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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Sep 29. 2023

끝까지 놀다 늦게 출발하기

그저 늦게 출발했을 뿐인데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다

 나와 와이프 둘 다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시간을 보냈다. 또, 양가 부모님 모두 원래 살고 계시던 그 도시에서 여전히 살고 계시고, 그 집은 모두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아이를 기르고 각자의 일을 하며 주말에 쉬고 노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오롯이 우리가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아이가 좀 커서 우리와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어릴 땐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부부의 각자의 일상이 각각의 이유로 팽팽해지는 평일 일상은 그야말로 '일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뭐 하지'는 우리 부부에게 그야말로 중차대한 일이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일단 어디든 나가야만 했다. 꼭 어디서 숙박을 해야 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저 공간을 바꾸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가장 최우선이었다. 대부분 장소 선정 권한(?)은 와이프에게 있었다. 고백하자면 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장소가 결정되면 짐을 차에 옮기고 운전하는걸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했던 것 같다. 마치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처럼 이 값을 넣으면 요 값이 나오게끔 이동과 관련된 내 작업을 수행했다. 근데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뭔가 꿈틀꿈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와 세상에. 이런 곳도 있어? 여기 진짜 좋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뚫린 후 강원도 북부지역을 그야말로 뻔질나게 다녔다. 특히 2019년 가을에 우리 부부가 발견(?)한 강원도 고성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이름도 외국스러운 '아야진 해수욕장'을 처음 마주했을 땐 이곳이 마치 캘리포니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옆에 있던 와이프가 캘리포니아에 한 번도 안 가봤으면서라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비치의 선셋이 이거랑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2023년 2월 드디어 출장으로 캘리포니아에 다녀온 후에는 '떳떳하게' 외치고 있다. 이야~ 여기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치 햇살이랑 비슷하네 -_-;;) 와이프는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낸 걸까? 네이버 블로그 검색이 인스타 검색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난 같은 걸 느꼈다. 여기 정말 좋다!! 와이프의 검색능력과 이렇게 신통방통한 곳이 세상에 있다는 감탄이 이어질 때쯤 그 시간이 다가온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부부가 된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언제 집에 돌아갈지에 대해 서로의 의견이 달랐다. 충분히(?) 놀았으면 빨리(?) 집에 돌아와서 쉬고 내일의 일상을 준비해야지라는 내 생각과 기왕 왔는데 놀 수 있을 때까지는 다 놀고 늦게 집에 가야 된다는 와이프의 생각이. 와이프의 의견은 이랬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에 출발하니 막히는 시간 고려하면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또, 여행온 사람들이 다 떠나가니 오히려 그 시간대 바닷가나 여행지가 한산해서 여유롭다고. 나름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시간을 늦추진 않았다. 뭐랄까, 그저 내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라고나 할까. 운전을 내가 해야 하니 보통 와이프가 져줬던 것 같다. 운전 오래 해야 하니 피곤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근데 어느 날 문득 와이프의 의견을 따르고 싶었다. 그냥 따랐다. 그렇게 사람들이 빠져나간 그곳에 우리는 좀 더 머물렀다.


 분명히 같은 장소인데 시간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지역 맛집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잠시 노을도 즐기며 같은 여행지에서 다른 경험을 맛봤다. '평온하다'는 느낌이랄까. 뭐가 잘 맞아떨어졌던 걸까. 늦게 출발했지만 오히려 차가 막히지 않아 막상 집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늦게 도착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 출발하려고 했던 시간의 도착 예정 시간과 비교해 보면 그렇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물론 항상 이런 좋은 경험을 했던 건 아니다. 어떨 땐 늦게 출발했음에도 차가 꽉 막혔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노는 데 진심인' 우리 와이프의 의견을 그대로 따랐더니 새로운 '놀이 경험'을 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 뭐 하지? 뭐 하고 놀지?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일 거다. 난 여전히 뭔가 준비를 해놓는 걸 좋아한다. 월요일 일상을 문제없이 보내기 위해 일요일 오후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을 준비한다고나 할까. 근데 내 생각이 무조건 맞았던 건 아닌 것 같다. 노는데 전문가인 와이프 얘기를 아무 조건 없이 들었더니 뭔가 더 풍족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또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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