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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Sep 15. 2023

약속한 게임 시간이 다됐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약속한 시간에 잘 종료하기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엔 집안 누구보다 일찍 일어났다. 기억은 믿을 수 없는 거라지만 그 시절 학교 가는 게 좋았던 것 같다. 하나 그거랑 아침에 일어나는 건 별개였다. 주중에는 누군가 나를 깨워줘야 일어난다는 것이 기본값이랄까. 하지만 일요일은 달랐다. 아침 7시 아무도 깨우지 않아도 눈이 떠졌다. AFKN 채널에서 방송되던 디즈니 만화와 WWF (*현재는 WWE) 프로레슬링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자명종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그 철부지 어린애가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벌떡 일어나 볼 만큼 내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아마 우리 딸 애가 “동물의 숲(이하 동숲)”을 하는 게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섬을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캐릭터도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게 그렇게 재미있단다. 하물며 혼자서 하는 것도 재밌는데, 온라인으로 연결해 친구네 섬에 놀러 가거나, 친구가 자기 섬에 놀러 와서 같이 노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숲을 시작해야 할 때, 항상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집안 모두가 즐거운 마음이었던 것 같다. 주말 아침 더 자고 싶은 부모와, 일찍 일어나서 동숲을 하고 싶은 아이가 서로 win-win이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언제까지 할 거야?", "한 시간만~". 아이는 곧바로 조이콘을 들고 소파로 점프해 알아서 TV와 닌텐도스위치를 켜고, 동숲에 들어간다. 능숙하게 몇 가지 세팅을 고치고, “빰빰빰빰빰 빠바~ 빠바~”의 배경음악이 들리는 순간, 아이는 세상 밝은 표정을 지으며 게임에 몰입한다. 

 한 번씩 옆에서 지켜보면, 이 게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꽤 있다. "이런 부분까지 고민하고 콘텐츠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네"라고 감탄할 때도 많다. 온라인 연결을 제외하고는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없단 점도 참 놀랍기도 하다. 지금에야 이 게임 덕분에 닌텐도스위치 기기도 많이 팔려 회사가 기분이 좋긴 할 테지만,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라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떨 때도 있다. MMORPG(다중접속롤플레잉 게임/ 여려 명이 함께 접속해 자신의 역할을 하며 즐기는 게임 장르)는 역시 시간을 갈아 넣어야 해서 나랑은 맞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건 내 취향일 뿐이다. 우리 아이는 그런 내 취향과는 무관하게 즐겁고도 열심히 ‘삽질’을 하면서 게임 속 VC(Virtual Currency/ 게임을 하며 얻는 머니)를 획득해 자신의 캐릭터와 집 그리고 섬을 꾸미는데 여념이 없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게 30분이든 1시간이든, 그것보다 더 길든. 그냥 그 시간은 말 그대로 통으로 ‘훅’하고 지나간다. 모든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이가 즐기고 있는 놀이를 이제 그만둬야 할 시간. 아 끔찍하다. 그전에 한 약속은 화장실 가기 전 마음과 비슷하다. 화장실 갔다 와서는 다른 거다. 


“조금만 더 하면 안 될까요?”, “아, 이것만 하고 그만둘게요”. 이 정도 톤으로 얘기가 시작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싫어!!”, “나 주중에는 안 하잖아. 조금만 더 할 거야”. 수위가 점점 올라간다. 목소리 크기도 서로 덩달아 올라간다.

 

“약속 안 지킬 거면, 앞으로 절대 게임 없어. 너 뭐야. 자기가 한 말도 안 지키고, 엄마아빠한테 소리나 지르고(사실 이쯤 되면 부모가 이미 소리를 지르고 있다). 당장 꺼, 이제 게임 없어” 


 뭐, 거의 막바지 단계다. 이쯤 되면 집안이 동물의 세계로 변하기 시작한다. 서로 감정적으로 ‘으르렁’ 대는 부모-자녀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현실의 동숲에 등장하는 것 같다. 역시 이래서 게임은 안돼. 몰입을 넘어서 중독을 일으키는 이 나쁜 놈들, 거들떠보기도 싫다. 비단 온라인 게임뿐 아니라 놀이와 관련해 부모-자녀 간에 문제가 커지는 지금 이 순간, 바로 ‘그만둬야 할 순간’이다.


 어떻게 잘 그만둬야 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우리 딸과 비단 온라인게임뿐 아니라, 놀이터 놀이, TV 애니메이션 시청, 방방이 뛰기 등 아이가 푹 빠져 있는 놀이를 그만둬야 하는 그 순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근데 무슨 전문가랍시고 ‘구라’를 풀겠는가. 그래서 나도 모르는 얘기를 하기보다는 우리 부부가 겪었던 그 과정을 공유해보려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부모로서의 우리를 좀 더 객관화해서 바라보고자 했던 노력과 부분적일지라도 ‘마음의 평온함’을 얻고/유지하는 결과를 얻으며 성장해 온 우리의 경험에 대해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 서로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그렇게 목소리 높여, 감정을 쏟아 냈으니, 뭐, 결과는 어찌 보면 뻔한 것 아닐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와이프와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러면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낀 부정적인 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게 '갑자기 버럭 소리 지르면서 화내기'였다. 부모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큰 목소리로, “하지 마”라고 버럭 하는데, 아이가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그 이후 우리의 감정이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잘 추스를지에 집중해 왔다. 그런 상태로 아이와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작은 시행착오를 계속 거쳐왔다. 불꽃이 터질 것 같은 그 순간, 평온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한데 놀랍게도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뾰족해진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을 뿐인데 아이는 우리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아이가 보여준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칭찬했고, 기분 좋아진 아이는 보다 독립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가 발생하는 그 순간, 서로가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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