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TV로 경기 중계를 같이 보자며 그녀가 자취하는 원룸에 초대되었던 적이 있다. 작지만 아늑한 원룸에는 침대도 있고,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는 둥근 테이블과 의자도 놓여있었다. 그녀는 싱크대 상부장을 열고 능숙하게 립톤 아이스티를 타서 대접해 주었다.
세상에! 그때까지 나는 입식 가구가 갖춰진 집을 드라마에서 밖에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가족 모두가 사는 집도 아닌 혼자 사는 방 한 칸이 그렇게 우아할 수 있다니!
보일러도 없었던 우리 집.
놀러 가 본 친구들의 집이 비록 모두 우리 집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이부자리를 펴고 밥상을 펴고 다 비슷했는데..
이듬해 나도 기숙사를 나와 원룸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고 그곳은 우연히도 그녀가 살던 건물이었지만, 내가 살던 집은 결코 그녀의 집처럼 세련되지 못했다.
처음 이사할 때 작은 아버지가 차로 실어다 주신 컴퓨터 책상 말고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여전히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밥상을 펴고 밥을 먹는..
나의 고향 집과 똑 닮은 집이었다.
다른 삶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자라오는 내내 익숙하게 새겨진 '집'의 틀을 벗어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어진 가난에 끌려가는 듯
버둥대는 삶.
그리고 살아온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잘못이거나 원망할 일이 아님을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더 어려웠고,
그것을 그저 슬픈 일로 느끼고 흘려보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의 딸아이는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벌써 5년 후에는 성인이라니!
아이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을 다니고 우리로부터 독립하는 모습을 종종 상상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다 대주지는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도 생각해 본다. 비싼 학원에도 막 보내고 기회를 잡아 교환학생 같은 것도 보내주고 싶다. 아이의 집이 생기면 가구도 놔주고 적어도 구색을 갖추고 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나의 자취방에 한 번도 들러보지 않았던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가끔 시간을 내서 들러 맛있는 것도 먹이고 아이를 챙겨주고 싶다. 결혼을 하더라도 꽤 괜찮은 집에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고.
(물론 아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살아간다는 것이 근사한 일로 느껴질 수 있게!
아마 난 독립해서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아는 것일 뿐이다.
난 학교도 오래 다녔고,
직장에도 다니고 있고,
이사도 여러 번 해봤고,
돈 관리도 직접 해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만 나오셨고, 결혼 후에 단 한 번의 이사도 없이 같은 자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변함없는 동네 사람들과 4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두 분의 눈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대학과 대학원을 나오고 도회지를 헤매는 자식의 노력이란 이해불가의 영역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어떤 일을 해서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떤 좋은 집을 구해야 하는가와 같은 삶의 지혜를 부모님께 배운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큰돈을 쥐어보신 적 없는 아버지는 적금이니 투자니 하는 것도 잘 모르신다. 자신이 그걸 모르고도 살아갈 수 있었기에 자녀 세대가 살아가려면 어떠한 걸 가르쳐 줘야 한다는 것도 모르셨다.
외식의 경험이 없어 식당 예절도 모르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답례를 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사회생활도 배운 적이 없어 낯 두꺼운 무례를 저질러가며 터득해 나가야 했던.. 가난과 결핍이 키운 삶은.. 외롭고 서러운 궤적으로 남았다. 사람들에게 늘 죄인이 되고 미안한 일이 많았다.
부끄러웠다.
조금만 누가 가르쳐 줬더라면...
만약 그때 면접을 혼자 준비하지 않고 부모님이 함께 봐줬더라면 그 좋은 대학에 나도 붙었을까.
일본 교환학생에 갔더라면 지금과 다르게 살고 있을까.
부러웠다. 설령 내 역량이 부족한 것이라도 부모님의 탓으로 다 돌리고 싶었다. 물리적 가난을 벗어난다 해도 마음이 가난한 삶이 늘 뒤를 따라다녔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금명이.
희생하는 부모에게 왜 그리 날이 서있냐는 비판을 받는 금명이.
더 멀리 뛰고 싶은데, 죄책감에 발목이 잡힌다는 그 말..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들 그 마음 같다. 나만 생각하며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이..
좀 쉽게 버신 돈이었다면 좀 쉽게 나에게 허용할 수 있었을까.
이미 최선인 걸 아니까 더 바라면 안 되는데,
아무것도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기 때문에 내가 더 미워서 허우적대는 건데.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닐 적에 조금씩 쌓이는 돈으로 저렴한 소파베드를 하나 사서 원룸에 놓았다. 소파로 쓰다가 침대처럼 펴서 그 위에 잘 수도 있는 '가구'를 내 손으로 사놓았을 때 중요한 일부분이 번듯하게 바뀐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겁 없이 혼자 해외여행을 가고, 보증금 300을 떼여서 소액재판을 하러 법원에 갈 때 준비도 거의 혼자 알아서 했다. 아프면 약만 사 먹을 게 아니라 병원에 가야 쉽게 낫는 것도 알게 되고, 백화점은 아니더라도 옷이나 가방은 시장이 아닌 곳에서 사서 갖춰 입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큰 후에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다 있으니까.
누가 직접 떠먹여 주지 않아도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비록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이해해 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부모님은 나에게 뭘 못 하게 하지는 않으셨기에.
볼품없는 원망 속에 머물지 않으려 꿋꿋이 앞으로 나아간다. 내 잘못도 아닌데 마음 가난한 부모만은 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왔다.
부족한 나도, 부족한 부모님도 뭐 어쩌겠나 받아들이면 그뿐.
어쩌면 이것은
가난과 결핍을 통해 얻게 된
의미 있는 궤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꿈을 먹고 날아올랐다.
엄마의 꿈을 씨앗처럼 품고.
엄마의 꿈이 나에게로 와
아주 무겁고, 아주 뜨겁게
기어이 날갯소리를 냈다.
폭싹 속았수다, 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