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ndaleena Jan 18. 2020

일상과 이상의 간극, 오토바이 동상이몽

엄마와 딸 한낮의 발리 여행기



낯선 여자와 한낮의 발리

#2 일상과 이상의 간극, 오토바이 동상이몽




엄마의 첫 자동차를 기억한다. 새하얀 색의 자동차는 10년의 시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운전은 아빠만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어린 내게 운전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새로웠다.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엄마는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지금도 나는 운전을 하는 엄마를 볼 때 간혹 내 어깨가 결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매사에 안전이 최우선인 엄마는 속도에 민감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을 무서워한다. 그런 엄마에게 오토바이는 두려운 존재이다. 민첩한 몸체를 가진 오토바이가 도로 이곳저곳을 누빌 때마다 혹여 사고라도 날까 불안해했다.


"오토바이는 절대 안 돼."




발리는 제주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크기이다. 신기한 건 이 커다란 섬에 이렇다 할 대중교통수단이 없다는 거다. 물론 버스 노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있기는 한데 배차 간격이 한 시간 이상인 경우가 많고 전반적으로 이용에 불편함이 많다고 한다. 때문에 현지인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대여해 여행하는 관광객이 많다.


누사두아 지역의 울루와뜨 사원으로 가던 길이었다. 머리를 양 갈래로 야무지게 땋은 여자아이가 제 몸의 배는 되어 보이는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도 많았다. 발리에는 오토바이 운전에 연령 제약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그들이 아무리 운전에 능숙할지라도 위험해 보였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발리에서도 중학생이 오토바이를 타는 건 불법이에요. 큰 도로에서는 절대 안 되는데 이렇게 동네 골목에서는 사실 다들 타고 다니죠."


발리에서 법적으로 오토바이 운전이 허용되는 나이는 17세이지만 동네의 작은 도로에서 어린 학생들이 오토바이 운전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은 듯했다. 가이드는 최근 학생들의 오토바이 운전 사고가 늘어 발리 내에서도 문제라는 말을 전했다. 사고가 잦으니 조만간 새로운 규제가 마련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작은 오토바이 한 대 위에 3인 가족이 나란히 앉아 쌩쌩 달리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운전을 하는 아빠와 뒤에 앉은 엄마 사이에 아이가 서 있었다. 익숙한 듯이 오토바이 위에 우뚝 선 아이들을 볼 때마다 엄마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헬멧이라도!"



주요 관광지로 통하는 길목이나 호텔 등의 관광 시설이 밀집한 구역에서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한 데 얽힌 위험한 순간이 숨 쉬듯이 자주 발생했다. 보행자들 역시 위험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차가 정차한 순간 창밖으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오토바이 뒷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이리저리 다리를 옮기던 여자는 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이었다. 종아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토바이 몸체에 긁히고 쓸린 그녀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는 잔소리의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 탈 생각하지 마."


이리저리 멍을 달고 다니는 게 취미인 조심성 없는 딸내미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경고를 날렸다.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모든 것이 아슬아슬 불안하고 위험했지만 그들에게 오토바이는 학교로, 직장으로, 집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책임지는 중요하고 일상적인 존재이다. 경고고 충고고 은근한 불만과 불안은 외지인인 내가 가볍게 꺼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개로 만약 내게 오토바이 면허가 있었다면 당장에 한대 빌려 내달렸을 거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낯선 땅에서 100중의 1이 되는 건 두렵지만 100중의 90이 되는 건 해 볼 만하지 않은가. 다음 발리 여행은 오토바이 면허증과 함께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지금 여기 내 몸이라는 소중한 터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