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네 시간 비행기를 타고, 거기에 일곱 시간 프라도를 타고 이곳 아프리카 사업장에 왔다. 먹은 걸 모두 토하기 직전에 차에서 내려서 참 다행이었다.
외교부 문자가 왔다.
“서부 민주콩고 국경 인근 지역은 테러 발생 위험 지역으로 방문 자제 권고”
그걸 지금 보내시면 어떡해요.
2.
호텔방을 바꿨다. 처음 방은 창문이 안 잠겼고, 두 번째 방은 방문에 이중 잠금이 없었다. 차라리 누가 밤중에 방문을 열면 알아차리기라도 하겠다 싶어서 바꿔달라고 했다. 설상가상 커튼에 붙어있던 엄지손가락만 한 거미도 잡았다. 나는 사람보다 벌레가 더 무서운데.
살려줘.
3.
모든 호텔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방마다 신약성경이 놓여있다. 80프로가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인 나라. 그러나 아프리카 내에서조차 가장 가난한 나라. 서구에서는 기독교가 부유한 자본주의를 만들었지만,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는 그러지 못했다. 무슨 차이였을까. 차에서 매니저님이 그랬다.
“이 나라는 위에서부터 썩었어요”
예전에 어느 전도사님이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하게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에서 수년간 헤어나오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때 전도사님이 그랬다.
“나현아, 하나님은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이 아니야. 대개 그런 것은 인간의 죄악,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정부의 부패와 민족성 때문에 이러한 빈곤을 겪고 있는 거지.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한사람 한 사람을 위해 지금도 울고 계실 거야.”
정성스런 답변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주님이 울고 계신다고 하니 나도 그 사람들을 위해 울 수밖에.
4.
공항에서 이곳 사업장에 오는 길도, 매일 모니터링할 학교를 찾아다니는 길도 아주 엄청난 여정을 하고 있다.
일단 차선은 아무런 힘이 없다. 이차선 도로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두 차 (부터 일단 문젠데)의 사이를 우리 차가 뚫고 지나간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미 하늘나라일 것 같아서 아무도 모르게 졸음을 참으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오늘은 도로 위에서 공작새랑, 염소랑, 양이랑, 소랑, 닭이랑, 아 맞다 아까는 오리도 봤다. 30분만 더 가면 도로에 코끼리가 다닌다던데. 지역마다 우선순위에 차이가 있는데, 아까 다녀온 지역은 동물이 차보다 우선이다.
그치만 그 길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진다. 해발 1,500미터인 이곳에선 구름과 산이 자주 만난다. 사실 하야오는 아프리카에 다녀와서 라퓨타를 그린 게 아닐까?
(3일 후 정정) 아니, 사람은 사실 어디에서도 잘 수 있다. 중앙지부에 가려면 10시간 동안 차를 타고 수도로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차에 올랐다. 멀미약을 먹었더니 기절. 눈떴더니 하늘나라면 좋지 뭐...
5.
지난주였나, 삼 년간 파견 다녀온 과장님이 눈을 껌뻑껌뻑 하시며 옥상에 나와 놀란 적이 있다.
“과장님 우세요?”
그랬더니 과장님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었다.
“눈이 뻑뻑해서 멀리 좀 보려고 나왔는데 사방이 빌딩이야...”
그래서 다 같이 한참을 웃었는데, 여기 오니 웃을 일이 아니다.
이곳에 살다가 한국에 살다니 못할 짓이겠다.
과장님이 국어선생님인 동생한테 이 곳이 ‘원시 풍경’이라고 했더니 ‘태고’라는 우아한 말이 돌아왔단다.
진짜 주님 지으신 그대로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로
그저 있다.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 파괴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6.
NGO 직원으로서 누군가를 돕거나 내게 도덕적 만족감을 주는 일이 반드시 하나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첫 마음을 되뇌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와서 보니 쓸데없는 생각이다.
나도 이 아이들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하나님은 얼마나 얘네가 사랑스러우시겠으며,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닐 리가.
어쩌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 채로 주님의 일에 동참 중인 걸지도 모르겠다.
7.
이번에 모니터링하는 수혜 아동 중 장애가 있는 아동, 특히 청각장애 아동이 많다. 이 아이들을 위해 수화통역사가 각 학교에 배치되어 있는데, 우리의 질문을 통역하고 또 답을 듣는 과정이 참 경이롭다.
근데 같은 학교 비장애인 아이들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나왔다.
“저희도 수화를 배우고 싶어요. 기초라도요.”
친구들과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자기들이 수화를 배우겠다는 거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이들을 한 명씩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수화 수업을 알아봐야겠다.
8.
함께 출장 온 과장님은 참 멋있는 분이다.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하시는 질문 하나하나가 모두 사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에서 기인하고, 가능한 한 모든 학생과 정부 관계자, 관련 단체를 방문하셨다.
너무 귀한 시간이었지만, 그러다 보니 일주일간 극기훈련을 한 기분이다. 눈뜨면 호텔을 나섰다가 밤에 돌아와 쓰러져 자는 삶.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지치지 않는 체력도 있어야 하는가 보다.
그 정도는 거저 좀 주시지 저를 왜 이렇게 저질 체력으로 만드셨나요.
30대 체력 상위권과 20대 체력 하위권이라니, 망한 조합이다.
9.
이곳은 비포장도로 운전이 쉽지 않아 오피스마다 드라이버가 있다. 그래서 하루를 드라이버의 기도로 시작하는 때가 많은데, 중앙 지부에 가는 날 아침에 참 멋있는 기도를 들었다.
"We don't deserve what you are doing in our lives, but because of your love we can do what we do."
나도 아침마다 되뇌이는 말이 되길.
주님이 제 삶에 행하고 계시는 그 어떤 일도 저는 받을 자격이 없지만, 당신의 사랑 덕분에 계속 앞으로 나아갑니다.
10.
돌아오는 비행기 영화 픽은 <로봇 드림>.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꿈 뭐 이런 건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로봇이 꾸는 꿈이다. 고장 난 채로 해변가에 누워 친구를 기다리며.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 상태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점 몇 가지.
하나, 모래사장 위에서 위태롭게 누워있는 로봇을 두고 강아지는 죽어라 그 문안에 들어갔어야 했다.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로봇이 자신도 모른 채로 부식되고, 다리를 잃고, 쌓이는 눈 아래 파묻힐 동안 강아지는 그 문을 매일 몇 번이고 뚫었어야 했다. 때로 동굴에 들어가 버린 그들을 혼자만의 시간을 준답시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결국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나오는 그들을 무력하게 목격하는 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 속에 들어가 함께 나오지는 못할지언정 함께 갇혀는 있어야 한다.
둘, 로봇의 꿈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또 하나같이 슬펐다. 부정적인 감정을 아직 습득하지 못한 로봇이 한없이 친구를 기다리며 꾸는 꿈은 기다림의 지침과 홀로 남겨짐의 외로움이 결여된 온전한 환상이었다. 그런 그의 꿈이 현실과 맞닥뜨려 더 이상 나아가지 말아야 할 때인 것을 깨달았을 때, 로봇은 잠시 동안 슬펐고 또 오랫동안 행복할 자기의 자리를 알았다. 슬픔과 헤어짐을 경험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행복에 대해 더욱 깊게 알게 되는 과정이다.
셋, 그럼에도 소중히 남겨둔 어여쁜 추억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영화에서 사용된 것은 Earth, Wind & Fire - September. 그들은 시간이 흘러 결국 서로를 잊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같은 춤을 출 수 있는 서로를 위한 노래 하나가 마음속에 계속 맴돌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