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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10. 2020

실패할 기획안

두 마리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세 번째 아이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반려 동물과의 이별을 다룬 책을 읽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많이 울었습니다. 울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런 책을 쓴다면 나는 눈물이 마른 이별에 대해 쓸 거야. 시간이 흘러 슬픔을 극복한 이가 이제 막 좌절에 빠진 이의 희망이 되어주는 이야기를 쓸 거야. 담담한 이별. 눈물로 종잇장이 젖지 않아도 되는 그런 책.


펫로스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꼬리를 물던 기획안은 그랬습니다. 

말은 참 좋지요. 

얼마나 번듯한가요. 


하지만 나는 압니다. 반려 동물을 떠나보낸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거예요. 가족을 잃은 슬픔에 '담담함'이 섞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아휴, 나라도 저러겠어' 싶은 씁쓸한 재료들이 필요해요. 하지만 반려 동물과 우리 사이에는 그리 복잡다난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돈과 애증이 없었고 기를 꺾는 이야기나 뒷말이나 구구절절한 변명도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오랜 시간 한결같았고 우리가 받은 것은 무한한 사랑뿐이었지요. 


그러니 나의 기획안은 실패할 것입니다. 

결국은 눈물로 종잇장이 쭈글거리는 글을 쓰고야 말 거예요. 

나의 눈물이 마른 것은 나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각자의 시간은 다르고 각자가 서 있는 지점 역시 달라서 당신이 어떤 지점에 서서 이 글을 읽을지, 나는 모릅니다.  '그 개와 고양이가 거기에 있었다.' 하는 문장을 보고서도 눈물을 쏟는 지점에 당신이 서 있다면 나의 기획안은 더 처참히 실패할 테고요.



「실패해도 괜찮다.」

그런 생각으로 쓰려합니다. 

울어야 하는 누군가는 울어야 합니다. 울어야 하는 때에 우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가끔 그만 울어야 하는 시기를 지나쳐 버린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운다는 건 후련하면서도 참 힘이 드는 일입니다. 상실에 대한 슬픔은 더더욱 그렇고요. 누군가를 잃고 나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은 후회. 온갖 종류의 후회들이니까요. 

더 일찍 알아차릴 걸, 더 오래 함께 있을 걸,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꼭지를 단 문장들은 밀물처럼 자비 없이 몰려옵니다. 


나는 당신이 울되, 너무 오래 울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떠나보낸 아이에게 못해준 만큼만 울고 사랑한 만큼 다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어떤 후회를 하든 그 아이들은 당신의 애정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밥을 먹이고 간식을 고르고 산책을 하고 함께 잠이 들던 수많은 좋은 날을, 슬픔에 덮어버리기 말기를 바라요. 넉넉히 사랑하지 못했더라도 그 순간에 줄 수 있는 사랑을 주었고, 모든 생명이 그렇듯 때가 되었기에 이별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그 예쁜 눈을, 다시 달갑게 마주할 겁니다. 


「언젠가는 나도 그들 곁으로 간다.」

사랑했던 생명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수많은 위로를 읽고 들었지만 나에게 이보다 더 큰 위안은 없었습니다. 내가 키우고 보낸 아이들과 먹이고 묻어준 수많은 길고양이들. 그들이 있다면 죽음 이후 조차 그리 외롭지 않을 것만 같아요. 어쩌면 수많은 꼬리들의 팔락임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든든함과 위로가 스며듭니다. 


당신의 회복과 행복은 떠난 아이들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반려인들은 알 수 있습니다. 떠나보낸 아이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겼을 이야기. 언어도 없는 아이들의 메시지를 어떻게 아느냐 물으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지요. 살아있는 동안에도 좋은 것을 주는 법 밖에 모르던 아이들이었다고요. 

어쩌면 아팠다고 늦었다고 화를 내주었으면 싶은 마음, 들지도 몰라요. 자책이 가라앉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사랑의 마무리는 떠난 아이들의 마음을 앞섶에 두는 것이에요.

「고마웠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그 마음을 먼저 두면 당신의 마음은 꽃이 되어 날아갈 것입니다. 


오늘을 견디기 힘든 당신.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울던 이가 먼저 적은 이 사소한 글이 오늘의 당신에게 오직 위안이고 따스함이기를 바랍니다. 내일도 모레도 매일의 위안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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