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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Oct 06. 2023

인생의 치트키, 게임의 치트키

 누군가를 혹은 그 상황 전체를 내가 압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모든 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고 할까? 내 실력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상대방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결론이 정해져 있는 상황.


 우리 인생은 복잡하지만 아주 거칠게 구분하면 4개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라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첫째는 잠자기, 둘째는 (생존을 위한) 먹고 마시고 배설하기, 셋째는 자기 역할하기 (i.e. 돈을 벌거나 혹은 그와 무관하게 자기가 선택한 혹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 마지막으로 즐기고 휴식하기. 

 앞서 얘기한 '내가 압도하는 상황'이 만약 '자기 역할하기'에서 발휘된다면, 나에게는 무한한 여유와 축복이, 하나 상대는 정확히 그 반대되는 상황을 겪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압도하는 그 원인이 상대방의 실력이나 엄청난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면 어떨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어깨 위에서 시작한다. 크게는 국가라는 어깨에서, 작게는 부모님의 어깨에서. 그 높이가 다르면 시작하는 지점이 달라지는 거고. 근데 그 어깨 높이가 각종 편법/탈법으로 인해 생겼으며, 너무 차이가 커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면? 더군다나 그런 상황이 상당기간 이어진다면? 그 끝은 뭘까?


 이런 비슷한 일이, 마냥 즐겁고 평온할 것처럼 보이는 '즐기고 휴식하기' 영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여럿이 즐기는 온라인 PC게임 중, 특히 Shooting (i.e. 총 쏘기 등) 장르의 이용자 중, 갈고닦은 실력이 아닌, 돈 주고 산 치팅 프로그램을 사용해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 그 예다. 생각보다 비싼 *치팅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만 하면, 벽 뒤에 있는 상대방도 볼 수 있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미친 듯이 움직여서 상대방을 조준하지 않더라도 손쉽게 상대방을 타격할 수 있다. 순위가 쭉, 쭉, 올라간다. 내 아이디가 상위권에 랭크돼 있고, 그런 행위가 별다른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결과만 보는 내 주위에 친구(?)들이 나를 우러러본다.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2달 후에 랭킹은 다시 리셋되고, 업그레이드된 치팅 프로그램을 또 사고, 이 행위를 반복하겠지만, 나만 만족스러우면 됐지, 무슨 상관이랴? 

(*치팅 프로그램: 일명 게임핵이라 불리며 게임 내 메모리 등을 조작해 사용자에게 '슈퍼파~월'을 준다. 작게는 몇 시간 단위 혹은 며칠 단위로 판매되며 게임보다 비싼 것도 있다.) 


 이런 상황이 상당기간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게임 플레이에 대한 양극화가 계속 이어질 경우, 그 게임은 어떻게 되고, 게임이 속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은 어떻게 될까? 이 역시 결론을 아직 마주한 건 아니지만, 몇 가지 과거 경험을 통해 그 끝을 이렇게 한번 예상해 본다. 

 유저들은 엉망진창인 게임경험(Play Experience)을 겪다, 결국 떠나게 된다. 게임사는 게임 콘텐트 개발뿐 아니라 치팅을 막기 위한 개발도 해야 하니 리소스를 나눠서 쓰게 된다. 하나 공격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결국, 게임 콘텐트에 대한 욕뿐만 아니라 운영의 미숙함에 대한 욕도 먹는다. 그렇게 더 많은 유저가 떠난다. 게임은 막을 내린다. 유저들은 새로운 게임을 찾아 떠난다.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일 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너무 순진한 걸까? 게임도 인생도 이렇게 속고 속이는 게 정말 맞을까? 유저가 떠난 게임은 서비스 종료로 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종료'가 되는 순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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