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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Mar 09. 2022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이 해제되다

'한 사람'을 위한 공동체의 배려

"Masks and Covid Update"


한 통의 이메일.  마스크 의무 착용의 규정을 철회한다는 학교의 결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에서는 불과 2주 전인 지난 2월 말부터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이 해제되었다.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 재난이 이렇게 차차 일단락이 되어 가나 싶어 반가운 마음도 있지만, 이대로 그냥 학교 방침을 따라가도 괜찮은 건가 싶기도 했다.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한국에 비하면 마스크 의무 착용에 대한 규정이 훨씬 느슨해 왔다.  정치적인 입장과 결부되어 종국엔 마스크 의무 착용이 정치적 셈법에 영향을 받아왔기도 하고, 비슷한 맥락에서 마스크 착용이  개인의 자유에 해당하는, 즉 사회의 제도나 규율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해당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코로나가 더 기승을 부렸을 때에도 마스크가 강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학교처럼 대학가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 규정이 해제되는 것도 한국에선 여전히 지금 당장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새로운 학교 정책은 여러 안내사항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교수자들을 위한 안내사항 몇 가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필요하다면 언제나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써 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수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여러 다른 규정들처럼 마스크 착용에 대한 규정도 동일선상에서 취급할 것을 권합니다. 
오피스를 방문하는 학생들에게도 또한 마스크 착용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다면 오피스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미팅을 가지거나 Zoom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미팅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수업에서 일어나는 교육적인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면 (예: 실험실, 협력작업이 필요한 경우, 거리두기를 하기 어려울 때 등) 소속된 단과대의 학장에게 해당 사항을 보고해 주세요. 새로운 방침을 따르더라도 실험실, 스튜디오, 극장 및 음악실 등을 강의실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마스크 의무 착용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혹은 여러분의 가족의 건강 상 이유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있거나 그 외의 다른 장비 및 편의 제공이 필요하다면 인사부서에 연락해 주세요. 




종합해보면, 여전히 상황은 애매모호하다.  지난 2년 간 모든 것이 그러했듯 여전히 불확실성과 예측할 수 없는 '만약'의 경우들로 가득한 상황이랄까.  마스크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교수자 또는 다른 학생들이 마스크를 끼지 않는 것에 불편함 또는 실제적인 위험을 느끼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하거나 불만을 제기한다면 교수자로서 나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사실 마스크 의무 착용을 해제하는 학교의 새로운 방침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건 결코 쉽고 만만한 일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마스크 착용에 대한 토론은 미국에서 꽤나 첨예하게 다뤄지는 면이 있었다.  또한 각자의 고유한 상황과 신념이 다른 상황에서 규정을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학기 초에 학생들의 인적사항 및 수업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에 대해 간략하게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다.  그중에는 본인의 건강 상의 이유로 대면 수업에 대한 우려를 가진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또 매주 주말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돌보곤 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치명적일 수 있어서 본인 역시 무척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대면 수업을 하는 게 걱정이 된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런 몇몇 학생들의 사정을 미리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약간의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학생들을 위해 구성원 모두가 마스크를 쓰자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건강 또는 의료 관련된 정보는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내가 교수자로서 특정 인물을 지칭하며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일부 학생들이 "주정부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데 왜 이 수업에서는 써야 된다는 건가요? 그렇겐 할 수 없습니다."라고 반응한다면. 


그래서 새로운 방침이 발표된 뒤 가지는 첫 번째 수업에서 수업 구성원들과 "열린 대화"를 시도했다.  열린 대화란 한 사안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인지한 상태에서 사안에 대해 대화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또는 대다수가 만족할만한 의사결정까지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서로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안전한 교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 수업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마스크 착용에 대해 잠시 열린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 보면 좋겠어요.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남의 생각에 대한 내 태도나 반응보다는 지금 내가 가진 생각에 초점을 두고 한 번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짧게나마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마스크 규정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또 우리 수업에서는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모든 학생들이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배려심을 보여주었고, 비교적 쉽게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선, 해당 수업은 약 30여 명 이상이 수용 가능한 교실에 배정이 되었으나 수업을 듣는 건 단 14명이었기에 강의가 진행될 때 학생들 간에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거리두기를 한 상태에서, 마스크로 인해 학습에 불편함을 느끼는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 동안 마스크를 벗어도 좋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강의 외의 다른 수업방식을 진행할 때였다.  심리상담의 기본 기술을 배우는 이 수업에서는 그룹 토론과 롤플레이 (상담자와 내담자 역할 연기하기) 가 주된 수업방식 중 일부여서 학생들 간에 밀접하게 접촉하고 대화를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다.  그런 밀접 접촉의 경우에는 혹시 모를 상대방의 불편함을 고려하여 서로 마스크를 착용하기로 했다. 


나 역시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지속하는 데 호흡이 딸리는 등 어려움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 역시 학생들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강의를 하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벗기로 했다.  그리고 그룹 디스커션에 참관하여 코멘트를 더하는 등 학생들과 밀접하게 대화하거나 교류하는 어떤 경우라도 마스크를 쓰기로 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누군가에겐 번거롭고 불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는 결국 "한 사람을 위해 학교가, 그리고 공동체가 어디까지 배려 또는 희생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다.  한 사람으로 지칭되는 소수의 인원과 "함께" 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돈과 시간을 들이고 배려와 희생을 감내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한쪽 방향에 치우쳐야 하는 정답이 있는 문제들은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배려와 희생을 감내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조금의 불편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비교적 손쉬운 노력을 들이는 것으로 소수의 구성원에게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위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제로 그를 위한 노력을 보일 수 있다면,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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