당히 타협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난 퍼포먼스를 보여왔다.
그래서 부모의 자식 사랑이 대단하다고 말하는가 싶기도 하다.
출산과 육아를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보다 더 몰두하고 완벽함을 추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월급, 성과, 인정 등 모든 목적을 넘어설 수 있는 몰두 그 자체의 일
내 사업을 하면 그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